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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Dec 30. 2015

캐나다 이민생활 <27>

우리와 너무 다른 의료시스템의 명암(A)

(사진 설명) 인구 14만명 정도를 커버하는 우리 동네 유일의 종합병원. 두 번 입원한 적이 있다. 남북 두개 빌딩이 가운데 통로로 연결돼 있는 구조라서 첫 입원환자는 미아가 될 정도로 내부 동선이 복잡하다. 이미지는 구글에서.


살면서 병원신세를 안 지고 살면 좋을 텐데 나이를 먹고 예기치 못한 질병으로 의사의 손을 빌리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게 생긴다. 특히 낯선 타국에서 병원 살이는  가급적 피하는 게 좋을듯하다.


이민 온지 한 해가 가기 전에 말로만 듣던 공포의 병원을 경험했다.

 

저녁을 먹기 전 둘째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호소를 했다. 둘째는 참을성이 많기 때문에 걔가 아프다면 진짜 아픈 걸로 인식하게 된다. 주무르고 손가락을 따고 약을 먹인데도 통증이 계속됐다. 할 수 없이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갔다. 접수처에서 의료보험 카드를 보여주고 우리가 왔음을 알렸다. 접수 후 작은 공간의 대기실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곳에서 30분 정도 기다리니 목에 청진기를 두르고 하얀 가운을 입은 의료진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불렀다. 그녀는 체온과 혈압을 재고 몇 가지를 물었다. 그리곤 좀 더 큰 공간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희한하다. 응급환자면 우선 베드에 눞고 보호자가 접수하는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뒤엎는 절차였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주변을 살펴봤다. 환자로 보이는  10여 명의 사람들이 아무 표정 없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눈치로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지 체크했다.


내부와 연결된 문에서 누군가 고개를 내밀고 이름을 불렀다. 불려진 사람은 갑자기 복권 당첨된 것처럼 표정이 밝아지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부르는 인터벌은 30분 정도. 내 앞에 10명이면 5시간? 끔찍한 산수지만 시간이 갈수록  현실화돼 갔다. 차츰 지쳐갈 때쯤 대기실 벽에 붙은 안내문을 읽어봤다. '기다리다가 너무 아프거나 쓰러질 것 같으면 간호사에게 말하라'라는 게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족히 대기 4시간쯤에 우릴 불렀다. 아내와 아들은 대기실에 그대로 두고 둘째와 말로만 듣던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너무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이때 이미 우리애의 통증은 사라졌다. 그냥 도망가자는 얘를 겨우 말렸다. 온 김에 검사나 한번 받아보자며 달랬다.


기다림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내부는 커튼이 쳐진 베드가 가로로 10여 개 놓여 있었고 그위에서 또 우린 기다렸다. 다만 여긴 30분 단위로 뭔가를 했다. 피검사를 시작으로 초음파 소변검사 등을 했다.  이 검사가 마칠 때쯤 의사가 왔다. 뭐라고 말하면서 밖에서 또 기다리라고 했다. 이젠 통증도 없어졌고 받을 건 다 받은 마당에 또 이런 말을 들으니 슬슬 부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치밀한 작전을 짰다. 도망가기로 했다.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으니 한 명씩 대기실을 나왔다. 내가 맨 마지막으로 나오면서 데스크를 슬쩍 봤다.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없었다.


집에 오니 새벽 두시가 넘고 있었다.  때늦은 저녁을 허겁지겁 먹었다. 이때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교체된 의사라며 뭐라고 말했다. 한마디도 못 알아먹었지만 말하는 톤이나 분위기를 감안할 때 큰 병은 아닌 것으로 짐작됐다. 그리고 약을 받아가라고 했다. 이건 해야 될 것 같아서 얼른 병원으로 갔다. 다행히 초저녁 팀들은 다 퇴근하고 다른 직원들이었다.


이걸 계기로 우리 가족은 큰 결심을 했다. '팔다리가 잘려나가지 않으면 절대 응급실은 가지 말자'


그러나 세상일을 우리 맘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이번에 내 차례였다. 어느 날 슬슬 아랫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소화제를 먹고 그래도 효과가 없어서 진통제를 먹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손가락을 땄다. 백약이 무효였다. 병원 응급실은 안중에도 없었다. 며칠을 견뎠다. 그러나 그 통증은 지속됐다. 이번에 몇 초간 아프다가 사라지는 게 반복됐다. 일을 못할 정도가 됐다. 할 수 없이 일차의료기관인 클리닉에 갔다. 이곳은 예약 없이 순서대로  진료받을 수 있는 곳이다. 이곳도 역시 기다린다. 다만 아침 이른 시간이라서 1시간 만에 의사와 대면했다.


중국인 여자 의사는 대번에  맹장염이라고 했다. "즉시 가까운 응급실에 가서 맹장염이라 말하고 수술을 받아야 된다"고 말했다. 다시 가게로 와서 와이프와 직원한테 인수인계를 해놓고 다시 사지의 길이나 다름없는 병원 응급실로 차를 몰았다.


응급실 유경험자라서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약간 엄살을 부리면서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러나 예외는 없었다. 대기실에 내버려졌다. 다만 한 시간 단위로 나의 상태를 물었다. 무지하게 아프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들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다. 두어 시간 정도 기다렸나. 드디어 입실이 됐다. 그러나 베드가 아니고 대학교 책상 같은 게 배정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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