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은 공존할 수 있을까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만의 해단식을 했다. 갈라파고스를 한 번 이상은 못 올 것 같아 ‘갈라파고스 커피와 만난 흑맥주’를 양손 가득 집어 계산했다. 그리고 평소와 다르지 않은 요구. “봉지 주세요! 검은 봉지 없어요?” 돌아온 대답은 “갈라파고스에서는 봉지를 사용하지 않아요. 우리는 플라스틱도 사용하지 않아요. 모두 금지예요.”였다.
그제야 카페에서 왜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않고, 철로 된 빨대를 사용했는지 깨달았다. 여행 마지막이 돼서야 알다니 적잖이 충격이었다. 철 빨대를 보고 ‘깨끗이는 씻는 건가, 뭐로 씻는 건가.’ 등을 얘기하며 나의 위생에는 예민하게 반응했지만, 바다에 물고기보다 많은 플라스틱은 생각나지 않았다. 자연을 존중하는 갈라파고스섬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서 양손과 겨드랑이에 꼭 끼고 온 맥주가 식든 말든 신경 쓰이지는 않았지만, 12일 동안 내가 갈라파고스에 남기고 가는 것은 쓰레기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아니, 쓰레기만 남기고 왔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흔히 붙는 수식어 ‘아무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경이로운 섬’, ‘지구 상 마지막 남은 야생동물의 피난처’. 이들은 수식어를 보존하기 위해 갈라파고스 법칙을 만들었다. 에콰도르에서 유일하게 종이, 플라스틱, 음식을 분리수거를 하는 곳. 이구아나와 바다사자, 빨간 갈라파고스 꽃게 등 동식물은 만질 수도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다. 해변에서 음식을 먹는 것도 금지이고, 돌멩이조차 섬에서 섬으로 옮길 수 없다. 심지어 입출국 심사 시 신발에 흙이 많이 묻어있을 땐 흙조차도 털어내게 한다.
자연과 공존하기 위한 법칙. 우리는 갈라파고스 법칙을 준수하며 여행을 하고, 동물들의 서식지인 갈라파고스에 다녀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갈라파고스의 법칙은 자연과 공존하기 위한 법칙일까. 인간이 자연을 누리기 위한 법칙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바다사자와 해변에 누워있고, 같이 수영하고, 부비새들을 보기 위해 돌멩이를 올라가기 위한. 바다거북이, 상어, 고래, 펭귄들을 보기 위해 바닷속을 탐험하기 위한 인간의 법칙.
이미 물고기들의 놀이터인 바다는 인간의 놀이터가 되어버렸고 평지와 해변, 수심이 얕은 잔잔한 바다는 인간이 점령해 버렸다. 바다사자의 서식지를 인간이 점령한 셈이다. 밤이 되면 해안가로 올라와서 잠을 자는 바다사자는 가로등 조명과 사람들의 발소리에 잠을 설친다. 사람과 가로등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올라온 바다사자를 간간이 볼 수 있지만, 울타리와 철조망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가로등 조명 아래에서 잠을 자는 동물들이 부지기수다.
갈라파고스는 늘어나는 관광객을 통제할 힘을 이미 잃어버렸고, 인간이 환경을 파괴하는 속도는 생태계가 회복되는 속도를 이미 넘어서 버렸다. 갈라파고스는 이제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섬’이 아닌 ‘인간의 손이 닿은 섬’이 되어 간다. 혹, 나는 지구 상 마지막 남은 야생동물의 피난처를 보고 온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마지막에 나 또한 조금은 일조한 것은 아닐까. 물론 자연을 보존하려고 노력하고 동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흔적이 구석구석 묻어나 있어서 행복했던 갈라파고스의 12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수히 생겨나는 숙박업소들을 보며 먼 미래에도 갈라파고스의 다양한 수식어가 보존될 수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