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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Dec 09. 2015

캐나다 이민생활 <25>

강아지 키우기와 자녀 성장기

우리 집 반려견 쵸파.


생후 두 달 반. 우리 집에 온지 한 달 남짓이다. 짧은 기간에 많은 변화가 왔다. 형광등 100개 켠 것보다 더 밝아졌다. 퇴근이  가까워지면 제일 생각나는 게 이놈이다. 꼭 첫아이 키울 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이 단계까지 많은 투쟁이 있었다. 식구 네 명 가운데 3명은 절대적 찬성인데도 불구하고 지분이 큰 딱 한 사람의 반대에 부딪혀서 근 10여 년간 애간장을 태워야 했었다. 근데 그 완강한 반대자가 최근 한발 물러섰다. 조건부 찬성으로 돌아선 것이다.    그 조건은 키우는 건 물론 산책과 배변 등을 책임지고 방청소와 교육 훈련까지, 다시 말해 자기 손은 개머리를 쓰다듬는 용도로만 쓰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비 가톨릭 신자는 성당에 나가야 한다는 또 다른 조건이 붙기도 했다. 이 모든 걸 감수하고 우린 전리품을 얻었다.


먼저 종을 정했다. 웰시 코기. 다리가 짧으면서 걷는 모습이 귀엽고 성견이 돼도 별로 크지 않았다.  종이 정해지자 인터넷을 통해 찾기 시작했다. 밴쿠버 인근에 몇 개가 올라 와 있었다. 전화를 걸고 확인한 뒤 보고 싶다고 말하면 먼저 돈을 부치라고 한다. 이건 100프로 사기다. 몇 차례 이런 사례를 거치다가 지쳐 갈 즈음 시애틀에 사는 동서한테서 연락이 왔다. 인근 스노 호미시에서 똑같은 개가  올라왔다는 전갈이다. 망설임 없이 주문했다.

동서가 페이 하고 우리한테는 선물로 그냥 줬다.


간혹 세탁소에 데려오면 이동네 사람들 껌뻑 죽는다. 호들갑이 심한걸 감안해도 강아지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초파는 이런 주변의 사랑을 먹고 아무 탈 없이 잘 자라고 있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잠시 뒤를  돌아봤다. 과연 내가 우리애 들도 저런 사랑으로 키웠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한국에 있을 땐 대부분의 아버지는 회사, 일 핑계로 늦게 들어와 자는 애들 얼굴만 보고 새벽같이 출근하는 게 예사였다. 대화는 고사하고 같이 밥 먹은 게 언젠지  까마득할 뿐이다. 사실 그게 정답인 줄 알고 살았다. 그러나 여긴 달랐다. 첫째 밤문화가 없으니 늦게 들어갈 핑계가 없어졌다. 또 목놓아 퍼마실 친구도 없다. 그리고 행동반경이 좁아서 대부분 노출된다. 자연히 가정을 중심으로 모든 게 이뤄지면서 가족들이 눈에  들어온다.  또 가정살이의 일부가  부모의 책임으로 등장한다.  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었던 게 자연히 부와 모의 공동 책임으로 닥아온다.


여긴 공부보다는 운동에 목을 맨다. 우리 애도 자연히 8학년이 되면서 그쪽으로 관심을 가지게 됐다. 축구와 하키팀에 가입했다. 동시에 하는 게 아니고 6개월 시즌별로 운영됐다. 축구는 가을에 시작해서 4개월간 리그전을 갖고 두 달 정도 플레이 오프를 한 뒤 챔피언을 가렸다. 하키는 축구가 끝나는 봄에 시즌을 오픈했다.


여기서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관심도는 우리를 능가한다. 얼핏 보면 부모 자식 간의 밀도는 훨씬 떨어지는 것 같은데 뒷바라지는 절대적이다. 팀원의 아버지들이 자원봉사 감독과 코치를 맡고 나머지 부모들은 잡일을 도맡는다. 아버지들이 운동을 가리킬 수 있는 건 그들도 역시 현재 운동을 하거나 과거 운동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별 할 일이 없다. 경기가 열리면 응원 정도. 응원팀도 우린 최대한 모아봐야 2명이다. 그러나 그들은 애 한 명 뛰는데 4명은 보통이다.


여기서 희한한 게 있다. 이혼한 부부가 서로 새로운 상대 배우자를 데리고 경기장에 온다. 그리곤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곁에 앉아서 온갖 수다를 다 떤다. 얼핏 내용을 들어보면 별 재미있을 것 같지도 않은 시시껄렁한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박장대소를 한다. 경기 시작 전 20분부터 자리 잡고 끝날 때까지 그 컨디션으로 쭈욱 간다. 두 시간 반 정도를  쉼 없이. 이빨이 상당히 튼튼하다. 이야기가  무르익으면 경기장에 자기애가 다쳐 쓰러져 있는데도 안중에 없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면 아무 아쉬움이나 티끌도 남기지 않고 각자의 길로 간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 정도 말을 섞었으면 대포 한잔 하자고 서로 권해야 이치에 맞는데 그냥 엉덩이 털어버린다.


그 당시의 우리애 팀 동료들을 간혹 만난다. 이젠 성인이 됐다. 사춘기를 무난히 넘기고 사회의 일원이 된 게 대견했다. 이들 중 일부는 일찍이 마약이나 대마초에 손댄 나머지 올바른 어른으로 크지 못한 케이스도 많다. 간혹 저세상으로 간친 구도 있고. 이동네 애들의 사춘기는 무섭다. 부모의 간섭이 한정돼 있는 탓에 무소불위의 행동을 한다. 그러나 이 시기가 지나면 순한 양으로 돌아온다. 너무나 딴판으로 변한다. 이게 정말 신기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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