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너무 다른 의료시스템의 명암(B)
(사진설명) 겨울이 왔음에도 안 추워서 아우성이었는데 신년벽두부터 한파가 밀려왔다. 찬 공기가 물기와 만나 생긴 결빙 현상. 흡사 눈이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실제는 몽유도원도같은데서나 나오는 약간 몽환적 분위기. 3일 집 근처 골프장에서.
그 책걸상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더군다나 공간이 너무 좁아서 제대로 다리 뻗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생각하면 한편으론 약간 행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병원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통증이 사라진건 아니었다. 30분쯤 기다리니 간호사가 피를 몇 통 뽑으면서 통증의 정도를 물었다. 1에서 10까지.
1의 통증이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지 못해 우물쭈물하니 아기 낳을 때가 얼마라고 했다. 아기 낳은 적은 없지만 대충 그와 비슷하다고 했다. 그리고 끝이었다. 뭔 대책 같은 건 없었다. 그리고 기본적인 검사가 진행됐다. 초음파, 소변검사, 피검사, 엑스레이 등을 6시간 정도에 걸쳐서 하나씩 했다. 할 때마다 묻기는 했다. "어느 정도 아프냐"
기다림에 지쳐서 어딘가 전화를 할려고 만지작 거렸다. 응급실에선 불통이었다. 정말 할게 아무것도 없었다. 무작정 작은 책상에 엎드리거나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발자국 소리에 귀기울리는것 외는.
해가졌는지 달이 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시계를 보니 6시쯤 됐었다. 간호사가 휠체어를 갔다 댔다. 뭔가 움직임이 보였다. 그걸 타고 한참을 돌아 일인 입원실 비슷한 방에 들어갔다. 공기의 흐름을 감지할 정도로 내부 공기는 깨끗했지만 약간 추웠다. 얼른 베드에 누워 시트를 덮었다. 배의 통증보다 먼저 잠이 쏟아졌다. 막 선잠에 들렸는데 간호사가 흔들어 깨웠다. 대충 스케줄을 말해줬다.
수술의를 수배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너를 집도할 의사는 누구다. 시작은 8시 이후. 수술시간은 얼마 정도. 그리고 얼마나 아프나고 물었다. 9 정도라고 말했다. 그녀는 급하게 타이레놀 650미리 두 알을 줬다. 그리곤 잠을 청했다. 얼마쯤 지났나. 안면 있는 얼굴들이 병실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우리 식구들이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전화로 말해주지도 못했는데 용케 찾아왔다. 하루 종일 말을 안 하고 지냈더니 입에서 쉰내가 나서 마누라를 상대로 그간의 진행된 일을 상세히 브리핑했다. 이때 건장한 남자 간호사가 왔다. 그는 침대를 통째로 밀고 2층 수술실로 갔다.
수술실에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에게 날 인계했다. 핸들링하는 사람이 바뀔 때마다 끊임없이 나의 아이디를 물었다. 그리고 병명과 무슨 수술을 받을지에 대해서도. 나중엔 귀찮기도 했고 엉뚱한 단어를 말해서 진행이 멈춰지기도 했다.
수술실 내부를 얼핏 보니 굉장히 깨끗했다. 전체적으로 백색톤이었고 밝았다. 바닥은 타일 같은 것으로 마감돼 있었고 큰방에 비해 내 베드가 너무 작고 초라해 보였다. 그 베드를 옮기지 않고 원래 누웠던 곳에서 일이 진행됐다. 의료진은 남자 두 명에 여자 3명 정도. 긴장을 풀게 약간의 농담을 한 것 같은데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그들 의료진도 금방 만난 것처럼 각각의 하루 일과를 지나가는 말투로 서로에게 묻거나 답했다. 그러면서 수술 준비는 착착 진행했다. 집도의로 보이는 남자 의사가 장갑을 끼면서 무슨 사인을 주자 여자 의료진이 기관지에 뭘 넣었다. 숫자를 헤아려라 했는데 3을 넘기지 못했다. 아마 이때가 저녁 9시쯤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병원 온지 무려 11시간 만에 맹장염 환자가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감개가 무량했다.
깊은 잠에서 깼을 땐 병실이었다. 가족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수술이 진행된 것 같았다. 의사 말로는 병원 오는 시기를 놓쳐서 수술시간이 늘어났다고 했다. 보통 다음날 퇴원인데 이틀 정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가운을 벗고 퇴근 준비를 마친 보통 직장인 차림이었다. 마취가 풀리자 약간의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가족들을 보냈다. 내일 가게 일도 있고 애들 학교도 염두에 뒀다. 일단 가게 메인이 빠져버리니 좀 걱정이 됐다. 웬만한 건 대부분 일러 줬지만 그때그때 순간적으로 해결해야 될 문제가 최고 난제였다. 와이프는 가게일을 하긴 하지만 나의 보조자라는 한계를 넘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니 전체적인걸 커버하기엔 설익은 과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오래된 일꾼들하고 손발 맞춰서 잘하라고 당부했다.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이지만 쉬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주변을 살펴봤다. 4인실에 나를 포함해 3명이 누워 있었다. 한쪽엔 베드를 치우고 장난감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각 베드 간에는 커튼으로 구분해놓았다. 내 자리는 병실 입구의 오른쪽이고 옆엔 비뇨기 계통 문제로 입원한 일본인이었고, 그 앞에는 어린 학생이 있었다. 다들 자다가 소란해서 깼는지 원래 깨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린 학생의 보호자로 보이는 엄마와 여동생은 내가 들어오자 나갔고 일본인의 보호자는 안보였다. 이동네 병실은 보호자가 밤새 지낼만한 공간이 없었고 또한 있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모든 걸 간호 인력이 해결해주고 굉장히 사소한 물품도 다 공급됐다. 그리고 복도에 입원환자에게 필요한 소모품이 항상 수북이 쌓여있었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캐나다의 병원에서 첫밤을 맞았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