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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송 Nov 26. 2023

밤 좋아하세요?


내가 어렸을 때 우리 할머니는 겨울만 되면,

뒷산에서 주워오신 밤을 쩌주시곤 했다.


그리 고급지고 상품성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군데군데 벌레가 먹은 밤이지만

할머니의 애정 한 숟가락 얹어져서 쪄낸 밤은 달고 맛있었다.


누이와 내가 제비새끼처럼 입을 벌리고 있으면

밤을 칼로 깎아서 입안 가득 넣어주시곤 했다.


밤을 짜내고 나면 입으로 반을 잘라 이로 긁어내어 먹으면

똑같이 단맛은 나지만 밤이 다 부서져 버려서

좋은 식감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였을까 할머니는 늘 칼로 밤을 하나하나 까주셨다.

딱딱한 겉껍질과 까슬한 속껍질을 두 번이나 벗겨야 하고

쪄서 말랑해진 밤이 행여 부서질까 살살 잡고 아주 소중히 깎아주셨다.


나도 중학생쯤 됐을 때 할머니를 흉내 내며 칼로 밤을 깎다가

손이 베인적이 있다.

그때 할머니가 얼마나 고되고 힘든 작업을 손주들을 위해서

기꺼이 그것도 손이 베일 수 도 있는 번거로운 작업을

해주셨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 어머니도 내게 항상 밤을 깎아주셨다.

우리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아주 행복한 마음으로

기꺼이 번거로운 작업을 해서 주시곤 했다.


나도 이제 성인이 되고 커서 내가 까먹는 밤을 볼 때마다

얼마나 귀찮고 힘들고 위험한 밤 까기를 나를 위해서 하기도

어려운 일을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이을 위해서

해준다면 얼마나 큰 행복이고 기쁨일지 생각하며

갑자기 추워진 초겨울에 공주 밤을 쪄서

밥대신 먹다가 문뜩 든 추억이 밤맛처럼 달달하게

할머니와 어머니의 사랑이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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