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뜬구름 Jan 09. 2016

캐나다 이민생활 <29>

우리와 너무 다른 의료 시스템의 명암(C)

(사진 설명) 작년엔 눈이 부족해서 스키장 개장을 못했는데 올해는 제법  눈이 쌓였다. 밴쿠버 인근 시무어 산.


밤새 미열과 진통으로 잠을 설쳤다. 분명 진통제와 항생제를 투여하고 있을 터인데 그 효과는 미미했다. 날이 밝자 주변을 둘러봤다. 어젯밤에 보았던 두병 상의 환자는 깊은 수면상태였다. 혼자 일어나 부스럭 거리는 것도 공중도덕에 어긋날 것 같아 멍청히 천장을 쳐다보며 시간을 죽였다. 전체 조명의 메인 스위치는 내 곁에 있었지만 켜야 될지 말아야 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켠다면 보통 몇 시에 켜야 하는지도 신경 써였다. 왜냐하면 그 스위치는 내 베드 바로 곁에 있어서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이 불쑥 들어와서 켜기 힘든 위치였다.


7시 반쯤 지나자 복도가 소란해지기 시작했다. 아침 배달시간이었다. 약간 궁금했다. 캐나다 병원식이 어떤지. 수술 환자라서 좀 간단했다. 커피 한잔에 물 한 컵. 그리고 수프와 약간의 부스러기. 흡사 비행기 기내식의 축소판 같았다. 배도 안 고팠고 입맛도 없는데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아침이어서 거의 다 남겼다. 다른 이들은 아침상이 어떤지 궁금해서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곁눈으로  살펴봤다. 비슷하기 했지만 약간 푸짐했다. 그리고 금방 잠에서 깬사람치고 맛있게 그릇을 비웠다.


10시쯤일까 어제 수술 의사가 점퍼 차림에 잠시 들렀다. 나의 상태를 슬쩍 보고 링거 약 들어가는 거 체크하고는 ,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아서 예정된 내일 퇴원이 좀 힘들것 같다"고 말했다. 실망이었다.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너무 낯설고 말이 통하지  않을뿐더러 말을 섞을 사람이 단한명도 없다는 게 서글펐다. 며칠은 버텨야 될 것 같았다.


간호사가 주고 간 소모품을 폈다. 수건 두장에 화장지와 가운과 배게 피 등등이었다. 가운은 등이 터진 통으로 된 것이었다. 흡사 무슬림들 입는 옷 같았다. 아쉽게도 이 옷은 링거 바늘 때문에  갈아입을 수가 없었다. 다른 소모품도 당장 필요한 게 아니었다. 그냥 차곡차곡 쌓아뒀다. 그러나 간호사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그런 것들을  가져다줬다.


조기 퇴원을 위해서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충고에 병동을 돌기 시작했다. 한 50미터 정도 되는 작은 둘레 한 바퀴가 처음엔 힘들었다. 발자국 옮길 때마다 아랫배가 당겼다. 그래도 어둑한 병실보다는 복도가 나았다. 지나가는 사람들 쳐다보기도 하고 다른 병실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러나  우리 교민은 물론이고 나와 피부색이 같은 사람을 단한명도 만나지 못했다. 만나서 뭘 할 것도 없지만 어쨌든 기다려지긴 했다.  


병실에  들어왔을 땐 각 베드의 보호자들이 와 있었다. 옆 병상의 일본인의 와이프는 백인이었다. 친지들에게 무엇을 알리는 전화를 수시로 했다. 간혹 일어가 필요할 땐 병상의 남편이 했다. 그들의 말을 종합해 볼 때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전립선 비대증으로 추정됐다. 주치의는 나랑 달랐다. 이병원엔 외래가 없으니 당연히 담당의사는 밖에서 왔다. 아마 그의 패밀리 닥터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의 처방이 좀 독특했다. 카트에 크린 베리 주스를 잔뜩 싣고 와서는 사방에 커튼을 치고는 몇 시간 쥐 죽은 듯이 고요하더니 대야에 주스를 담아 싣고 나갔다. 이게 치료였는지 이 아저씨는 저녁쯤 퇴원했다. 아주 생생했다. 표정도 밝았고.


건너편 젊은 학생은 화장실 앞이어서 자주 눈에 노출된다. 아무런 처방이나 주사도 맞지 않고 마냥 그대로 있었다. 엄마와 여동생이 곁에서 조곤조곤 말 상대해주는 정도였다.


환자가 퇴원하면 즉시 새 환자가 들어왔다.  서로 인사도 나누고 말을 해야 할 텐데 첫날엔 너무 상태가 안 좋고 그다음날엔 쏜살같이  빠져나가버렸다. 그리고 맞은편 학생은 말을  못 하는 병을 앓고 있는 것 같았다.  


저녁식사 후 집도의가 또 왔다.  "수술 시기를 놓쳐서 광범위하게 감염이 됐다. 그래서 아무래도 며칠 있어야 될 것 같다."  고 또 말했다.  안팎으로 괴로운데 그 말은 들으니 더 아파지는 것 같았다.


저녁상을 먹는 둥 마는 둥 물렸다. 와이프가 한식상을 봐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보온병에 된장국을, 그리고 찬합에 짙은 냄새를 배제한 볶음 위주로 반찬을 장만해 왔다. 냄새는 물론이고 젓가락 소리도 안 나게 살금살금 먹어치웠다. 실제 그걸 먹어도 되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해치웠다. 힘이 불끈 솟는 것 같았다. 가족들과 아무 말이나 섞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와이프랑 우리말로 떠들면서 병동  한 바퀴를 돌았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캐나다 이민생활 <2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