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과 맞물린 위내시경 검사
캐나다의 소소한 일상 <54>
짐패티선 병원전경
현재 코로나가 캐나다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시점에서 위내시경을 받았다. 받기 전까지도 찜찜했었다. 이 시국에 한가하게 의료인력을 위내시경에 투입시키는 게 맞느냐부터 혹시 검사과정에 바이러스가 전염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등등. 결론은 아무 탈없이 잘 끝냈고 3일이 지난 현재 별 이상 없는 것 같다.
사실 스케줄은 3주 전에 잡혔다. 위내시경 3주라면 일반적으로 빠른 케이스다. 나이, 증세 , 인터발등이 고려된 결과로 보인다. 앞선 검사가 6년 전이고 60대에 소화 불량이 몇 개월 진행됐다는 게 검사를 재촉한 걸로 보인다. 이 검사도 몇 번 연기됐다. 당초 4월 8일 4시 30분으로 됐다가 4월 7일 9시 15분으로, 하루 앞두고 9시 15분에서 9시로 변경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 이유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15분씩 쪼개는 스케줄은 좀 생소했고 그걸 통보해주는 것도 또한 의아했다. 보통 제때 가더라도 많이 기다리는 걸 감안하면 15분 정도는 통보할 필요가 없을 텐데...
마취 상태를 고려해서 보조 운전자로 재택근무 중인 아들을 대동했다. 며늘아기도 덩달아 나섰다. 검사 뒤 먹을 죽을 싸서. 뭔 큰 전투에 나서는 것도 아닌데. 어쨌든 보급과 후방 병력이 일단 완비된 셈이다.
몇 년 전 대장내시경을 했었던 짐 페티 선병원. 주차장이 낯설다. 휑하니 비었다. 몇백대 댈 수 있는 곳에 고작 20여 대만. 이곳은 검사와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기 때문에 항상 붐볐고 병원 규모도 남달랐다.
일층 안내데스크. 서양 할머니가 묻는다. 뭐하러 왔냐. 마스크도 없이 대담해 보인다. 대신 접근을 2미터쯤으로 물렸다. 바닥을 보니 노란 발자국 두 개가 붙어있다. 나만 4층으로 가고 아들 내외는 동행이 불허됐다.
4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 말자 천지를 노란 테이프로 금지라인을 쳐놓았다. 의자, 라인 손잡이 등등. 간호사로 보이는 안내는 제법 방호 구색을 가졌다. 고글 빼고 다한 것 같다. 일단 온 이유를 설명하자 의자에 앉으라나. 의자가 금줄로 원천 봉쇄돼있는데 어떻게 비집고 앉으라는 뜻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복도 끝에 검은 코트를 입고 의자에 앉아있는 중국인을 스윽 지나가는척하면서 곁눈질로 살폈다. 금줄을 깔아뭉개고 앉아있었다. 나도별 부담 없이 그 노란선을무시하고 앉았다. 그걸 본 간호사도 아무 소리 없었다.
8시 20분쯤 검사 전 단계인 작은 대기실로 안내됐다. 간호사 두 명이 내게 왔다. 남자간호사는 오른 손목에 혈관을 찾아서 주삿바늘을 고정시키고 여자 간호사는 나의 왼편에서 인적사항과 병원에 들르면 의례히 하는 질문을 10여분에 걸쳐서 했다. 보통 노라고 대답하는 게 태반인데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가 나오면 슬쩍 남자간호사 쪽으로 눈길을 주면 좀 쉽게 다시 말해줬다. 알고 보니 그는 중국인이었다. 그리곤 따뜻하게 데워진 담요를 한 장 주고는 사라졌다.
그 담요는 따뜻하고 깨끗해서 좋긴 했는데 병원의 격에는 안 맞게 허접해 보였다. 고스톱 칠 때 까는 용도 정도랄까. 군용 모포급. 잠이 슬슬 오는데 눈을 감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대각선으로 앉아있는 대기 할머니를 가는눈으로 스캔해 봤다. 나는 상의를 벗고 하의는 입은 상태에서 가운을 입었는데 이 할머니는 나와 반대였다. 대장내시경을 하는 모양이다. 반쯤 노출된 하의의 피부에서 빨간 반점이 도드라지는 걸 봐서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았다. 9시쯤 그 할머니가 어디론가 불려 갔다. 막연하지만 다음엔 내 차례일 것이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나보다 늦게 들어온 건너편 남자가 먼저 불려 간다. 어 뭐가 이상한데. 15분을 쪼개쓸정도면 어느 정도 시간을 지킨다는 뜻이데 왜 안 부르지.
담요의 온기가 사라질 때쯤 손에 잡은 휴대폰이 툭 떨어진다. 잠깐 졸았던 모양이다. 안 자려고 무던히 노력하는데도 머리만 어딘가에 닿으면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기가 힘들다. 졸지 않기 위해 주위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로 했다. 영어는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절대로 못 알아듣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잠을 쫓았다. 아까 나의 혈관을 찾았던 남자간호사가 젊은 여자 간호사와 무지하게 빠른 속도로 이빨을 까고 있다. 자기는 중국 계고 성이 강 씨라고 했다. 그것도 우리 강 씨가 쓰는 스펠인 kang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신기했다. 한자는 어떻게 쓰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발음은 같았다. 이렇게 시간 보내면서 벽시계를 보니 10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15분을 당겼다는 의미가 혼미 해지기 시작했다.
10시 10분쯤 검사실로 입실했다. 내게 뭘 물어봤던 간호사를 포함해서 4명의 간호사와 내게 뒤통수를 보이고 내 차트를 열심히 보고 있는 단발머리의 중국인 외과의사 등 총 5명이 있었다. 의사는 나의 인적사항을 반복할 때 고개를 돌려 아는 체를 했다. 머리 빼고는 완벽히 몸을 감았다. 간호사의 경우 살색이 전혀 노출되지 않게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 의사는 뭔 배짱이지. 일종의 차별화인가. 오른팔목 주삿바늘에 뭘 연결하고 코에 산소 튜브를 꽂았다. 약간 역한 플라스틱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의사는 목구멍에 쓴맛이 나는 스프레이를 뿌리고 입에 노란 플라스틱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몸을 돌렸는데 그 이후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눈을 떠보니 아들 내외가 곁에 있고 누군가 내게 우리말로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안 됐다. 웬 우리말. 자세히 들어 보니 내가 쉽게 알 수 있는 우리말이 분명했다. 그녀는 내검사실에 있었던 간호사였고 내가 한국인을 걸 알고 검사 후 설명을 담당했던 것이었다. 감사한 일이다. 좀 전 문 적인 분야의 도움을 받을 때면 항상 느끼는게 웬중국인이 이렇게 많을까였는데 이젠 그 영역에 차츰 우리도 진출한다는 게 고무적인 일이다.
그녀가 한 말은 전혀 기억에 없고 대신 아들이 전혀 줬다. 특이소견 없고 헬리코박터 검사용 조직 채취를좀했다. 그래서 24시간 동안 짜거나 매운 음식을 삼가라 정도.
점심은 내가 좋아하는 참치를 넣은 며늘아기의 죽으로 대신하고 저녁은 좀 칼칼한 김치찌개를 먹어 버렸다.
코로나 때문에 병원주차비는 받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