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외국에서 살아가기
by 뜬구름 Feb 27. 2016

캐나다 이민생활 <36>

위험한 거래 개인 수표

개인 간의 거래 근간은 신용인데 간혹 그걸 깨는 사람이 있다. 특히 개인수표를 사용할 때는 특별한 관심이 요구된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다.


사실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수표를 받는다는 게 우스운 일이지만 꼭 받아야 될 경우가 생긴다. 큰 고객이거나 몇 번 와서 안면이 튼상태에서  사정을 말하면 안 받아줄 수가 없다. 그리고 오늘 꼭 옷을 입어야 하는데 카드도 없고 캐시도 없다면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  또 순진한 초창기 때는 피부가 희면 무조건 착한 사람인 줄 알았다. 이젠 그 반대로 대한다. 겉으론 믿는 척 하지만 속으로 조심한다.


장사를 하면서 이런 일 저런 일을 많이 겪으면서 야물어지긴 했지만 수표에 얽힌 기억은 좀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가 않는다. 너무 어리석었기 때문이다.


3번 부도 처리됐다. 여기선 바운스라고 한다. 그러면 바운스 피도 고스란히 물어야 한다. 이중으로 손해다.


첫 번째는 미국 사람한테 당했다. 하루는 어떤 젊은이가 옷가방에 옷을 잔뜩 싸들고 급히 해달라고 부탁했다. 어려운 일이 아니니 걱정 말라면서 그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었다. 전화번호가 낯설었다.


"이 지역이 어디냐"


"샌디에이고"


그는 그곳에서 우리 동네까지 말 씨 받으러 온 것이었다. 2600킬로쯤 되는 거리를 말을 싣고 온 것이었다. 보통 사람만 타고 장거리 가면 쉬는 시간 감안해서 한 시간에 100킬로쯤 달리고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을 운전한다고 보면 2 박삼일 걸리는 거리인데 동물을 싣고 오면 아마 일주일은 족히 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정을 알자 갑자기 그 총각이 존경스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딱 한번 우리 가게에 온 뒤 다시 돌아갔다.


 두 달 뒤 그가 다시 나타났다. "웬일이야" "그때 여기서 여자 친구를 사귔다. 그래서 이사를 왔다." 말 교미시키러 왔다가  여자 친구를 만든 것이었다. 겹경사라고나 할까. 어쨌든 반가웠다. 그는 알고 보니 마장마술 선수였고 시즌이 되면 북미를 돌아다니면서 경기를 했다. 일종의 프로 선수 턱이었다. 여자 친구도 마찬가지고. 한번 투어에 갔다 오면 옷을 산더미처럼 가져왔다. 그때마다 꼭 수표를 줬다. 개인이 아닌 회사 거였다. 무슨 말 관리하는 회사였다. 이렇게 몇 번 거래를 하다가 마지막에 펑크가 나버렸다.


일단 수표의 주소대로 찾아갔다. 국경 근방의 큰 말 관리사였다. 운동장을 끼고 마방과 축사, 대저택 등등 이 있었다. 우선 마방에 들어가서 그 사람을 물었다. 아무도 몰랐다. 알턱이 없었다. 개인마 주여서 접촉이 없었던 것이었다. 운동장에 가서 말타기 연습에 열중인 사람들 붙들고 물었다. 그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지막으로 집으로 갔다. 어디가 입구 인지도 모를 정도로 집이 컸다. 차가 가는 곳으로 가서 한참을 기다리니 주인 같이 보이지는 않는 중국 아주머니가 나왔다. 그녀도 전혀 모른다는 반응이었다. 결국 한건 부도 처리하고 말았다.


두 번째는 백인에 대한 환상을 깨게 해 주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인수한지 얼마 안 된 시점. 아주 인상이 좋으면서 부드러운 기운이 감도는 부부가 왔었다. 옷을 찾아가면서 수표를 불쑥 내밀었다. 전주인에게 수표는 받지 말라고 교육을  받긴 했지만 두 사람의 풍기는 아우라가 너무 젠틀해서 잠시 그 말을 망각해버리고 말았다. 다음날 바운스 피가 내 계좌에 찍혔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또 찾아갔다. 수표에는 발행인의 주소가 있기 때문에 찾긴 쉽다. 그러나 그들은 없었다. 이사 가면서 마지막으로 나쁜 짓을 하고 간 것이었다.  어쨌든 받아야 될 것 같아서 은행에 다니는 손님에게 물었다. 그는 그 수표를 이렇게 보더니 힘들것 같다고 말했다. 적어도 운전면허증 번호라도 적혀 있으면 가능할 수도 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달랑 사인만. 교육비라 생각했다.


세 번째는 정말 단골손님이었다. 우리 가게 옆에 살다가 25킬로 정도 멀리 이사를 간 40대의 아저씨였다. 그는 계속 우리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해서 결국 배달을 해주기로 했다. 그는 가게를 가진 보험 에이전트였다. 두 번째 결혼이었는데 작은애가 세명 딸린 행복해 보이는 가정의 대주였다. 집도 굉장히 컸다. 차를 대고 앞마당을 건너 집까지 제법 걸어가야 될 정도. 주변의 집들이 다 넓고 컸다. 아마 그런 집은 중국인들이 입을 댄다면 지금쯤 5 밀리언 이상 홋가할것으로 보인다. 그는 방한 개를 통째로 씻어야 될 옷으로 채운다. 아주머니가 드라이 클링과 물세탁을 분리해서 내게 준다. 이렇게  별문제 없이 몇 년을 거래했다. 근데 바운스가 나버렸다. 보통 그는 크레딧카드 번호를 주면서 결재를 했는데 그때 딱 한번 수표를 사용했다. 이게 말썽을 부리고 말았다. 그래도 우리는 그 손님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조심스럽게 부도 말을 꺼냈다. 그는 고의가 아니였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다시 결재를 해주었다. 대신 바운스 피는 내가 부담했다.


그는 그때 약간의 사정이 있었다.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이었다. 그래서 아마 수표를 사용한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사업체를 접고 휴 양하기 좋은 비씨주 동부 오카나간으로 이사를 갔다. 그곳은 호수가 많고 제철 과일 풍족한 곳이어서 건강 회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외도 크고 작은 돈을 떼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현금을 잘 갖고 다니지 않는 탓에 항상 카드로 결제를 한다. 캐시가 불룩한 사람들은 보통 마약거래상이거나 은퇴한 노인들이다. 간혹 카드 머신이 고장을 일으킬 때면 그냥 가져가고 다음에 달라고 한다. 90프로는 다음에 가져오고 10프로는 떼먹는다. 어떤 이는 은행에 가서 현금을 찾아와서 끝끝내 결재를 하고 옷을 찾아가는 일부도 있다.  떼먹는 사람들은 대번에 알 수 있다. 외상으로 가져가라면 굉장히 좋아한다. 그들 중에 몇몇이 우리 가게에도 안 오고 돈도 꿀꺽한다. 이중고다.


이젠 어느 정도 피부 흰 사람들의 생리를 알기 때문에 창졸간에 당하는 일은 절대 없다.  그들도 이런 나의 생각을 읽는지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계속)

keyword
magazine 외국에서 살아가기
벤쿠버 이민 18년차입니다. 초기 좌충우돌시기는 지났고 이젠 숨쉴만 합니다. 세탁소하면서 입에 풀칠하고 있고요.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