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뜬구름 Jan 20. 2016

캐나다 이민생활 <31>

우리와 너무 다른 의료시스템의 명암(E)

(사진설명) 첫날 아침메뉴표. 플레이크와 계란 스크램블, 머핀이 주메뉴고 나머지는 보조식품이다. 병원 밖 아침에 비해 약간 많은느낌이어서 머핀은 남겼다. 점심과 저녁은 아침에 비해 좀  헤비 했고 저녁은 빵 혹은 밥과 함께 주로 육류가 공급됐다. 좀 아쉬운 점은 반주가 없다는 것.


담당 간호사는 M이었다. 그녀는 나쁜 인상을 가진 미인이었다. 이  첫인상은 입원 내내 불친절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첫날밤은 고열이 있었지만 하루 종일 대기하느라 지친 몸이어서 깊은 수면을 취했다. 항생제와 함께 해열제도 수면에 도움을 준 것 같았다.


새벽 4시 조금 지나자 밖이 밝아왔다. 몸을 돌려 창밖을 봤다. 힘차게 푸르렀다. 조용히 주변에 누가 있는지  살펴봤다.


앞에는 70대 노인이 병원 가운도 없이 운동복 바람에 누워 있었고 그 옆에는 중년의 생생해 보이는 사람이 일찍 일어나 뭔가 다듬고 있었다. 내 바로 옆에는 비워 있었다. 아마 오기 직전에 퇴원한 것 같았다. M이 소변을 비워줬다. 몸에 촥 달라붙은 일처럼 보이지 않았다. 간호사가 소변을 무서워하는 느낌. 환자 입장에서는 약간 껄끄러운 간호사로 보였다. 아침식사 뒤 의사가 왔다.


비영어권의 백인이었다. 뭐라고 한참을 말했는데 골자는 소변에서는 균이 안 나와서 배양을 한다고 말했다. 이병동의 의사인 것 같아서 몇 년 사이 제도가 많이 바뀠음에 놀랬다. 의사 인력이 모자라서 아우성이었는데 어느새 병동에까지 상주 의사를 배치하다니 격세지감을 느꼈다. 아마 이민자가 아닐까 짐작됐다.


변한 건 또 있었다. 스마트 폰과 와이파이. 다만 병실에서는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았다. 간호사실, 수술 환자 및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에서는 빵빵하게 터졌다. 특히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은 아늑하면서 상당히 고급스럽게 꾸며 놓았다. 그리고 하루 종일 비워 있는 것 같았다. 주로 내가 즐겨 이용했고 간혹 의료인력들이 잠깐씩 잠수 타러 오는 정도였다.


다음날 아침, 책임자급으로 보이는 간호사가 " 배양하던 소변이 오염됐다"며 "다시 받아야 한다"고   통보했다. 실무자급인  M이 소변 튜브 중간쯤을 꺾은 뒤 고무로 돌돌 말았다. 그리곤 까먹었는지 한나절이 돼도 안 왔다. 결국 사달이 났다. 소변이 역류해서 주변을 적셨다. 급한 데로 다른 간호사를 불렀다. 다행히 교민 간호사가 왔다. 동네에서 안면을  아주머니였다. 미안함을 무릅쓰고 튜브 커넥터를 잠시 빼 달라고 부탁했다. 고개를 돌린 상태에서 서로의 일을 했다. 나는 잽싸게 속옷을 갈아입었다. 뭐 환자와 간호사 간이라고 치부하면 별것 아닌데 그 와중에 같은 동포여서 좀 인간적인 감정이  개입된 것 같았다.


이날 오후 옆자리에 20세 전후의 젊은이가 입실했다. 보호자라고 같이 온 아가씨는 그보다 훨씬 어린 소녀였는데 희한한 화장과 복장을 하고 있었다.  아마  여자 친구인 것 같았다. 그 환자는 거의    말을  못 하였다. 묻는 말에 뭔가 대답을 하는데 웅얼거리는 정도였다. 약물에 취한 게 아닐까 짐작됐다.


