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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 Dec 09. 2016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선택지라고, 무이는 말했다.

사람은 아무런 형체도 없는 것에 가장 상처를 받는대,

그러니 사람이야 말로 가장 나약하지 않겠어.    


  무이는 먹고 먹히는 야생 동물들을 보고 있자면 저들이야말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냐고 생각했다고 한다. 무엇을 원하는지 알면서도 가질 수 없고, 누구나 느낀다는 현실의 벽 앞에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사람보다야 본능을 충족시키는 노력으로 살아가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삶과 죽음을 통달한 듯한 무심한 얼굴은 무이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무이와 처음 말을 나누었던 때, 분명 그럴 리 없음에도 먼 어딘가를 걷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첫인상부터가 독특한 아이라고 생각하곤 했으나 알면 알수록 초연하다 못해 허무한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그것이 나와 무이가 또래였음에도 꼭 그 앞에 서면 어린아이가 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던 이유였다. 언젠가 무이가 말했다. 태어나서부터 끊임없이 생명이 태어나고 죽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지금은 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셨지만, 살아계실 땐 닭부터 시작하여 양이나 소 등의 다양한 가축들을 대규모로 다뤘었다고 했다. 그 사이에서 무이는 닭의 목이 날아가는 장면이나 양의 가죽을 벗기는 장면 등을 수 없이 봐왔고 결국엔 부모님의 최후마저 생생히 보았노라고 말했다. 당연히 앞의 사유들이 를 초연히 만든 이유에 포함은 되어 있겠지만 사실 내 생각엔 무이의 본래 성질 자체가 초연하여 그런 것들에 더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무이는 수많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살아온 아이였고 그러니 자연스럽게 아주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무이 스스로는 그런 자신을 불쌍히 여기곤 했는데, 그런 생각들이 자신의 인생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하루는 무이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래도, 많은 것을 느끼면 좋은 것 아니겠냐고.

무이는 질문에 대한 가치를 찾지 못했는지 고개만 까딱거리다 TV로 눈을 돌렸다. 이윽고 보던 프로의 막이 올라가자 입을 열었다. 뭐, 이 땅의 주인이라면 필요한 생각일지도 모르지. 짐이 많아 감당이 안 되는 그런 사람 말이야. 앞으로도 펴-엉생을 끝없는 초원에서 살아갈 나에겐 아니더라도. 대답이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알 것도 같아서 무이를 가만히 보았다. 적어도 그런 깨달음은 닭과 양을 키우는 데에 아무 쓸모가 없어. 너라면 몰라도.

그날 밤, 나는 무이와 듬성듬성 풀이 자란 언덕에 앉아 별을 보았다. 밤마다 찾아오는 수많은 별들에 대하여선 알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녀의 일생이란. 삶에 대해 안다고 하여, 죽음에 대해 안다고 하여도 다음 날이 되면 또다시 닭의 알을 모으고, 어쩌면 닭의 목을 자르고, 양을 몰고, 양 털을 깎아야만 했으니까. 이전에 나의 터전이었던 곳에서 볼 수 없었던 수 억 개의 별들을 보면서도 예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무이는 별 아래에서 꼭 버림받은 신처럼, 억울하고도 그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을 하지 않으면 시간이 가지 않는 곳에서의 삶은 정말로 지겹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하나 보단 둘이 낫다고, 무이는 이전보다 적적하지 않아서 좋다며 할머니 같은 소리를 하곤 했다. 내가 이 곳에 머문 지 사흘째에 나는 무이에게 놀이 같은 것을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 그 역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이왕이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고 멈춰도 다시 지속할 수 있는 놀이를 떠올리려 애썼다. 그 즈음 나는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산더미 처럼 많은 상태였기에 내 궁금증 해소를 위하여 질문 놀이를 하자고 제안했다. 질문 놀이란 둘이 하루에 딱 하나씩 서로에게 질문을 하는 간단한 룰로 이루어진 놀이였다. 대답은 언제나 할 수 있지만, 웬만해서는 잠들기 전에 하기로 했다. 신중한 것은 언제나 좋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그날 밤 서로에게 할 질문을 생각하며 잠들었다.

  놀이 첫째 날, 나의 질문은 가장 아끼던 동물은 무엇이었나,였고 무이의 질문은 살던 데서는 뭐가 그렇게 힘들었어? 였다. 그 날 우리는 침묵 속에서 각자의 일을 하며 답변을 위한 단어를 골랐다. 원래라면 멍하니 TV를 볼 시간에 우리는 대답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힘들었던 것. 셀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나 많았는데, 꺼먼 밤에 박혀있는 별에 어느새 짐이 조금씩 덜려 있는 것 같았다. 그때의 우울함이 지금 보자니 우습기 짝이 없었다. 갑자기 웃음이 났다. 엄마가 아빠가, 동생이 생각나서, 학교가, 선생님이, 책상이, 잊고 싶었던 친구가 끝없이 생각나서, 그런데 그것들이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사실이 웃음이 났다. 비웃음에서 시작된 웃음이 번지고 번져 메아리처럼 떠돌았다.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한참을 실성한 듯이 웃다가 눈물까지 흘렸다. 무이는 그런 모습에 당황했는지 표정이 아리송해졌다. 무이가 지은 생경한 표정이 너무 웃겼다. 하하하, 또 한참을 웃었다.


