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의 끝을 앞둔 밤이다.
지옥 같던 대학원생활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6일간의 연휴는 달콤했다.
하지만 외로웠다.
지난 6일간을 고독 속에서 보내야 했으니까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나의 가족은 여전했다.
왜 내가 서울을 떠나고 싶어 했는지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고지식하고 나를 이상하단 듯이 바라보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으려 맞장구를 치는 어머니,
하루종일 집에 갇혀지내며 사회와 단절되어 있는 오빠.
그리고 그런 가족 속에 홀로 스며들지 못하는 나까지.
내가 왜 떠나고 싶어 했는지 알겠다.
나는 이 가족에 동화될 수 없었다.
나를 그 무엇도 할 수 없게 하는
우리 가족 특유의 어떤 지점에서의 안주가 지긋지긋했다.
다른 사람들은 알기나 할까.
나는 이 가족 속에서 꼭
코와 입이라는 두 개의 숨 쉴 구멍이 있으면서도
입으로만 숨을 쉬라고 강요받는 느낌이었다.
그래, 입만으로도 숨을 쉴 수는 있지.
하지만 나는 여태까지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하는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지난 연휴 동안 이 가족 외에
숨구멍이 트일만한 만남을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서울로 올라올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지방으로 내려가더라.
당연한 일이다. 설날에 조부모를 뵈러 가는 것이 한국의 문화니까.
그래서 5일을 픽션 속에서 보냈다.
하루 종일 만화와 드라마를 봤다.
그러다 이 집이 참을 수 없이 답답해지면 밖에서 산책을 했다.
산책길조차 참을 수 없이 답답해지면 골목길로 빠져나왔다.
내가 너무도 잘 아는 이 동네에서 최대한 낯선 길을 걸으면 답답함이 풀릴까 했다.
하지만 낯선 길을 걷는 것은 그저
영하의 날씨를 버티지 못하는 내 얇은 신발 속의 두 발을 더 시리게 할 뿐이었다.
어제는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밖에 나와봤자 내 마음을 이끄는 곳도 딱히 없었다.
결국 또 만화카페로 향했다.
집에서 불법으로도 볼 수 있는 만화인데도 시간당 3600원을 줘가면서 4시간을 있었다.
달라진 건 오로지 공간일 뿐인데도 조금은 답답함이 가시는 듯했다.
그다음엔 요즘 인싸들이 가는 듯한 트렌디한 홍대의 한 술집에 갔다.
온 테이블이 같이 온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나 홀로 4인 테이블을 독차지하고 술을 마셨다.
육회비빔밥을 먹으며 하이볼 한 잔과 생맥주 420mL를 마셨다.
원래는 하이볼 한 잔만 마시려 했지만
외향적인 사람들 틈에 홀로 맨 정신으로 있는 게 버거워서 맥주 한 잔을 더 시켰다.
그렇게 두 잔을 마시니 나 홀로 여기 앉아있는 게 별로 부끄럽지 않아 졌다.
그러고는 바로 집에 들어갔다.
기분이 뭣 같아서 그냥 술로 떡칠해버릴까 싶었지만
집에 아빠가 있다. 아빠가 있는 날엔 통금이 9시다.
내 나이가 25살이지만,
포스텍에서는 새벽 1시에도 퇴근하는 나지만 아빠가 있는 날엔 통금이 9시다.
“개같이 답답하네.”
속으로 읊조렸다.
내일은 이 연휴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다.
친구들을 만나서 진탕 술을 마시고는 바로 포항으로 떠날 거다.
친구들을 만나봤자 사실 그렇게 크게 감정 해소가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감정의 공유를 별로 바라지 않는다.
그냥 내 옆에 가족 외의 다른 사람들이 있고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술집이라는 공간에서
바람직하지 않게 과음을 하고는
바람직하지 않은 셋이서 헤롱헤롱하며 망가지고 싶다. 그뿐이다.
빨리 포항에 돌아가기나 해야겠다.
포항의 대학원 생활은 지긋지긋하지만 그래도 무의미하진 않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가치 있는 일에 몰두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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