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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먼 Aug 22. 2023

2023년 8월 22일 - 오직 나만을 위한 글

또다시 그 시기가 왔다.

뭐라고 표현은 잘 못하겠다.

그냥 ‘참을 수 없어지는’ 시기라고 하자.


이 시기의 나는 급격히 우울해진다.

가끔은 공황장애가 올라오기도 한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하루 종일 나 홀로 있고 싶고.

그리고 나 홀로 있으면서

갑자기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밀려오면

게임을 하거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최대한 외면해 본다.

하지만 결국엔 감정에 못 이겨 이렇게 마지못해 일기를 쓰게 되는 시기가 있다.

지금이 딱 그때다.


이 시기가 미치겠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원인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우울해진 이유도 잘 모르겠고

이렇게 참을 수 없어지는 이유도 잘 모르겠다.

내가 대체 뭐를 참을 수 없어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 글이라도 써서.

그렇지 않으면 나의 우울은 더 깊게 곪아 지구의 핵까지 뚫어버릴 테니까.


그래서 오늘도 천천히 살펴보기로 했다.


나는 왜 지금 미칠 것 같은가?

요즘 재결합한 남자친구를 너무 자주 만났다. 너무 자주 만나서 힘들다.

참 이상하다. 자주 안 만날 때는 오히려 그가 나를 신경 써주지 않는 것 같아서 서운하곤 했는데

자주 만나니까 또 지친다. 내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어서 또 지친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나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하루 정도는 그에게 나만의 시간을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또 왜 미칠 것 같은가. 공허하기 때문이다.

그와 있는 시간은 좋지만, 그와 있는 시간은 내게 잠깐의 쾌락만을 주고 궁극적인 행복감을 못 주는 것 같다.

그와 함께 보낸 시간들의 일부가 공허하게 느껴진다. 사실 그와 보낸 시간뿐 아니라 내 일상 자체가 공허하게 느껴진다.

내가 보낸 시간들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그와 함께 보냈던 1학기는 무슨 의미였을까. 그와 함께 보냈던 방학은 무슨 의미였을까.

그와 함께 보낼 2학기는 또 무슨 의미일까.

일상에서 얻는 행복, 나는 이상하게 그것만으로는 만족을 못하는 것 같다.

그래 그게 문제다. 나는 일상적으로 오는 행복에 너무 무디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간다. 함께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떤다.

다른 친구와 술약속을 잡는다. 술을 먹으면서 고민을 털어놓는다.

사랑하는 그와 시간을 보낸다. 꽉 껴안고 그의 체온을 느낀다.

행복한 일상이다. 행복한 일상이어야 한다.

하지만 난 그것에 무뎌져버렸다.

그 일상에서 오는 행복감이 단순히 순간적인 감정으로 소비되어 버렸다.

그래서 궁극적인 행복감을 얻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요 근래 느꼈던 가장 큰 자극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자.

아마 후쿠오카 여행이 가장 큰 자극이었을 것이다.

난 그때 좀 더 궁극적인 행복감을 느꼈던 것 같다.

우선, 내가 이 보수적인 집안에서 거짓말을 하여 해외여행을 갔다.

나의 그 첫 발걸음이 내게 큰 만족감을 주었다. 나의 용기와 성장에 만족감을 얻었다.

또 자유롭고 즉흥적인 그의 모습에 만족감과 동경심, 그리고 열등감을 느꼈다. 이것도 꽤나 큰 자극이었다.

 

이렇게 깊게 들여다보니 더욱 분명해진다.

나는 ‘성장’에서 궁극적인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구나.

단순한 일상에서 성장하기는 어렵다.

성장은 무언가 벽을 넘을 때 이루어진다.

내가 나의 틀을 깨부수고 새롭게 진전했을 때 성장은 이루어진다.

그럴 때야말로 궁극적인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올해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올해의 나는 별다른 성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20살 때는 재수를 하면서 한계를 넘었고

21살 때는 소중했던 친구들을 잃으면서 한계를 넘었고

22살 때는 이성과의 사랑을 시작하며 한계를 넘었다.

하지만 23살의 나는 별다른 성장이 없었다.

그저 15학점의 비교적 편한 1학기를 보냈고,

그와 연애를 하면서 많은 시간 동안 소소한 일상을 함께했다.