  그곳에서의 내 존재란, 길에 버려진 전단지와도 같았어, 무이. 세상에 쓰레기가 정말로 많은데도 애초에 목적도, 결말도, 과정도 하찮은 게 나였단 말이야. 이리저리 떠밀리다가 결국엔 폐기 처분이 될 운명. 게다가 종이 주제엔 감당할 수도 없는 짐이 내 등엔 붙어있었어. 동영이, 핏줄로 이어진 내 쌍둥이, 동영이 말이야. 힘이 없어도, 그래도 지키고 싶었던 아이.

  동영이는 나로 인해 죽었다. 나에게서 부족한 것이 동영이에겐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내키지 않았지만 나를 방치할 수 없어 수술을 결심했다. 나와 동영이는 그렇게 수술에 들어갔고, 나만, 살아서, 돌아왔다. 아빠는 그 날부터 내 앞에서만 말을 잃었다. 말 대신 눈으로 끊임없이 나에게 쏟아부었다. 그 눈빛은 나도 잘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중학교 3학년, 반에서 세 명의 여자아이의 지갑이 사라졌을 때의 반 아이들의 눈빛, 나의 탐욕을 저주하고 내 행위에 대한 욕설을 내뱉는 눈빛이었다. 동영이에게 미안하면서도 나는 동영이를 원망했다. 죽지 말았어야지, 차라리 누군가 죽을 거였다면 내가 죽었어야지-.

 

  무이는 거기까지 듣고선 말했다. 너는 아직도 동영이를 사랑하는구나.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나는 동영이를 누구보다 사랑했다. 나에게서 그의 존재가 없어진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어느 때와 다르지 않은 무이의 처연하고도 무심한 표정에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 그 완벽한 아이가 나 때문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는 게 두려웠다. 언젠간 죗값을 묻는 자가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차라리 죽는 게 나은 삶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를 가만히 보던 무이가 별을 보러 가자 말했다. 이기적 이게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 5분이 채 되지 않아 모든 것을 잊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당장엔 죽을 수도 없었기에 주섬 주섬 별을 보러 갈 채비를 했다. 갑자기 자유로웠다. 자유로움이 나를 위로했다. 누구의 시선도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이 초원 위가 사랑스러웠다. 꼭 동영이 같았다. 나와 무이는 한 시간 가량 떠돌며 별을 보다가 돌아와 곯아떨어지듯 잠에 들었다. 온몸에 스며든 서늘한 공기들이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책감들을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하루 만에 우리의 질문 놀이가 파국을 맞았다. 이제부터는 어떤 것이든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나 역시 어떤 질문에도 대답해야지, 다짐했다.


  아침을 먹다가 문득 무이가 말했다. 나는 양이 한 마리 죽을 때마다 따라서 죽고 싶어 져. 그런 담담한 이야기가 또 있을 수가 없었다. 저 혼자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워 보였다. 내가 말이 없자 어깨를 으쓱하더니 그냥, 저것들엔 죽음에 대한 의지가 있어서 받아들이는 게 아니잖아, 나는 단지 내 삶을 포기하는 선택과 또 다른 선택지들이 궁금할 뿐이야, 하고 말했다.

  선택지라. 삶과 죽음을 과연 같은 종이 위의 선택지로 봐도 괜찮을까. 살면서 죽고 싶다는 사람들은 많이 보아왔지만 삶 자체를 죽음과 동일한 선택권으로 보고 있는 이는 처음이었다. 우유를 마시면서 할 말을 골똘히 찾고 있는 와중에 무이는 말을 이었다. 이런 삶이든 저런 삶이든 상처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비참하지 않니.

  항상 무던한 듯싶던 무의도 사실은 그렇지 않던 거였다. 문득 가방에 있던 MP3가 생각났다. 동영이와 내가 좋아했던 가수의 음악이 잔뜩 담긴 거였다. 나는 익숙하게 노래를 틀었다. 무이, 우리나라에서 한창 유행했던 노래야. 쿵작 쿵작 신이 나는 아이돌 노래였다. 나와 무이는 그날 아침 닭장에 가는 대신 신나게 춤을 췄다. 우리의 몸짓은 각자를 위로하는 몸짓이었다. 짝 짝 손뼉을 치고, 쿵 쿵 발을 굴렀다.


아마도 그 날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진정 서로를 위해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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