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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Nov 19. 2015

캐나다 이민 생활 <22>

 성숙기때 부르는 태평가(하)

(사진 설명) 승용차가  주차된 집이 두 번째 장만한 새집. 외관은 볼품없어도 내부는 상당히 신식으로,  동선을 고려해 넓게,실용적으로 설계돼 있다. 특히 주방과 다이닝룸을 예쁘고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어 교민 주부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현재는 남의 집이다.




사실 몇 년간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하다 보니 집사는데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리고 돈도 없었다. 현재 사는 렌트하우스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주인도 좋고, 주변 숲도 멋지고... 가게는 안정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돈이 쌓이는 수준은 못됐다. 아끼고 덜 쓰면서 한 달에  겨우 연금 조금 넣는 것 말고는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집값은 하루가 멀게 뛰었다. 주변에서도 이시기를 놓치면 영영 밴쿠버에서 집 살수 없다고 걱정을 해줬다. 그런 뜻에 편승해서 우리도 한번 맘을 먹어볼까 하는 가벼운 생각에서 집사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되었다. 워낙 뒷돈이 짧다 보니 우리에겐 하나의 큰 산 같은 계획이 필요했다. 우선 은행 융자는 얼마나 되는지, 어떤 타입을 살 건지, 얼마짜리를 볼 건지를 먼저 파악했다.


20만 불대의 타운하우스를 찍었다. 이 가격도 많이 오른 수준이었다. 몰기지는 잘하면 75프로까지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캐시 6만 불 정도는 쥐어야 될 것 같았다. 우선 연금에서 만 오천 불을 대출받았다. 나머지는 친지들에게서 융통을 부탁했다. 그래도 3만 불 정도가 부족했다. 이 돈은 이민 동기가 선뜻 빌려줬다. 무사히 칠부 능선을  통과된듯했다.


그때부터 가게가 쉬는 일요일에 짬짬이 집을 보러 다녔다. 가게 가까운 곳에 부동산 붐을 타고 크고 작은 집을 무지하게 짓고 있었다. 당초 약속대로 타운하우스를 집중 공략했다. 묘하게도 그 주변에는 2,3만 불 정도 더나 가는 단독 주택을 짓는다. 항상 이랬다. 건축업자들이. 간 김에 주택도 둘러봤다. 단번에 생각이 바뀠다.  조금 무리하더라도 단독 주택을 사자는데 와이프랑 뜻을 같이했다. 지금은 조금 힘들더라도 집값 상승을 감안해서 생각을 바꾼 것이다. 그만큼 종잣돈을 더 끌어 모아야 하는 부담감은 있었지만 감행하기로 했다.


덥석 계약을 하고  완공날짜를 손꼽아 기다렸다. 골조가 완성되고 난 뒤는 매일 가게 마치고 애들 데리고 미래의 우리 집을 보러 갔다. 경비를 피해서 도둑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지하에서부터 2층까지 샅샅이 훑었다.  아마 목수보다 우리가 더 많이 그 집을 찾았을 거다. 그러면서 미완의 상태에서 방배정까지 다 마쳤다. 방은 2층에 3개 지하에 두개. 총 5개였다. 무리하게 산만큼 남는 방에는 유학생을 상대로 홈스테이를 하기로 했다.


완공 날이 가까워졌다. 렌트 주인한테 말했다. 2년 반 동안 알게 모르게 정이 많이 들었다. 나가기 며칠 전에 뒤뜰에서 주인 부부의 결혼식이 열렸다. 우리 부부가 증인으로 사인을 해줬다. 그동안의 감사의 표시였다. 주인 와이프의 눈물을 뒤로하고 신천지 새집으로 이사를 갔다.  이제야 캐나다 주민이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식구들 모두 너무 좋아했다. 이웃도 괜찮았다. 왼편은 스페인, 오른쪽은 오래전 영국 이민자 후손이었다. 축구 중계하면 왼쪽 집은 시끄러웠다.


이젠 홈스테이 구하기에 돌입했다. 뜻하지 않게 기회가 왔다. 동서의 조카가 미국 보딩스쿨 입학을 위해 왔다가 거절당해 방향을 틀어 캐나다로 왔다. 어릴 때부터 알고 있던 애라서 서로 좋았다. 이 여자애를 통해 동향의 남자애가 한 명 더 들어왔다. 식구가 늘자 안팎으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사춘기의 청소년을 데리고 있는 것도 만만찮았다. 조금 소홀히 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순간도 많았다. 행여 고향의 부모들이 걱정할까 봐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집은 딱 2년을 살다가 딴 곳으로 이사했다.


떠난 이유는 복잡함. 원래 울창한 숲이었던 이 지역이 부동산 붐을 타고 대단지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해 버렸다. 출퇴근 시간이 지체되고 동네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좀 조용한 동네로 탈출을 시도했다.


두 번째 집은 교민 주부들이 선호하는 M사가 시공하는 단독주택을 골랐다. 규모도 약간 늘렸다. 이년만에 되팔면서 약간 남겼다. 이 집은 시원한 내부와 모든 게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방도 더 많았고 그래서 홈스테이 학생을 더 늘렸다. 이집도 7년을 살다가  좁은 타운하우스로 일 년 전에 옮겼다. 홈스테이들이 다 떠나고 우리 애도 객지에서 직장을 잡으면서 큰집은 낭비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집을 파는 과정에서 건축회사의 치부를 알게 되었다. 매매 단계에서 구매자가 집에 대한 인스팩트를 하는데 이때 뭔가 걸렸다. 지붕 아래 단열재가 빠진 것이다. 평소 에는 알 수 없는 공간이다.  건축회사는 이사실을 알고 쉬쉬하면서 보완해줬다. 알고 보니 다른 집도 크고 작은 문제가 속출했었다. 다만 서로 정보교환이 없었던  것뿐이었다. 사람눈에 띄지않은곳의 자재를 빼버린곳이 한두군데가 아니였다. 하물며 화장실벽의 단열재도 빼먹은곳도 있었다.그래서 인지 원래 28가구 중 13가구가 한인이었는데 거의 다 이사 가고 3가구만 남았다.


이사간   타운하우스는 가족간  대면의 기회가 많은 것과 겨울에 좀 따뜻하다는 게 장점인 반면 잔디가 없고 전체적으로 좁고 어둡다는 게 단점이다. 이집도 아마 내년 초쯤이면 떠나야 될 것 같다. 동부에서 직장 생활하던 큰 놈이 난데없이 서부로 옮기면서 집에서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강아지도 한 마리 키우다보니 갑자기 좁다는 생각이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집 매매는 크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이 힘들지 그 다음은 그냥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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