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이 귀에 녹아내린다면
대부분 음악의 제목들은 열 글자 이내이다. 열 글자는커녕 한 글자 혹은 두 글자로 이루어진 제목들도 많다.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이 기억하기 쉬운 이름으로 지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오늘 제목에 ~이 들어간 이유는, 제목의 길이가 30자가 넘어서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소개해 줬을 때 그 사람이 기억할 확률이 0%에 가까울 정도로 길다. 정말이지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검색 결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노래 제목이라고 한단다.
이제는 꽤나 유명한 뮤지션, 한희정은 현재 솔로로 활동하고 있지만 예전엔 푸른 새벽이라는 밴드에서 활동했었다. 2003년에 데뷔한 밴드인데, 아직도 푸른 새벽을 검색하면 그때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나 역시 그때의 음악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그들은, 너그럽지 못한 현실 때문에 해체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푸른 새벽의 음악은 신기하다. 벌써 10년 가까이 지난 음악들임에도 촌스럽지 않다. 오히려 지금의 음악들보다 더 몽환적인 느낌을 잘 살렸을 뿐 아니라 청아하면서도 차분한 한희정의 목소리 또한 돋보인다. 이 음악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음악 전체가 그렇다. 그래서 푸른 새벽의 앨범은 명반이라고 불린다. 물론 지금은 구하기 어려워졌지만.
푸른 새벽 - 우리의 대화는 섬과 섬 사이의 심해처럼 알 수 없는 짧은 단어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Underset, 그 이상(理想)의 낡은 여행과 다다름
모든 것의 끝은 또 새로운 시작
어둠, 투명하게 모든 질문을 삼키어
때마침 내게 다다른 네 망각, 혹은 기억들의 울림들
하나엔 그 이상(以上)의 소통을 담아 보내고
그리 중요하지 않던 우리의 끝
죽음, 그로 인해 한껏 가벼워지는데
때마침 네게 다다를 내 절정, 혹은 순수로의 울림들
푸른 새벽의 음악은 그야말로 푸른색이다. 안정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지는 않지만, 묘하게 안정적인 느낌이 든다. 쿵쿵 울리는 드럼 소리는 마음 깊은 곳까지 깊게 울린다. 가만히 듣고 있자면 공명하는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가사는 도무지 해석하기가 힘들다. 무어라고 해석해야 좋을지, 감도 잡히지 않지만 느껴지는 기운이랄까 그런 것들이 안개처럼 나를 감싼다. 그들의 음악은 한 마디로 신비하다. 신비해서 듣는다. 이런 음악 때문인지 나의 세상은 이어폰과 함께일 때 영화가 된다. 서정적인 가사와 몽환의 끝을 달리는 음이 뒤섞여 장면 자체를 신비롭게 만든다.
유명 포털 사이트에 따르면 이런 음악 장르를 인디 드림팝이라고 하는데, 대체 드림팝이 무슨 장르인지 너무 궁금해서 검색을 했다.
멜로디뿐만 아니라 소리의 질감에도 신경을 써서 몽롱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울림 효과를 준 악기 연주, 과장된 연기 없이 말하듯 부르거나 속삭이는 것 같은 보컬 등이 드림팝 노래에서 두루 나타난다. 자아성찰, 실존주의에 관한 가사도 일반적인 특성 중 하나다.
그래, 소리의 질감에 신경을 써서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것이 이 음악과 잘 맞다. 푸른 새벽의 음악들은 일상에서 느껴지는 느낌들을 몽롱한 사운드로, 그러나 멀리 느껴지지 않게 끔 표현한다. 솔직히 인디 밴드라고 하니 인디 음악 같은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더욱 유명하지 않았을까.
그들의 음악은 나에겐 큰 위로다. 어쩌면 새벽의 친구 같기도 하다. 독보적인 감성과 몽환적인 사운드가 섞여 푸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우울한 날, 혹은 잔잔한 날에 음악이 필요하다면 이 곡을 들어보자. 아마도 어느 새 푸른 새벽의 전 곡을 다 듣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