다음날 새벽 병실이 시끄러웠다. 책임간호사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고래고래고함을 질렀다. 나도 놀래서 선잠에서 깼다. 커튼 사이로 옆을 살짝 봤다. 좁은 베드에 머리가 두개였다. 그  여자 친구가 자고 있었던 것이다. 간호사의 요지는 "여긴 호텔이 아니다" 이 말만  반복했다. 의외로 그들은 단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   여자 친구는 쫒기 듯 나갔다. 여기까진 이해가 됐다. 이 친구도 아침을 먹은 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더니 가버렸다. 의사의 퇴원 허락도 없이 갈 수 있는지, 또 가는걸 간호사들이 잡지 않아도 되는지 의아했다.


그 베드엔 그날 오후 굉장히 뚱뚱한 중년이 들어왔다.  그의 배 부위 살점 중 일부는 베드 밖으로 약간 걸쳐지는 수준이었다. 의외로  가정적이었다. 아침에 그의 하니에게 전화를 하면  보통 두 시간을 채웠다. 내용은 결혼한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의 대화였다.


내 앞의 노인은 굉장히 많이 아픈 환자임에는 틀림 없는데 며칠째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었다. 간혹 옷에 변을 눌 정도의 상태였다. 그러나 면회객과의 대화는 또렷했다. 매일 아침식사시간에 남자가 찾아왔다. 그러면 사방을 커튼으로 닫고 30분 정도 속삭인다. 주로 개인 비즈니스와 사후 상속에 관한게 아닐까 추정된다. 그는 그 상태로 며칠을 더 보내다가 다른 병원으로  트랜스퍼됐다. 그는 입원내내 단 한끼도 병원밥을 먹지 못하고 고스란히 남겼다.


문간에 있던 중년은 환자로 보이지 않을 만큼 정정했다. 새 환자가 오면 주로 그가 호구조사 및 대화를 주도했다. 병실 환자 4명 중 유일하게 매일 세수를 하는 친구였다. 세수뿐만 아니라 곱슬머리 단장도  아침마다 했다.   이러던 친구가 4일째 급격히 나빠져서 휠체어를 타고 북쪽 건물로 갔다. 그곳엔 수술실과 중환자실이 있다. 궁금했지만 그 뒤는 알 수가 없다.


두 번째 입원이어서 그런지 눈에 많은 것이 들어왔다. 그리고 시설물도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요령도 생기고 간단한 건 간호사 부르지 않고 혼자서 해결했다. 소변 비우는 거라든지 베드 시트 가는 것, 링거 주입기구 알람 해제 조치 등. 열이 나면 해열제 요구도 했다. 다만 음용수는 제한이 따랐다. 물 떠는 곳엔 오직 간호사들만  출입할 수 있게  보안이 철저했다.


드디어 4일째. 의사가 나의 병명을 말했다. 그 단어를  몰라서 급하게 인터넷을 뒤졌다. 예상한 대로 그 부위에 감염이 된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계속된 처방으로 며칠 만에 상태가 호전된 것 같았다. 항생제를 혈관에 바로 주입하는 주사를 몇 대 맞고 지속적으로 링거를 맞은 결과로 보였다. 그러나 퇴원 말은 없었다. 꼬박 이틀을 더 보낸 뒤 대망의 귀가 조치가 내려졌다.  시원 섭섭했다. 병원밥이 입에 맞아가고  살만했는데...


퇴원과 함께 꼭 집어주고 싶은게 있었다. 바로 담당간호사 M에 관한걸 알려주는것. 현재 그녀의 케어는 불친절을 넘어 환자의 불편을 주는 수준이지만 향후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몰라 걱정이 됐다. 투쟁적 간호가 사고로 이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의 얘기를 조용히 듣던 책임자급 간호사는 이미 알고 있다고 말했다. 더이상 덧붙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뒤 사정은 알수 없다.(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캐나다 이민생활 <3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