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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살아가기
by 뜬구름 Feb 19. 2016

캐나다 이민생활 <35>

세탁소 손님이었던 두 시장의 엇갈린 횡보

(사진설명) 랭리 타운 시청. 일층에는 도서관, 체육시설, 작은 카페와 파출소가 자리하고 있다. 맨 꼭대기 층은 대강당으로 공청회 등이 주로 열린다. 전면의 펄럭이는 깃발은 국기(가운데)와 주기(왼편)와 시기다



내가 거주하는 곳은 광역 밴쿠버 중에서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랭리다. 과거 농지와 목초지 과수원이 즐비한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는데 현재는 제법 도시형태를 갖춘 곳으로 변모했다. 인구는 대략 14,5만 정도. 자치단체는 두개로 나눠져 있다. 도심 한복판은 시티고 그 외곽은 타운이라 부른다. 시티는 2만 5천의 소도시지만 있을 건 다 있다. 과거는 시티가 번창했는데 지금은 인구 12만 정도의 타운이 주도한다.


한때 두 자치 단체의 시장의 우리 세탁소 손님이었던 적이 있다. 시티의 F와 타운의 K가 그 주인공. F는 처음 만났을 땐 시장이 아니었다. 평범한 직장인. 그러나 그의 행동은 비범했다. 세탁소 주인과 손님 간에 처음 대면할 때는 악수를 할 수도 있지만 만날 때마다 그렇지 않는 게 일반적인데 그는 만날 때마다 악수를 청했다. 그것도 이상하게.  항상 검지로 내 손바닥을 살살 긇었다. 그러면서 오른쪽눈으로 윙크까지... 몹시 당황했다. 난 속으로 '이곳엔 게이가 널리 퍼져 있다는데 내 주변에서 이걸 보다니...'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인물도 출중했다. 눈에는 총기가  넘쳐흘렀고  항상 말쑥한 양복차림으로 단정했다. 그리고 거리에 만나는 사람마다 눈인사를 했다. 자식은 물론이고 와이프도 있었다. 그러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런던 중 하루는 자신이 시의원에 출마하는데 선거 포스트를 세탁소 유리창에 붙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법적으로 가능한지도 모르면서 붙여줬다. 그리고 그는 그해 시의원으로 당선됐다. 이게 그의 정치 역정의 첫걸음이다. 그리고 그의 역겨운 인사법도 조금 이해가 됐다. 선거에 나가는 자기를 기억시키기 위한 한 방법으로. 그뒤 그는 첫번째 시의원 임기를 마치고 시장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K는 전혀 시장인 줄 몰랐다.  그냥 일반적인 동네 아저씨 풍이다. 허름한 점퍼에 평범한 인상과 외모를 가졌다. 관심을 가질만한 임팩은 없었다. 그런데 그의 옷에서 명함을 발견하면서 그가 시장인 줄 알았다. 그 당시 타운홀은 우리 가게와 상당히 먼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가 우리 가게에 오리라곤 생각을 못했다. 또 그 옆엔 중국 할머니가 하는 세탁소가 있었다. 그의 말을 빌면 그 할머니가 더 이상 가게를 꾸리지 못해 문을 닫으면서 자연히 우리한테 오게 됐다고 했다. 어쨌든 반가운 손님이니 신경을 썼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그들을 알아보기 때문에 가게 홍보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두 시장이 우리 가게 손님이 되면서 자연히 그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신문을 읽거나 뉴스를 보면 먼저 그들부터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둘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F는 명예와 감투 지향형이라면 K는 침묵의 묵묵한 일꾼을 자처한다.


 F는 과거 땡 뉴스처럼  매일신문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뭘 꾸미든지 뉴스거리는 만들어 자신을 노출시킨다. 예를 들어 오래된 지역 개발 프로젝트를 발표한다던지, 시 조경 경연대회에 나가서 입상한다든지 등으로 기자들의 흥미를 자극시킨다. 또 매우 적은 인구의 시장이면서 광역 밴쿠버 시장협의회 회장을 맡아 자극적인 발언으로 유권자들의 관심을 유발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F는 좋든 나쁘든 자신이  기사화되는걸 싫어하는 것 같았다. 따라서 시민들과의 접촉이 상대적으로 뜸한 편이었다. 그러나 시장 방문은 항상 열려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시장들의 월급은 자치단체의 형편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우리 시의 경우 연봉이 3만 불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걸로 생활이 안되기 때문에 작은 사업체를 주로 운영한다.  K는 아내가 비즈니스를 했다. 그는 원래 표구점을 했었고 시장이 된 뒤에도 꾸준히 그걸 운영했다.


시정운영도 많은 차이가 났다. F는 뭔가  갈아엎고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면 K는 지키는 편이었다. 개발의 여지가 많은 타운 지역은 민간업자들이 주도적으로 개발에 앞장 선면도 있긴 있었다. 현재 이곳은 중국인 주도의 부동산 광풍이 몰아쳐 단독주택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그냥 둬도 민간인들이  개발을 선도해 나가고 있다.


시장 후의 횡보도 확연히 구분된다. 이젠 70줄인 두 시장중 K는 은퇴한 뒤 표구점으로 돌아갔고 F는 주정부의 장관을 맡으면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그는 3번의 시장을 역임한 뒤 첫 주 의원이 되는 해에 교육부 장관을 맡았다. 초선이면서 중책을 맡았고 그해 벌어진 교사들 파업을 슬기롭게 잘 대처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두 사람의 현재 위치는 다르지만  행복 수치는 비슷할 걸로 여겨진다. K는 그만큼 내성적이지만 항상 열린 마음으로  주변의 여론을 중시하는 면이 있었다.


한때 우리 동네 사과밭에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주민들이  들고일어난 적이 있었다. 현재 기반시설로는 유입인구 커버가 안되니 아파트 대신 타운 홈으로 변경하라는 주민들의 주장이었다. 이럴 땐 공청회를 연다. 나도 머릿 수땜에 그 현장에 갔었다. 주도는 동네 초등학교 학부모회에서 맡았다. 주로 아줌마들이다.


시장인 K와 8명의 시의원이 모두 나왔었다. 시청의 설명을 듣고 반대 입장인 주민대표들이 순서대로 발언을 했다. 이때 좀 놀랬다. 너무 말을 조리 있게 잘하고 많은 자료를 가지고 출석을 했던 것이다. 뭔 내용인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걸 듣는 시청 쪽 사람들의 표정으로 짐작이 갔다. 다들 쥐 죽은 듯이, 꼼짝을  못 한 상태에서 경청을 했다.  자료를 갖고 들이대니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이런 발언이 줄을 이었다. 아줌마들이 웬 말발이 그렇게나 센지, 그 집 아저씨들 힘들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간혹 남자들도 발언을 했는데 그들은 자기감정을 주체못해 말이 빨라지거나 흥분을 하는데 아줌마들은 쫀득쫀득한 말투로 시종일관 차분하게 사이드로 벗어나지 않았다.


K는 끝까지 들어주는 타입이라면 F는 아마 중간에 눌리려고 시도했을 것이다. 그만큼 둘의 캐릭터는 남달랐었다. 행복을 추구하는 수단은 극명한 차이가 나겠지만  다들 현재 각자의 위치에서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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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쿠버 이민 18년차입니다. 초기 좌충우돌시기는 지났고 이젠 숨쉴만 합니다. 세탁소하면서 입에 풀칠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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