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력 일기
햇수로 13년 차 강사 생활 중 가장 특별한 학생과의 수업. 강의를 통해 나름 유명한 분, 높으신 분, 이상한 놈 각계각층의 재밌는 사람들 많이 만났지만 이런 학생은 정말 처음이다. 청각장애인 학생이라니.
8개월 전 처음 강의 문의를 받고 청각장애에 대한 이해가 없어 수업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모르겠다던 내게 서희는 아주 능숙하게 자신의 장애를 설명했다. 그리곤 필담 수업을 제안했다. 자신은 이미 필담으로 공부한 경험이 있으며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 충분히 가능하다는 조언까지.
'이게 가능한 건가?', '과연 우리는 어떤 성장을 할 수 있을까?' 의심과 고민 잔뜩 안고 시작한 수업이 점점 합이 맞아간다. 척하면 척. 이제는 나도 가끔 쓰기 귀찮은 건 입모양으로 전하거나 간단한 수어로 표현한다. 웃음소리는 없지만 미소는 항상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이룬 것.
지난 8개월 두 권의 책을 끝낸 우리는 이제 한국어보다 스페인어로 더 많은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귀 믿고 덜 보고, 눈 믿고 덜 듣는 비장애인의 집중력과는 차원이 다르다. 말하기보다 어려운 것이 쓰기. 쓰기 영역에 있어서 만큼은 같은 기간 공부한 청인을 뛰어넘는다. 진짜 존멋.
서희는 스페인어를 얻었고, 나는 다시 꿈을 꾸게 됐다. 뭐든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은 소년기적 믿음이 솟는다. 된다고 생각하면 좀 더 열심히 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타자가 늘었다. 900타 나올 듯. 한컴타자연습 아직도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