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한 어느 날, 들려오던 버스 안내방송이 들려준 이야기
A씨는 평소처럼 회사에서 나와 버스를 탔다. 집까지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 남짓으로, 이 때 대부분 잠을 청한다. A씨는 이어폰을 꼈다. 연습하고 있는 피아노곡을 들으면서 가면 조금이라도 실력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다. 그리고 다른 날들과 비슷한 시각에 잠이 들었다. A씨를 깨운 것은 다름 아닌 전화 벨소리였다. 눈을 뜨지 않은 채 대강 전화를 받아본다. 역시나, 쓸데없는 전화로 짜증나게 한다고 생각하며 다시 눈을 감는다. 전화를 끊고 들리는 소리는 버스의 안내 방송이었다.
‘이번 정류소는 동일 자동차 학원입니다. 다음 정류소는 인정 프린스 아파트입니다.’
A씨는 다시 눈을 감는다. 잠든 지 꽤 지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는데 집에 가려면 멀었다. 한 번 깬 잠이 쉽게 오진 않는 걸 알지만 어쨌든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그 때 다시 들리는 버스 안내 방송은 음악 사이로 …인정 프린스 아파트…가 얼핏 들려왔다. 저번 정류소가 동일 자동차 학원이었으므로 이번 정류소가 인정 프린스 아파트이겠거니 생각한다. 버스는 다시 달리고 그녀는 다시 잠에 들려고 했다. 이 때 문득 오늘 만났던 B업체 김 과장이 생각났다. 그 새끼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니면 뭘까? 돼지 새끼일까 개새끼 일까. 뭐 대충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낮에 있었던 일을 회상… 하려다 얕은 잠이 들은 모양이다.
버스는 계속 달리고 A씨와 A씨 옆자리의 남자는 쌍으로 고개를 휘젓는다. 삐걱대는 의자에서 잘도 잔다. A씨는 살짝 깨 옆 자리 남자를 확인한다. 본 적 있는 얼굴이다. 16층사는 J씨다. 이 남자가 내릴 때 같이 내리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살짝 안심한다. 다시 A씨는 …인정 프린스 아파트…에서 기시감을 느끼고 잠이 확 깼다. A씨는 분명히 아까 인정 프린스 아파트 정류소를 지나치는 방송을 들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벌써 여섯시에서 두 시간이 지난 여덟시다. 그러나 A씨는 무슨 문제가 일어났는지 제기할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일단, 한 번 더 기다려본다. A씨는 이어폰을 빼고 겁먹은 듯, 창밖을 본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동네가 보인다. 그리고 들려오는 안내 방송.
‘이번 정류소는 동일 자동차 학원입니다. 다음 정류소는 인정 프린스 아파트입니다.’
A씨는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해본다. 1. 안내 방송 기계의 고장.(사람들이 평온한 것을 보아 가장 확률이 높다.) 2. 종점을 찍고 버스가 다시 회사로 가고 있다. (물론 억지지만, 가끔 초고속으로 달리기도 하므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버스에…. 세 번째 이유를 꺼내려다가 접는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유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 때, 버스 안내 방송이 다시 들려온다.
‘이번 정류소는 동일 자동차 학원입니다. 다음 정류소는 인정 프린스 아파트입니다.’
A씨는 버스 기사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아직 그러기엔 용기가 없다. 그러다가 버스 위치를 확인해 볼 수 있는 N사의 버스 안내 시스템이 생각난다. 일단, 핸드폰을 확인해본다.
켜지지 않는다. 데이터가 아닌 핸드폰 자체가 먹통이다. 음악을 듣는 사이에 배터리가 방전되었다고 생각하며 아직도 고개를 휘두르며 자고 있는 J씨를 바라본다. 이 사람에게 핸드폰이라도 빌리고 싶다. 그 사이에 버스는 안내 방송을 한 번 더 내보냈다. A씨는 이제 너무나도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