그 소소한 일상들은 나를 편안하게 해 줬지만

나의 23살을 대표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 정도면 내가 성장 도파민 중독이 아닌가 싶어 진다.


슬슬 명확해진다. 내가 미치겠는 이유가.

나의 ‘참을 수 없는 기분’은 도파민 중독 + 감정 외면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행복의 상한치가 너무 높아져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기가 어려운데,

감정을 느끼는 것도 서툴러서 일상에서 느껴지는 작은 감정과 욕구들을 외면하다 보니

어느새 공허한 인간이 되어있는 거다.

남자친구랑 자주 만나는 게 힘들어진 이유는 아마

남자친구랑 만나면서 내 감정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거다.


나는 남한테 배려를 할 때 내 감정보다 남의 감정을 더 인식해서 배려하고는 한다.

여기서 핵심은 내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거다.

보통 사람들은 배려를 할 때 ‘나는 이렇게 하고 싶지만 저 사람이 다른 걸 하고 싶어 하니까 그렇게 해주자’ 일 텐데,

나는 ‘(나는 이렇게 하고 싶지만) 저 사람이 다른 걸 하고 싶어 하니까 그렇게 해주자’라는 식이다.

내 감정이 나에게 묵살당한다.


오늘만 해도 그와 함께하면서 묵살한 감정이 얼마나 될까.

6호선을 타고 가다가 갑자기 동묘에서 쇼핑을 하자며 나를 끌고 내리던 그.

사실 그때 별로 동묘에 가고 싶지 않았다. 맞아. 생각해 보니 별로 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비올 듯 말듯한 왠지 모르게 더러운 날씨, 그리고 4~5시간 밖에 못 자서 피곤한 컨디션을 이끌고 굳이 동묘에 들리고 싶지 않았다. 그냥 빨리 쉬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 그 당시에는 별로 그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제대로 인식하질 못했다.

마치 내가 수영장에 있다고 하면,

물속에서 ‘내가 지금 날씨도 더럽고 힘들어서 굳이 동묘에 가고 싶지 않은데’를 내뱉고

물 위에서 ‘네가 갑자기 가고 싶어 하니까 그냥 같이 가줄게’를 내뱉은 느낌이다.

그래서 내 귀에 제대로 들려오는 나의 소리가 오직 내 말의 뒷부분일 뿐인 거다.


맞아. 사실 네 말대로 난 동묘 감성에 안 맞았어. 별로 거기서 쇼핑하고 싶지 않았어. 근데 네가 좋아해서 괜찮다고 했어.

네 자취방에 도착했을 때도 나 너랑 섹스하고 싶지 않았어. 그냥 너무 지치고 배고파서 밥이나 먹고 싶었어. 근데 네가 섹스를 너무 좋아하고 안 해주면 서운해할 것 같아서 했어.

사실 나는 내일은 너를 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보고 싶어 하니까 나는 또 너를 보러 가기로 했어.

그래. 나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이래서 나는 대인 관계가 어렵다.

위에서 말했듯이 내 감정보다 남의 감정을 우선 인식하고 더 크게 느껴서 배려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싶어서 계속 그렇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

관계 속에서 내가 사라지면, 다시 ‘참을 수 없어지는 시기‘가 오면서 갑자기 상대를 만나기 싫어지기 때문이다.


이미 모두 알고 있는 문제점이고 해결책도 알고 있는데

내가 게을러서 그런가.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이런 시기가 오는 것 같다.

매일 일기만 잘 써도 해결될 문제들인데 말이다.


뭔가 얘기가 길어졌네.

오늘도 결론이 ‘일기를 잘 쓰자’로 흐른다.

일기는 참 좋다.

하루동안 내가 인식하지 못한 감정들이 있을 텐데,

일기를 쓰면 하루를 되돌아보면서

내가 그 당시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온전히 다시 느끼고 충분히 되돌려 받게 된다.

무채색이었던 내 하루에 일기가 색을 칠해주는 거다.

일기를 쓰면 내가 외면했던 작은 감정들마저 돌보게 되면서

도파민 중독도, 감정을 외면하는 습관도 꽤나 커버하게 된다.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것도 늘 일기였다.


그래서 오늘도 일기를 잘 쓰자는 말로 오늘자 일기를 마무리 짓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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