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중학교 시절의 꿈을 꾸었다.
촌스러운 겨자색 조끼.
일명 '코끼리 바지'라 불렸던 체크무늬 치마.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친하지도 안 친하지도 않았던 적당한 거리감의 친구.
꿈속에서는 보통 꿈이 현실인 줄 안다던데
나는 꿈속에서 현실이 아니라는 것만 지나치게 잘 알았다.
현실이 아님을 자각한 채 친구를 바라보니
복잡한 마음이 얽혀와 괜스레 마음이 울컥했다.
그 마음을 뒤로한 채 잠에서 깨어났다.
.
.
.
꺼진 방 안에 홀로 켜진 스탠드 하나.
그 앞에 놓인 흰 화면의 노트북.
그 노트북 속에서 들려오는 '공부할 때 들으면 좋은 노래' playlist.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건 지금 이 장면 밖에 없더라.
현재의 나는 졸업을 앞두고 있는 대학생.
대학 화학을 가르치는 과외선생님이자,
내가 속한 대학교 실험실의 랩장.
K의 사랑하는 연인이자,
일로만 삶을 메꾸려 하는 감정이 일그러진 인간이지.
현재의 나에게 가장 크게 감정의 요동을 일으키는 일은
내게 과거의 추억을 일깨우는 일일 거다.
과거의 추억, 아프디 아팠고 찬란하디 찬란했던 모순된 시절.
그때만 생각하면 억지로 잠재웠던 감정이 문을 비집고 기어 나오는 것만 같다.
10대의 나와 지금의 내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10대의 나는 조금 더 감정의 요동이 컸다는 거다.
10대의 나는 자주 슬펐고 그만큼 감정이 요동을 쳤다면
20대의 나는 여전히 슬퍼도 그만큼의 감정적 요동이 없다.
그 요동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건지, 무뎌진 건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느껴지는 바는 그렇다는 거지.
꺼진 방 안에 홀로 켜진 스탠드 하나.
그 앞에 놓인 흰 화면의 노트북.
그 노트북 속에서 들려오는 '공부할 때 들으면 좋은 노래' playlist.
그때도 나는 이 장면을 연출하곤 했었다.
그때와 현재의 공통점은 공부밖에 없으니까.
대신 그때는 쎈, 자이스토리 따위의 문제집을 가지각색의 볼펜을 가지고 풀었을 뿐이겠지.
그 시절의 나는 '고등래퍼 2' 무대를 보곤 했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사람은 빈첸이었다.
나와 비슷해 보이는 우울감이 좋았다.
그 우울감을 울부짖어 기어코 상대 마음까지 움직이고 마는 그가 좋았다.
그래서 종종 찾아봤었다.
감정에 진실되다 못해 순수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사람이 얼마나 빛나 보였는지.
빈첸의 무대를 볼 때면 늘 얼굴이 상기되고 가슴이 들뜨는 게 신기했다.
빈첸의 무대를 본 후, 들뜬 감정을 말과 공유하는 것도 좋았다.
너도, 나도, 빈첸도 모두가 쓰레기를 마음 한편에 놓고 사는 게 좋았다.
뭔가 연결된 것 같았으니까. 그게 나와 말을 연결해 주던 감정선이었다.
우울로 이어진 관계는 웃음으로 이어진 관계보다 질기고 깊었다.
그렇게 어긋나고,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맺어진 우리의 관계가 좋았다.
일그러진 우리가 같이 망가지는 게 좋았다.
그렇게 망가진 채로 감정이 동하는 게 좋았다.
그때의 나는 꺼진 방안에 스탠드 하나만 켜두고
흰 화면의 노트북을 통해 빈첸의 노래를 들으며 말과 카톡으로 우울을 나눴었지.
그랬었지, 그랬었어.
.
.
.
꺼진 방 안에 홀로 켜진 스탠드 하나.
그 앞에 놓인 흰 화면의 노트북.
그 노트북 속에서 들려오는 '공부할 때 들으면 좋은 노래' playlist.
이제는 잊혀질 대로 잊혀진 고등래퍼 2,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도 모를 빈첸,
카톡을 보내지도 못하는 곳으로 죽어 없어진 말.
분명 같은 장면인데도 가장 중요한 것들이 빠져버린 현재.
나는 그 장면 속에서 과거를 그리워하며
흰 화면에 새로운 글을 몇 자 써 내려간다.
그때를 그리워하며.
그때를 추억하며.
그때의 나와 너, 그리고 빈첸의 노래를 기억하면서.
찬란했던 시절.
그리고 그때의
흰 화면의 노트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