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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Nov 11. 2015

캐나다 이민생활 <21>

성숙기 때 부르는 태평가(상)

(사진 설명) 75년 전 캐나다 여성이 입었던 웨딩 드레스. 실크 소재이긴 하지만 너무 소박하다. 이 옷의 주인공은 지난주 영원한 안식의 순간을 맞이했다.


세월이 가고 짬밥이 늘어날수록 뭔가 손에 잡히는 게 있었다. 그건 배짱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간 떨리는 시기는 지난 것 같았다. 그리고 가게에 투자를 좀 했다. 고장 나기 시작한 기계와 장비를 몇 년에 걸쳐서 하나씩 리스로 바꿔버렸다. 기계가 말썽을 부리지 않으니 정말 할만했다. 때마침 옆에 스타벅스가 입점했다. 금상첨화. 몰이 붐비기 시작했다. 이젠 먹고사는 문제는 완전히  해소된듯했다. 그래도 못된 인간들은 그 인간성을 버리지 못하고  한 번씩 나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자동차 딜러샵의 매니저로 있는 아주 상남자 같은 인간이 있었다. 서양사람들에게 흔한 아일랜드계 성을 쓰는 사람이었다. 덩치가 크고 얼굴이 붉으며 머리통이 웬만한 큰 호박만 했다. 게다가 하얀 콧수염을 길러서 상판은 감히 A급이라 할 수 있었다. 근데 이 사람 하는 것 보면 너무 치졸해서 입에 담기도 싫은 인간형이다. 


끊임없이 다른 가게와 가격 비교하고 트집 잡고 길 건너 빈 가게에 세탁소 들어 온다는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당신이 원하는 싼 곳에 가라고 해도 안 간다. 그리고 한 몰에 한 업종이란 걸 그는 모르고 내질러 보는 소리에 스트레스가 쌓여 갈 즈음. 이놈이 행동에 옮겼다. 내가 그의 요구사항인 할인을 해주지 않자 돌연 이상한 행동을 했다. 담요를 맡겼다. 보통 25불인데 좀 크서 30불 받았다. 이게 사단이었다. 콧수염을 실룩 실룩하면서 뭔가 불만이 가득 찬 표정을 짓더니 가게를 나갔다. 그리곤 주차장에 서서 우리 가게 들어오는 손님 들에게 이상한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비싸고 어쩌고 저쩌고... 결국 종업원베티를 시켜 5불을 돌려줬다.


어느 날 젊은 두 아주머니가 동시에 우리 가게에 왔다. 한 사람이 찾으러 오는데 친구가 따라 온 것이다. 돈을 내놓자 옷을 내줬다. 잔돈을 줄려는데 뭔가 질문을 던졌다. 카운트 규칙은 잔돈을 주면서 손님의 돈을 돈통에 넣게 된다. 그렇지 않고 손님 돈을 먼저 금고에 넣고 잔돈을 주면 마찰이 생길 수가 있다. 20불짜리 내놓고 50불이나 100불이라고 윽박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도 일단 카운트 위에 있는 손님 돈을 살짝 누르면서 그의 질문을 받았다. 이게 조금 길어지고 그쪽에 신경 쓰느라 왼손바닥에 깔린 지폐의 감촉을 놓치고 말았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이미 상황은 종료돼버렸다. 그들은 옷과 돈을 동시에 가지고 가버렸다. 허허 웃고 말았다. 


이런 일에 이젠 일희일비할 단계는 지나가버렸다. 내가 좀 닳힌것 같았다. 퇴근한 뒤 입에 소주 한잔 털어 넣고 깨끗이 씻었다. 그리고 그런 일의 발생빈도가 시간이 가면서 점점 줄어 들었다. 그들의 눈에 내가 좀 덜 어수룩하고 단단해져 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포사이스라는 할머니가 한분 계신다. 1920년생이니 연세가 많다. 몇 년 전 운명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언행을 해서 아직 머리에 박혀있다. 일단 그분을 감싸고 있는 건 모조리 50년 이상된 것이다. 노란 핸드백.  55년쯤이라고 그녀는 기억했다. 지퍼는 이미 고장 났었고 백안으로 손을 들락날락하면서 스쳐 생긴 자국으로 입구 쪽이 변색돼 있었다. 가죽임에도 손자국이 남을 정도니... 이젠 바꿀 때라고 말하면 대꾸도 안 하고 백을 품에 안는다. 약간 열린 입구를 통해 안의 내용물을 보면 하얀 거즈 같은 손수건은 항상 있다. 작은 수첩과 손지갑. 분명 50년 이상된 것으로 보인다. 수첩에 적힌 전화번호가 현재의 것과 다른 걸로 봐서는 아마 그렇게  추정된다.


이분은 애석하게도 약간 기억력이 오락가락할 때가 있었다. 항상 코르덴 바지를 입고 입는데 주름을 잡았다가 안 잡았다가 일관성이 없다. 잡아놓으면 풀라 고하고 안 잡았을 땐 다시 다려서 잡아 달라고 하고... 그런 일을 몇 번 반복하다가 취침 중에 조용히 운명했다. 그 뒤 아들이 옷을 찾으러 왔는데 완전 할아버지였다.


볼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우리 가게 손님 중에 내가 최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유일하게 나보다 키가 작은 사람이다. 그 외에 호감 살만한 요인이 많은 사람이다. 우리 동네에서 모바일 홈을 제작하는 비즈니스를 한다. 상인조합의 일도 열심히 하고 우리 도시의 상공회의소 회장도 역임한 인물이다.멀리서보거나 무슨 행사장에서도 금방 알 수 있다. 서양사람 치고 좀 작은 편이다. 사진 찍을 때는 가급적 가운데로 모시는데 그러면 양쪽이 어떤 절벽에 의해 단절된 것 같이 나온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크다. 


볼은 췌장암으로 두 달간 병상에 있다가 돌아갔다. 사망 한 달 전까지  본인이 암이란 사실을 몰랐고 죽기 전까지 큰 동요 없이 살다가 운명했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우리와 많이 달랐다. 다른 세상으로 진입한다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종교탓일까. 어쨌든 그는 겉으론 편안하게 깨끗한 일생을 마감했다. 아마 60세는 좀 넘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아직 살아있다. 그의 사업장 부지도 부친것으로 상속도 채 진행되지 못한채 아들이 먼저 사망했다.


입에 풀칠하는 문제가 해결되니 치솟는 주택 가격에 편승하는 일을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남의 곁방살이만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뒷돈은  짧고... 이때 우리 어머니가 늘하시던 말이 떠오른다. 


"혀는 짧고 침은 길게 뱉고 싶고..."<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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