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총 14시간을 일했다.
오후 11시에 퇴근을 한 이유는
시간이 늦어서 따위의 이유가 아니라
단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서.
더는 머리를 쓸 수 없어서였다.
밤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보았다.
나의 무력함과 나의 무지함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순간의 장면들을 떠올렸다.
우리 랩실에 있는 유능한 7년 차 박사님.
요즘 들어 부쩍 친해진 그분은
이상하게도 나를 높게 평가하고 계셨다.
내게 연구자로서의 재능이 있다고 하셨다.
처음이었다. 너무 기뻐서 황송한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계속 가슴 한편에는
저 사람이 나의 부족함을 언제 알아차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음습했다.
내 사수였던 사람들은
이제껏 나를 그렇게 칭찬한 적이 없었다.
사고 치고, 서투르고, 무식하고.
나는 늘 연구를 못하는 무능한 인간으로 판단되었다.
저 사람은 내 사수였던 적이 없어서
나를 그렇게 좋게 생각해 주시는 걸 거다.
내 본모습을 보게 된다면 분명 내게 실망하실 거다.
그런 생각에 휘감겨 유능한 사람을 아득바득 연기하는 나를 보고 있자니 우습기 짝이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새끼가 아는 척은.
이 연기가 통해봤자 얼마나 가겠냐고.
내가 불안한지 교수님께서는
내가 혼자 기기를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내가 무능하다고 생각했는지 내 사수께서는
내 프로젝트의 보고서를 나 대신 본인이 써서 내셨다.
무능하고, 무능하고, 무능하다.
내가 아는 거라고는
선배들과 대화할 때마다 그들과 나의 지식차에 놀라 당황하는 마음을 숨기는 법뿐.
조금은 성장했다고 착각했는데 성장은 개뿔.
나는 여전히 멍청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자 눈물이 났다.
14시간 일하고
하루종일 공부를 해도
나는 여전히 바보천치.
나는 여전히 무능하고 무능하고 무능한,
쓸모없는 인턴.
있으나마나한
무의미한 존재.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한 마디를 내뱉고 자세를 고쳐 눕는다.
옆으로 돌린 고개.
볼기짝을 타고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는 눈물을
최대한 무시하려고 애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