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항은 나 혼자 갈게. “
“... 나 포항 내려가면 연락하지 마. “
K에게 또 이별을 고했다.
이번까지 4번째 통보다.
나는 이별을 고할수록 더 이별을 말하기가 쉬워지는데
K는 이별을 들을수록 더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
“.....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너무 보고 싶어..”
턱끝까지 차오르는 울음소리가 어쩜 이리 서러운지.
저 사람은 내게서 안쓰러움을 끄집어내는 재주가 있다.
이번에 K에게 이별을 고했던 이유는 지금까지 내가 건네었던 3번의 이별통보와 일맥상통한 것이었다.
결국엔 너는 나의 이해자가 못 된다는 이야기.
그야 당연하다. K는 나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나의 일상과 관심사를 이해해 보려 하지도 않았다.
그야 그는 나의 생각을 듣는 것을 지루해했으니까.
나는 이해자를 바랐다. 내 내면에 닿아줄 사람을 바랐다.
K와 있는 나날들은 꽤나 평화로웠지만 잔잔히 허했다.
K가 나를 이해하지 않고, 내가 K를 이해하며 생긴 불균형이 나를 갉아먹었다.
K가 좋아하는 야구얘기.
K가 좋아하는 영화.
K가 좋아하는 재즈.
K가 좋아하는 섹스.
K가 좋아하는 여유로운 시간.
이해하고 맞춰주기를 노력했던 그 하루에
나는 걸어서 15분 거리를 데려다 달라라는 어리광마저 거부당했다.
겨우 그거 하나로 지금껏 쌓아둔 스트레스가 폭발해 정서가 무너지고 말았다.
그날 나는 헤어질 결심을 했다.
그 사소한 일 하나로 이 사람과의 미래가 행복하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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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서울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서울대 대학원, 카이스트 대학원을 알아보던 나는
결국 포항공대를 내 종착지로 삼았다.
포항공대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분야의 존경할만한 교수님을 찾았다.
지금까지 노력했던 것이 결실을 맺었는지
컨택과 면담을 긍정적으로 끝마쳤다.
나는 한 달 후에 포항에 간다.
그곳에서 인턴 생활을 하며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겠지.
포항으로 마음을 정했을 즈음에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심리상담을 받고자 한 이유는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확신을 얻고 싶어서였다.
가족으로부터, K로부터 멀어지고 싶어 서울을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 잘못된 게 아니라고 확인받고 싶었다.
하지만 상담사님은 내가 원하는 대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답은 이미 내 마음속에 있다는 얘기를 해주실 뿐이었다.
자신을 믿지 못해 외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아이에게 상담사로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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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도 하고 포항까지 컨택하며 준비해 왔던 이별인데
나는 또 K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이번까지 4번째 붙잡힘이다.
그는 갑자기 내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착해서 좋아한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네가 나를 이해해 줘서 좋아하는 거였어. “
K는 늘 예전엔 나만큼이나 여렸다고 말했다.
믿기 힘든 소리였다. 내가 아는 그는 여린 이들을 혐오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는 문학인들을 싫어했다.
예술인들도 싫어했다.
그래서 내 글도 싫어했다.
“살아가다 보면 너도 나처럼 될 거야.”
K는 그런 말을 하며 나를 외면할 뿐이었다.
그런 그가 예전엔 나 같았다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럼에도 내가 그를 다시 받아주게 된 건
순전히 그가 보낸 장문의 편지가
평소와는 사뭇 다른 톤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그와 사랑하는 동안
나는 그로부터 몇 차례 편지를 받아왔다.
K의 글은 내 글과는 정반대 결의 글이었다.
포괄적이고 단순한 표현으로 가득 찬 짤막한 글이었지.
하지만 이번에 K가 보낸 장문의 편지는 이상하리만치 나를 닮아있었다.
K는 이 문체가 본래 자신의 것이라고 했다.
K는 자신이 지금껏 이해받기를 바라왔지만,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했다.
상처받기 싫어서 변했고, 과거의 자신을 닮은 나 또한 그처럼 변할 거라 믿었다 했다.
