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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Jul 12. 2015

캐나다 이민 <4>

고국과의 이별연습

사진 : 약간 이국적 냄새가 나는듯한 등대. 윈도우서핑중 인용함.


어쩌면 애들에겐 전국일주가  마지막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출발에 앞서 계획을 세웠다. 유원지도 중요하지만 유적지를 한바퀴 돌면서 우리나라를 좀 아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명산 고찰과 그리고 해수욕장  고적지등을 차례로 돌기로 했다. 


창원에서 출발,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일박을 하고 땅끝마을 부근 해수욕장에서 텐트를 쳤다. 지금도 그때를 간혹 얘기한다. 아침에 눈 떴을 때 시원한 해풍과 넓게 트인 바다를 보면서 일어났던 경험. 그리고  전남과 전북 충청도를 거쳐 강원도 태백과 경북을 시일을 두고 천천히 다녔다. 태백에서는 kbs배 전국레슬링대회에 출전한 조카의 경기를 관전하고 낙동강 발원지 황지연못을 뜻깊게 둘러봤다.그때 안동에서 먹었던 음식 어리둥절은 아직도 입가에 맴돈다. 삼겹살 고추장 구이인데 너무 맛있었던 것 같았다. 지금도 아내는 그걸 흉내 내 본다. 비슷하긴 하지만 항상 2프로 부족하다.


민박 모텔 텐트를 번갈아 가면서 20여일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젠 진짜 짐을 싸야 할 시점이었다. 그러면서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떠나면 상당기간 만날 수 없으리란 걸 서로가 알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더디 가는 것 같으면서 여름은 훌쩍 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출국일은 10월 1일. 동서의 부탁으로 장모님을 모시고 오클라호마로 먼저 들러기로 했다. 우리는 짐을 싸서 배로 보냈다. 소요기간은 한 달. 그동안 지내기 위한 짐을 이민가방 4개에 넣었다. 이건 손으로 들고 다녀야 할 짐이었다. 그리고 애들에게도 작은 짐 하나씩 맡겼다. 2000년 10월 1일 오전 김해공항에서 아쉬운 작별을 해야만 했다. 어머니 누님  친척 친구 등 수십 명이 나왔다. 일일이 인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어머님과 다시 한번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그때 까지도 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써셨다. 메몰차게 그 뜻을 뿌리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동경을 거쳐가는 달라스행 미국 항공기였다. 이즈음 동서의 미국 생활이 어느 정도 괘도에 올라서 달라스정도는 마중 나올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고령의 장모님과 애둘은 비행기에 타자말자 곧 잠에 빠졌다. 나와 아내는 앞일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눈을 감아도 정신이 더 맑아졌다. 오랜 비행 끝에 생전 처음 텍사스 달라스 공항에 도착했다. 약간 더운 기운이 남아있는 기온이었다. 약속대로 동서가족이 마중을 나왔다. 8개월 만에 만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무척 반가웠다. 이젠 다른 차원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고국산천을 떠난 외국생활의 첫발.

맨 먼저 기대야 할 선배격 인 셈이었다. 우선 공항 근처 진주식당에서 양념갈비로 거하게 술과 밥을 먹었다. 좀 취하고 싶었는데 아무리 마셔도 정신은 말똥 했다. 


두 번째 오클라호마생활이 시작됐다. 주변의 이민선배들에게서 뭔가 전수를 받아야만 했다. 뭘 해서 주로 먹고사는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곳은 주로 흑인들을 상대한 뷰티 스플라이가 주종이었다. 그 외는 직장인들이었고, 노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한인들은 2000여 명. 


몇십 년간 냉담했던 성당에 나갔다. 그곳에서 많은 한인들을 만났다. 다들 할 말이 많은 듯했다. 필터링하지 않고 모조리 받아들였다. 그중에 쓸만한 얘기들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았다.  직장보다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고 다들 입을 모았다. 하긴 짧은 영어로 구직하기도 힘들것이었다.  아내는 처형을 따라다니면서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사기도 하고 보기도 했다. 예정된 2주가 너무 성급하게 지나갔다. 앞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하루가 한 시간처럼, 쏜살같이 흘러갔다. 이젠 우리 가족이 정착할 밴쿠버로 떠날 시간이  가까워졌다. 무턱대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 많은 짐과 식솔을 이끌고 그곳까지 가는 게  문제였다.


 육로와 항공 두 가지 옵션이 있었다. 육로는 일주일 정도 소요될 것으로 봤다. 아니면 이곳 저곳 구경하면서 가면 2주일 정도. 이건 좀 무리일 것 같았다. 초행길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그럼  항공뿐이었다. 직항은 너무 비쌌다. 할 수 없이 캔자스시티에서 갈아타서 시애틀까지 가는걸 끊었다 그리고 그곳에선 렌터카로 가기로 했다. 어두운 안개 속을 헤매는 기분으로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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