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답답한 밤

by 만개

한국 노래방 숫자만큼 클럽이 많은 에콰도르에 축제가 열리는 날이면, 그야말로 광장은 천장 없는 클럽이다. 슬금슬금 밤 10시부터 광장으로 나온 사람들은 12시까지 살랑살랑 엉덩이를 흔들다가 새벽 2시까지 아는 사람들과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그 이후론 둥근 원이 망가질 정도로 정신없이 뛰며 춤을 춘다.

시민들이 춤을 6시간 정도 출 수 있다면, 시장이 될 사람은 12시간 정도는 출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걸까. 다음주 일요일 시장 선거를 앞두고 드디어 오늘 2달에 걸친 캠페인이 화려한 무대와 함께 막이 내렸고, 오후 1시부터 행진을 하고 춤을 추던 시장 후보는 새벽 5시까지 무대에서 시민들과 춤을 췄다. 아마 오늘 후보들은 12시간 넘게 춤을 췄을 거다.

인디헤나인 현 시장이 연임하기 위해 다시 출마했고, 새로운 메스티조 후보가 등장했다. 그렇게 사라구로는 두 공동체로 쪼개져 버렸다. 집에 깃발과 대문짝만한 후보 사진을 걸어 지지 의사를 표현하고, 자가용을 손수 후보 얼굴로 도배하는 적극적인 선거문화는 선거가 다가 올수록 다소 과격하고 날카로워졌다.

하루는 아침 먹는 식당에서 이용자 베띠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나 지금 시장 안 뽑을 거야!’ 베띠 앞에 앉아있던 나는 그녀가 부디 작게 말해주길 바랐지만, ‘나 새로운 시장 뽑을 거야. 아벨 싫어!’라고 더 크게 이어 말했다. 급하게 ’베띠 쉿! 밥 먹어 밥!’ 라고 말했지만, 아마 그날 베띠는 기관장의 검은 수첩에 이름이 올라갔을 거다.

직원 9명 중 8명이 인디헤나인 우리 기관은 매일같이 자체적으로 이용자들의 여론을 조사한다. 그리고 기관장의 검은 수첩에 이름이 올라간 이용자들은 몰래 불려 나가 협박조의 상담 아닌 상담을 받는다.

“이 기관 지금 시장이 만들었다는 거 잊지 마.”
“네가 지금 하는 모든 활동, 시장이 준 거라는 거 잊으면 안 돼.”
“지금 시장이 연임 못 하면 우리도 일 못 해. 너 우리랑 일하기 싫어?”

직원들에게 불려 나간 이용자들은 그 이후론 거짓말을 한다. ‘우리 집엔 깃발 아무것도 안 걸었어.’, ‘아직 누구 뽑을지 몰라.’ 또는 집요하게 물어보는 직원들을 피해 선거권이 없는 나에게 와서 기호 33번을 책상 위에 몰래 적어 지지 의사를 밝히곤 한다.

현 시장을 상징하는 깃발, 무지개. 다양한 인종을 포용하겠다는 뜻일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내가 머물던 1년 5개월 동안 기관 직원 9명 중 6명이 해고 됐고 그중 4명은 메스티조. 지금도 우후죽순 정치색에 의해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는데 무지개가 웬 말인가. 헛웃음이 나온다. 8×4블록의 작디작은 이곳이 참으로 누군가에겐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새 후보의 선거 캠페인 무대는 광장에서 쫓겨나 외각에 설치되었고, 나는 콜롬비아에서 오케스트라가 온다기에 그리고 우리 집 옆에 무대를 설치해서 잠을 잘 수 없었기에 나가서 춤을 췄다. 작년 3개월 일하고 해고된 시청 기관장은 무대 위로 올라가 열심히 춤을 췄다. 재작년 사라구로 Reina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선거권이 있는 이탈리아 친구는 저 멀리서 나에게 크게 인사했다. 일자리를 잃고 직장을 찾아 로하로 떠나야만 했던 옛 직원들도 오늘은 모두 마을로 돌아왔다. 평소와 달리 만취한 사람이 적었고 껴안고 뽀뽀하는 사람도 적었지만 유난히 담배 연기가 자욱했던, 실로 전투적인 밤.

진실 된 무지개의 다양성을 원하는 것인지 그저 권력을 다시 잡아보기 위함인지 그 누구도 속마음을 알 순 없다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열심히 춤추러 나온 사람들은 있었을 것이다. 인디헤나 최대 밀집 지역인 사라구로에 메스티조 시장이 나온다는 건 정말 불가능할까. 실로 답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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