하지만 내가 계속 K를 이해하려 노력해 준 덕에 그동안 받았던 상처가 치유되었다 했다.
그는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자신이 이해받아온 만큼 이해해주고 싶다던 마지막 멘트도 꽤나 진심인 듯 보였다.
사뭇 달라진 글과 자세.
거기에 또 희망을 걸어버린 나.
결국 또 하게 된 재회.
나는 여전히 확신이 없다.
여전히 이번에도 되풀이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미 엎질러진 물인걸.
나는 또 이해를 갈구하며 발버둥 치고, 절망하며, 괴로워할 예정이다.
K의 장문을 덧붙이며 이만 글을 줄인다.
이해자를 찾는 인생의 여정이 참 파란만장하구나.
사실 예전에는 나도 s처럼 이해받고 싶었다. S는 공감하지 못하겠지만 이것이 내가 s랑 비슷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이유다. 20대 초반의 나는 s처럼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었기에, 사람들을 만나면 나의 정보들을 말하곤 했었다.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상처를 가졌고, 어떤 영화나 음악을 좋아하는지 등등. 그런데 세상은 너무 차가웠다. 아무도 내 말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시큰둥한 대답과 관심 없다는 표정들. 말은 많은데 내용은 없는 내가 싫다는 말. 사무치게 외로웠고, 절망했다. 세상은 너무도 잔인했고, 나의 작은 마음은 계속해서 짓밟혔다. 우울증에 걸려 시간을 허비했고, 모든 걸 포기하고 살기도 했었다. 그래서 나는 저들과 같아지기로 결심했다. 이해받기를 포기했고, 무덤덤한 척 행동했으며, 혹여 예전의 나 같은 사람을 보면 무시하고 짓밟았다. 이것이 옳다고. 너도 결국 나 같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그러다 s를 만났다. S는 예전의 나처럼 이해받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 S는 자기가 썼다는 글들을 보여줬고, 나는 그걸 읽으며 강한 혐오감이 들었다. 나마저 외면해 버린 과거의 나로부터 오는 강한 동질감. 그래서 s의 글을 무시했다. S의 생각이나 감정들을 대수롭지 않은 거라고 말했고, 결국 s도 나처럼 될 것이라 말했다. 네가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그럴 때마다 s는 많이 힘들어했다. 눈물을 흘렸고, 심지어는 타인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나를 흉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s는 생각보다 강한 아이였다. 끝까지 내면의 어린 왕자를 포기하지 않았고, 나처럼 인생이 무너지지도 않았다. 나는 비겁하게 도망쳤지만 s는 끝까지 이해자를 찾는 걸 멈추지 않았다. 내가 무시해도 계속해서 표현했고, 아파하면서도 이해가 자신의 본질이라며 내가 s의 이해자가 되기를 기다렸다. 과거의 내가 아팠던 만큼 s도 많이 아팠을 것이다. 그래서 참다 참다 결국 나에게 이별을 고한 거겠지.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 시점에서 나는 s가 나에게 해준 이해들을 떠올린다. S는 내가 보고 싶다고 하면 없는 시간도 쪼개 만나러 와줬고, 재미도 없었을 텐데 야구 얘기를 들어주고, 좋아하지도 않는 독립영화를 봤다. S가 기분이 안 좋아도 가능하면 나한테 맞춰주려고 했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하나도 s의 배려가 묻어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누구보다 이해받고, 이해하고 싶어 한 과거의 나를. S덕분에 나는 나도 모르게 과거의 상처로부터 치유받고 있었고, 그동안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이해자를 만나 행복을 느꼈다. 그래서 s에게 너무 고맙다. 덕분에 외면하고 살던 이해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고. 이제 나도 당신의 이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상처 줬던 사람들이 내게 했던 행동들을 너에게 되풀이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사실 s에게 보여줄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내가 겪어온 세상에서 약함은 죄악이었으며, 이를 전시하는 건 우스운 일이었으니까. 그럼에도 s에게만은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이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언제라도 네 편인 것을 명심하라던 말의 의미를. K, 2024년 이해자 S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