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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13일 - 빌어먹을 감정따위

by 휴먼

감정만큼이나 부질없는 게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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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로 가는 항공권을 끊었다.

그냥 여행이 목적인건 아니었다.

사실 여행보다는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니까.

하지만 이번 여행은 다르다.

무려 고래를 보러가는 여행.

내 꿈, 어렸을 적부터 마음으로 그려왔던

집어삼킬듯 거대한 고래.

내 크기가 무색해지게

나를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만들

고래.

이번 여행은 고래를 보기위한 여정이다.


1월이면 오키나와에서 혹등고래가 보인다고 한다.

크기가 적어도 15m는 된다는데.

그럼 내 작은 원룸의 3배, 아니 4배는 되겠네.

신난다. 이렇게 큰 생명체가 있다니.

얼마나 가까이서 볼 수 있을까.

가까이서 보는 고래는 얼마나 장엄할까.

얼마나 나를 감동시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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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보러가기 위한 여정에는 돈이 많이 들었다.

오키나와까지 가는 항공권,

그리고 오키나와에서 또 고래를 보러 나가기 위한 요트 투어 요금.

나는 최저시급도 못받는 일개 연구원이라 돈이 없었다.

주말에는 항공권 요금이 두 배로 뛰고,

그나마 싸게 가려면 평일에 갈 수밖에 없다.

마침 교수님도 출장가셔서 안 계시겠다,

이때다 싶어 항공권을 끊어버리고 냅다 떠날 준비를 했더니-


된통 혼이 나버렸다.


"돈받고 일하는 주제에 아무리 아직 인턴이라고 해도

교수님 안 계신다고 불쑥불쑥 여행 가버리는 건 아니지 않나?"


너무 맞는 말이었다.

할 말이 없었다.


된통 혼이 난 후에

그나마 마음편히 말을 나눌 수 있는 신입생들에게

풀이 죽은 마음을 풀어놓았다.

"이건 잘못하긴 하셨네요!"

네, 맞아요.

너무 맞는 말이었다.


내가 잘못한 걸 알면서도

사람들에게 늘여놓았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늘여놓고나서 다른사람들한테까지 내가 잘못하긴 했다는 말을 들으니

더이상 입을 닫게 된 마음은 또 무엇이었을까.


가끔은 생각한다.

감정이 정말 부질없고 쓸데없다고.

특히 내 진로에는 더 그렇다.

연구에는 감정이 필요없다.

맞고 틀린것이 중요하고,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

이 진리를 통달한 자만이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해탈에 해탈을 거듭한 우리 오피스 고년차 선배는

사회적 체면을 빨리 버릴수록 편해진다는 말을 해주셨다.

그냥 수십 번 멘탈이 무너지는 말을 들으면

결국엔 그것들에 무뎌져 오직 결과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이 말이 꼭 감정을 버리면 펀해진다는 말로 들렸다.


하지만 그게 참 쉽지가 않다.

감정이란 것이 고작 찰나만이 갖다가 흘려보내는 것이고,

변덕스럽고 유동적이라 덧없는 것은 이미 알고있다.

그 찰나의 감정을 붙잡고 있는게 얼마나 쓸데 없는 짓인지.

혼이 났으면 혼이 난대로 그냥 혼자 흘려보낼 것이지.

나는 왜 그 찰나에 스스로를 옭아매고 바닥까지 끌고 가는가.


오늘은 세끼를 모두 굶다가 밤 9시가 되어서야 첫끼를 먹었다.

안 그래도 내일 여행 때문에 준비가 바쁜 와중에

하루 종일 바빠서 실수가 잦았고,

한 선배한테는 아이디어를 거부당했다.

낮에는 여행간다는 걸 말했다가 된통 혼나고,

저녁에는 퇴근했다가 다른 선배의 전화에 다시 힘겨운 오르막 출근길에 올랐다.

밤에는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다가 예약이 잘못된 걸 알았고

내일 새벽에 10만원 넘는 택시비를 내고 공항에 가야겠다 생각하며

터덜터덜 추운 길을 돌아왔다.


눈물이 났다.


이럴 때마다 생각한다.

감정이란게 없었으면 좋았을텐데.

분명 모두가 그러겠지.

"그러게 왜 굳이 오키나와 여행을 간다고해서 그래."

맞는 말이다. 왜 굳이 간다고 해서

오늘 하루 바쁘고, 눈치보고, 혼이 났을까.

왜 내 사회적 평판을 스스로 깎아버렸을까.

그 선택 또한 내 감정 때문이었다.

힐링을 하고 싶다는 감정.

도망을 가고 싶다는 감정.

고래를 보고싶다는 감정.

꿈을 보고싶다는 감정.

그 설렘, 그 괴로움.

그것들이 원인이었다.


사회는 내 감정에 관심이 없다.

내가 괴로움을 느끼든 설렘을 느끼든.

사회는 내가 이곳에서 일을 잘 수행했느냐만 따진다.

슬퍼도 참기를 강요하고

화나도 표출하지 않기를 강제한다.

즐거워도 일 분위기를 흐리면 안되고

휴식이 필요해도 사회가 허락해주는 범위 내에서 쉬어야한다.

사회는 우리의 감정에 관심이 없다.

인간이 아니라 기계가 되기를 요구한다.

인간은 감정이 있기 때문에 인간인 거지만서도

사회는 사실상 기계가 비싸서 인간을 쓰는 입장이니까.


이러한 곳에서

설렘에 휩쓸려 고래라는 꿈을 좇다가

된통 혼나고 그 슬픔을 억누르지도 못하는 인간이라니.

페급이네.

여기서는 설렘도, 슬픔도 중요하지 않은데.


감정에 무관심한 사회에 적응해보려

마음을 조금씩 억눌러본다.

억누른 마음에서 새어나오는

그 잔잔한 우울감에 적응해본다.

아마 앞으로는 설렘까지도 억누르게 되겠지.


하지만 내일까지만.

내일까지만 붙잡고 있게 해주길.


고래.

이번 한번만 보고 나면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설렘까지도 내려 놓을테니.


이번 한번까지만 설렐 수 있게.

부디.

부디.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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