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 이토.
얼마 전에 알게 된 일본 재즈 뮤지션이다. 음악을 듣자마자 천재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만 사람. 이토록 서정적이고도 우울한 재즈. 그와 나의 낭만적인 만남. 처음 그의 음악을 들었을 때, 나는 지하철임을 망각하고선 눈물을 흘릴 뻔 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누른 뒤, 점점 깊어져 가는 음악을 들으며 마치 안개 속을 수영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발을 내딛을수록 더 희뿌연 연기들이 나를 에워싸는 곳. 그런 공간, 그런 울림. 이 음악이 어느 정도 우울하다고 어렴풋이 느끼기는 했지만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그냥 아름다운 거라고, 들어도 슬퍼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이미 그의 음악 때문에 많은 것이 가라앉아 버렸음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우울하고 아름답다는 것이 싫어서, 그냥 아름답고 싶었기 때문에.
길을 가다 거리의 모든 것들이 갑자기 아무런 쓸모가 없어졌을 때 나는 지금 그의 음악 때문에 슬프다는 것을 인정했다. 무겁게 눌러 내리는 피아노 선율도, 고독하게 퉁기는 기타 소리도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슬플지도 모르는 멜로디라고 생각하고 만 것이다. 아름다운 독일까. 나를 우울하게 만들까.
사랑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당장에라도 키스를 퍼붓고 싶을 때가 있다. 아름다울 때. 너무 아름다울 때는 가끔 그러고 싶은 때가 있다. 그건 친구고 연인이고 또 부모고 형제고의 문제가 아니고 그저 사람의 문제다. 미운 동생도 어쩔 땐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어서 가만히 자는 동생의 손을 잡을 때가 있고, 밥을 먹는 친구의 얼굴이 가끔은 그렇게나 아름다워서 지긋이 바라볼 때가 있는 것처럼.
그가 나를 본다면 나는 그럴까. 아마도. 나는 그렇지 않을까. 눈을 마주치면, 연주를 하면, 함께 길을 걸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