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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 Nov 16. 2015

마음이 어지러운 날, 바느질 명상

색다른 명상 방법, 바느질을 하며 스트레스를 잊어보자.


해야 하는 일은 많은데 하고 있는 일은 없고,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만 같은 날. 자꾸만 비가 오고, 우중충하니 마음까지 우중충해져서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할 것 만 같은 날.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스트레스가 있고, 말한다고 해결되지 않거나 말을 해도 답답한 부분 역시, 있다. 항상 행복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스트레스가 있다. 스트레스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문제다.


오늘, 집에서 만들어 먹는 호떡으로 아침을 때우려고 했는데, 내 실수로 인해 호떡을 망쳤고 그 덕에 나의 아침식사는 엉망이었다. 게다가 오후에 비가 그친다고 해서 우산을 안 들고 나왔는데 부슬부슬 비가 떨어졌다. 덕분에 아침부터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아침 먹는  것부터가 어긋나니 하나하나 다 짜증이 나기 시작했는데, 다행히도 오늘은 마음을 치유하는 바느질 명상을 하는 날이었다.


아, 나 명상 제대로 하라고 이렇게  괴롭히는구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도착해서 잠시 대기하다가 들어선 바느질 명상 교실은, 세팅까지 완벽했다. 은은한 분위기는 나를 설레게 해서, 오늘 할 바느질을 자꾸만 기대하게 만들었다.



완성으로 달려가지 않는 바느질, 바느질을 하면서 스스로의 기분을 느껴보는 시간.

이 시간은 단지 바느질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바느질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처음의 나는, 과연 바느질을 하면서 내 마음이 어떻게 바뀐다는  걸까-였다.



적은 비용인 5천 원을 내고 참가했지만, 구성품은 초라하지 않았다. 세 가지 색의 실과 실패, 바늘과 끈, 천에 수 틀까지, 정말 제대로 바느질을 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실을 실패에 감기. 세 가지 고운 색상의 실을 사용하기 편하게끔 만들어 놓는 작업이다. 그저 실을 바늘에 꽂아 바느질을 하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준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준비를 너무 잘 해주신 슬로우 다람님의 공이 컸다.


세 가지 색상 외에도 다양한 색상을 준비해 오셨는데, 정말 색이 비슷하면서도 제각각이라 보는 맛이 있었다. 쓰지는 않아도 가지고 싶은 욕구가 들게 만들던 실들.



실을 다 감은 후엔 천에 선을 그어준다. 이 과정은 나중에 가방으로 만들 때, 바느질을 위해서다.



본격적인 바느질을 하기 전, 참가자분이 가져오신 당근 케이크를 나누어 주셨다. 정말 집중하기 딱 좋은 조건이 완성되었다. 맛있는 디저트와 차, 그리고 따듯한 분위기, 좋은 선생님까지.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고 천에 수성펜으로 밑그림을 그린 뒤 실을 바늘에 꼽고 자수 스킬을 배웠다. 손재주가 뛰어나지 않은 나는, 익히는 데도 한참 걸렸고, 그래서 스스로에게 화도 조금 났었다.



엉성하기 짝이 없는 처음 부분. 너무 엉성해서 나를 많이 원망했다. 이게 뭐라고 박탈감이 들고 허탈감이 드는지 모르겠는데, 아무리 초보라고 해도 스스로가 이렇게 재주가 없는 사람이었나,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쯤, 나는 힐링하러 왔는데 왜 또 이러고 있나, 싶어 마음을 한 번 비웠다.



줄기를 두개 할  때쯤엔 제법 촘촘하게 줄기를 완성했다. 아, 되는구나. 느리지만 되는구나.

시간이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걸 혼자 조급했던 내가 문제였다는 사실을 깨달아갔다. 왜 그렇게 서두르려고 난리를 쳤을까, 완성도도 떨어지면서. 모든 일이 마찬가지였다. 앞서가는 게 옳은 건 아니었는데.



또 다른 기법을 배운 후 역시 실수에 실수를 반복했다. 한 번 겪었으니 당황하지 않기로 한다. 언젠간 내 마음에 드는 꽃도 필 테지. 내가 피우는 꽃이 당장 예쁘지 않다고 해서 이것이 나의 실패는 아니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라벤더 꽃을 하나하나 피워본다.



세 시간 반 정도 지났을 때 나는 스킬을 겨우 손에 익혔지만, 어떤 분은 꽤나 많이 완성하셨다. 속도도 완성도도 너무나 차이나지만 비교하지 않기로 한다. 나만의 것엔 나만의 매력이 있으니까.



남은 건 집에 가져가 해결해야 할 테지만, 마음은 가볍다. 무언가 내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가면서 한 땀 한 땀에 내 이야기를 자수 놓는 것 같았다.


내가 자수를 놓는 자리에 줄기가 하나 생기고 꽃이 하나 피면 내 마음에 있던 응어리가 그 안으로 스며들면서, 나는 평화로워진다. 그 덕에 내 마음은 아직까지 조용하다.



최종 완성본은 이와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아주 다를지도 모른다. 내 성격이 그대로 드러날 것이라 누구의 것과도 같을 수 없다.


우리는 같은 도안으로 만들었지만 전혀 다른 작품을 탄생시켰다.



직접 준비하셨다는  꽃처럼 아름다웠던 선생님. 고운 말들로 보듬어주었기 때문에 자수에 더욱 흥미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하루가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자수를 하고 있다. 끝을 잘 못 내는 내가, 이번 건 끝을 내기로 다짐한다. 그 날의 나를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바느질을 하는 게 과연 뭐에 도움이 될까, 싶었던 처음의 나와 달리 바느질을 하면서 머리를 비우는 것이 즐거워진 지금.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면 바느질 명상이라는 이 취미가 꼭 어울릴 것이다.


힘든 하루를 보낸 뒤, 지친 마음 가득할 땐 생각없이 수를 놓아보자. 어느 새 수에 그 마음이 옮겨가고 평온해진 나를 만날 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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