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절절한 드라마같은 음악 하나
음악은 때로 짧은 책이다. 3-4분이라는 짧은 순간에도 이야기가 담길 때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 가져온 음악, 오필리아는 그런 음악이다. 눈을 감으면 한 여자가 보인다. 사랑하는 남자를 마음껏 사랑하지 못해서 고통으로 가득 찬 여자. 당신이 어떤 사람이어도 나는 당신을 사랑할 것이라는 미련한 여자-
그 여자의 이름은 오필리아. 바로 햄릿의 연인이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햄릿을 읽었다면 그녀가 어떤 여성이었는지 알 것이다. 오필리아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남자를 이미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마는 비극적이고도 낭만적인 여성이다.
오필리아라는 캐릭터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 때문에 그녀와 관련된 작품이 매우 많다고한다. 사랑때문에 모든것을 내던지는 스토리는 예나 지금이나 인기가 있었나보다. 이 작품을 현대의 관점으로 보면 막장 요소가 다분한 이야기이지만말이다.
이 작품은 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의 오필리아 라는 작품이다.
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의 작품 《오필리아》는 자신의 아버지가 연인 햄릿에게 살해되자 강물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손에 꽃을 꺾어 들고 강물 위에 누워있는 양 죽음을 맞고 있는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라파엘 전파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 수작으로 손꼽힌다. 라파엘 전파의 화가들은 셰익스피어의 문학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는데 특히 오필리아의 비극적이고 낭만적인 내용은 자주 애용되었다. 밀레이는 이러한 비련의 여주인공 오필리아의 모습을 청초하고 아름답게, 또 극적이고 관능적으로 묘사하였다.
이 앨범의 커버 또한 오필리아가 장식했다. 고요한 듯 섬세한 감정선이 느껴지는 앨범 커버.
심규선 - 오필리아
바로보기 그대의 낱말들은 술처럼 달기에 나는 주저 없이 모두 받아 마셔요
내가 하는 말을 나조차 못 믿을 때도 너는 나를 다 믿었죠
어떤 때에 가장 기쁨을 느끼고 어떤 때에 가장 무력한 지
나 자신도 알지 못 했던 부분과 나의 모든 것에 관여되고 있어
나는 녹지 않는 얼음으로 당신을 조각해서 두 팔로 끌어안고 절대 놓지 않을 거예요
내 미련함을 탓해도 돼요 가슴이 시려와도 나는 기쁠 거예요
이제 그만 악마가 나를 포기하게 하시고 떠났다가 다시 오라 내게 머물지 말고
부유한 노예 녹지 않는 얼음 타지 않는 불 날이 없는 칼
화려한 외면 피 흘리는 영혼 하나인 극단 그것들의 시
나는 녹지 않는 얼음으로 당신을 조각해서 두 팔로 끌어안고 절대 놓지 않을 거예요
내 미련함을 탓해도 돼요 가슴이 시려와도 나는 기쁠 거예요
그래 녹지 않는 얼음처럼 아픔을 마비하고 고통을 무감케 해 함께 할 수 없을 거예요
서로를 찢고 할퀼 거예요 가슴이 시려와도 나는 모를 거예요
그대의 낱말들은 그대의 낱말들은
심규선의 음악들은 강/약이 매우 매력적이다. 부드럽게 속삭이는 듯 하다가도 어느새 단호하고 강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말 그대로 이야기 하는 듯 한 노래들. 뛰어난 멜로디 구성 뿐 아니라 감각적인 가사들도 매우 매력적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드나보다.
이 곡은 우아하다. 셰익스피어를 읽고 있으면 웅장한 느낌이 들곤 하는데, 그런 느낌을 여성적으로 표현한 것이 대단하다. 클래식의 풍미를 살려내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놓지 않았다. 이 곡의 주체는 여성이기 때문에 곡에서도 섬세함이 느껴진다. 슬픔이 느껴지는 보석과 같은 곡이다.
그녀의 이정표가 꺾인 것은 가사에서 느낄 수 있다. 모순 가득한 가사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그대로 대변한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아버지를 죽여, 더이상 사랑하기 힘들어진 이 상황에서 그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녹지 않는 얼음으로 조각을 해서라도 끌어 안고 있겠다는 굳은 마음은 더욱 처절하게 느껴진다.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들처럼 그녀의 ‘오필리아’ 역시 물가를 떠돌던 오필리아가 죽음에 이르는 장면을 떠올리게끔 한다. 노랫말 속에는 연인으로부터 버림받아 고통스러웠던 내면의 심리, 사랑하는 연인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당한 충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 사랑을 향한 처절한 고백 같은 것들이 녹아 있다. 루시아의 ‘오필리아’ 속에서 그녀는 실성하지도, 순종적이지도, 수동적이지도 않다. 햄릿을 향해 보내는 이 고달픈 세레나데는 오히려 그녀를 수많은 제약과 운명으로 인해 생과 사랑을 동시에 놓아버릴 수밖에 없었던 사랑의 주체로 승격시켜 내고 있다.
이 곡은 그냥 들어도 좋지만 이야기를 곱씹고 곱씹어 충분히 그녀의 심정을 느껴본 뒤 들으면 훨씬 더 처절하고 안타깝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동시에 정말 연극을 보는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오늘의 인디 음악은, 이야기가 중점이 된다.
독서의 계절인 만큼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책과 관련된 다양한 예술작품을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나의 작품과 그에 파생된 다양한 작품들을 읽으며 또 다른 관점으로 대상을 바라보거나 대상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