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읍녀 일기
가끔 용기가 없을 땐 극약처방으로 내일 죽는다는 상상을 한다. 그래도 용기가 나지 않을 땐 이것이 단순한 상상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더한다. 효과가 좋다. 저지른 뒤의 두려운 실패도 쪽팔림도 모두 알 거 없는 이야기가 돼 버리니까.
물론 죽어도 못하겠는 일들이 있어 문제다. 꼴 난 자존심이 죽음 따위는 쉽게 이기기도 하고, 며칠 꾹 참고 실천한 다이어트도 내일 죽는다 생각하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은 곱다지만. (근데 귀신이 예뻐서 모하는뎅)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건 빠울루 꼬엘류의 자히르 때문이다. 자히르 속 전쟁터. 치명상을 입은 군인들 중 누구도 의사를 불러 달라 외치지 않는다. 그저 덤덤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말을 남길 뿐. 절망이 주는 선물일지 모른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그때 진짜 나를 만나게 된다. 내가 가장 원하는 것에 솔직해지는 거다.
양평으로 이사를 왔다니 서종의 한 예술가 인친으로부터 독서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나의 이야기는 자히르로부터 할 생각이다. 내일의 죽음을 생각하며 오늘도 용기를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