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이 국교인 이곳은 교회 중심으로 마을이 구성되어있다. 매일 저녁 6시 30분이면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교회 뒤편에 위치한 우리 집에 당연 들린다.
크리스마스 날, 오전 11시에 시작하는 예배를 10시부터 광장에 앉아 기다리다 장을 보러 걸음을 옮겼다. 산타할아버지가 나눠주는 초콜릿에 이끌려 들어간 또 다른 교회 하나. 에콰도르에 약 5%밖에 되지 않는다는 개신교였다. 1시간 20분 동안 마이크를 놓지 않는, 알 수 없는 목사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아, 내가 산타의 초콜릿에 넘어갔구나.’라는 생각뿐.
목사님이 마이크를 놓는 동시에 예배는 끝났고, 늘 그래 왔듯 처음 보는 나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한국’을 아는 사람을 만났다.
“한국엔 크리스천이 그렇게 많다면서?”
“한국엔 교회가 그렇게 많다면서?”
그는 내가 한국인임을 안 후 많은 질문을 쏟아냈고, 그날 저녁 그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칠면조 고기를 앞에 두고 모두 일어나 할아버지의 대표기도를 듣는 순간이 왜 그렇게 어색하게 느껴졌을까. 식사를 마치고 서재로 불러 “나 오늘도 성경 4시간 읽었어. 이 성경책 한국에서 만들었어.”하며 보여주었던 그는 나를 정말 기쁘게 환대해 주었다.
너무나 감사했던 하루임은 틀림없었다. 그들의 환대가 진심이었음도 분명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한국을 아는 그에게 기쁜 마음이 아닌 씁쓸한 마음이 먼저 들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먼 곳까지 한국의 기독교가 알려졌다는 사실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그래서 인가, ‘나는 크리스천이야’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교회, 그리고 내가 경험한 교회가 무조건 적으로 부정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개신교 모습을 이곳에서 보기라도 하면 외면하고 싶고, 그곳에 속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먼저 든다.
내게 남은 것이 신앙인지, 보잘것없는 신념일 뿐인지, 아님 신앙과 신념 그 사이 어디쯔음에 존재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내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은 그들과 같은 ‘종교인’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되고 싶은 것이 ‘신앙인’일까 확신이 서지 않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