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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먼 Jul 29. 2023

2023년 7월 25일 - 연애의 끝에서.

.

내 첫 연애가 끝났다.

고작 265일 동안의 사랑이었다.


어제 그에게 헤어지자 말했다.

울다가 웃다가, 또 울다가 웃다가.

미친년처럼 그랬다.

나는 그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모두 했다.


헤어지자 말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적어도 10분간은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한 것 같다.

그리고는 겨우 용기내서 내뱉었다. “K...우리 헤어질까…..?”


그 후 헤어지기로 마음 먹은 이유를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대충 내가 너를 위해 이만큼이나 노력했고

노력했음에도 우리의 간격은 너무도 컸고

그 간격을 좁히는 데에 한계를 느꼈고

더이상 노력할 자신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는 말이 없었다.

뜨문뜨문 미안하다는 말을 할 뿐이었다.


사실 그가 미안해할 부분은 거의 없었다.

내가 그렇게나 싫어했던 그의 부분들은

그에게는 핵심적인 부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지금껏 내가 그에게 취했던 행동들이

더 잘못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에게 변화를 요구했고 통제적이었다.

즉, 관계에 있어 폭력적이었다.

나의 요구가 그에게도 적잖이 스트레스였을텐데

그것에 대해선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 반성은 딱 여기까지.

그가 잘못한 게 크게 없듯이

나도 잘못한 게 크게 없다.

우린 그냥 달랐을 뿐이고

다른 와중에서도

그에게 나는 참을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었고

나에게 그는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사람이었던 것 뿐이다.

나는 그와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게 싫었다.

그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내가 아님이 원망스러웠고,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도 그가 아니라는 게 슬펐다.

그는 연인 관계에 있어 ‘성적인 매력’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

내 외모만으로 이 관계에서 충분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던 거고,

반면 나는 연인 관계에 있어 ‘이해와 공감’이 가장 중요한 사람인데

기대했던 것과 달리 나는 이 관계에서 충분한 만족감을 얻을 수 없었다.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이해관계가 안 맞았던 것 뿐인거다.


그런데 사실,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그 앞에선 미안함이 밀려와 자꾸만 자책을 했었다.

“….답답하진 않았어?”

“나같이 예민하고 꽉 막힌 여친 둬서 힘들진 않았어?”

“K는 재밌는 사람 좋아하는데.. 난 진지충 씹선비잖아…”

그는 나를 만났던 매일이 행복했다 말했다.

헤어지자고 말한 시점조차 그에게 미움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그도 우리의 관계를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마무리할거라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꼈다.


나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지만 그를 다시 만날 생각은 없다.

이 관계에 나는 이미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후회가 없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내가 아직은 K같은 사람을 아우를 정도로 성숙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점.

우리가 좀 더 성숙했을 때 만났더라면 이런 결말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를 좋은 기억으로 떠나보내고 싶다.

헤어졌지만 나는 그와 만난 걸 후회하지 않는다.

그와 만나는 동안 나는 그에게 많은 걸 배웠다.

감정도 배웠고

사랑도 배웠고

자기주장도 배웠고

실패할 용기도 배웠다.


나와 그는 너무도 다른 성격에 헤어졌지만

성격이 다른 덕에 그는 늘 내게 새로웠으며

내게 더 넓은 인간상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내가 이제껏 떠올리지 못했던 관점도 엿볼 수 있었다.


그와 성향적으로 평행선을 그렸음에도 나는 그가 좋은 사람이었음을 안다.

아마 다시는 못 받아 볼 그만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마음을 사랑했다.

그의 감정적인 면과 그로부터 나오는 어리숙함을 사랑했다.

그의 자유로움을 사랑했고 그의 야망을 사랑했다.

그의 세상에 대한 허무감과 지루함을 사랑했다.

그의 ‘찌질함’을 사랑했다.


사랑스러웠던 당신.

당신의 앞날을 나 또한 축복한다.

부디 잘 지내길.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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