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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 Jun 0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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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에게

요즘은 이상하게도, 자꾸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죽을 날이 오는 걸까요.


슬리퍼를 신고 동네를 거닐 때 내리쬐던 햇빛이, 그것을 가려주던 당신의 손바닥이, 내 얼굴에 드리우는 아주 컸던 손 그림자가 기억나요.


놀이터 근처에 있던 작은 카페에서는 항상,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틀었었는데, 난 그곳에서부터 보사노바 음악을 좋아했는지도 몰라요. 아닐지도 모르고요. 어쨌든, 그곳에서 했던 대화는 잊지 않고 있어요. 나에게 줬던 작은 초콜릿 역시도요. 우주선 모양이 그려져 있었던 싸구려 초콜릿이요. 맛은 정말 없었는데 어쩌다보니 세 개나 먹었었죠.


원래는, 나는 서울에서 노는 걸 좋아했어요. 아주 학생이었을 때부터 스무 살 때 까지는 동네에 뭐가 있는지, 뭐가 새로 생겼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참 즐겁던데요. 편한 차림으로 동네를 터덜터덜 다니는 거요. 어느 새 동네에 단골 식당과 단골 카페가 생기고, 그러다보니 쿠폰도 많이 모았고요.


그러고 보면 성격도 참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예전엔 격식 차리는 걸 좋아했는데. 요즘도 좋아하긴 하지만요, 이전만큼은 아닌 것 같아요. 사람이 덜 불편해진 것 같고요. 확실히 1년, 또 1년이 다르긴 하네요. 같은 듯 다르기도 하고 그러면서 또 언젠가는 작년과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양산을 쓰기 시작하고서 부터인 것 같아요. 스무 살의 나는 분명 양산을 쓰기 싫어했어요. 그건 아가씨 때 쓰는 건 아닌 것 같아! 라고 생각했었죠. 스물 한 살의 저는 아마 그랬을 거 에요. 아가씨가 쓰는 거고 아니고가 무슨 상관이야! 더워 죽겠는데! 그렇죠, 그 차이에요. 그런 차이죠. 그 때부터 저는 더우면 양산을 썼어요. 양산은 더위를 싫어하는 저에게 아주 유익했어요. 동네에선 제 나이 또래 아이가 양산을 쓴 걸 아직도 보지는 못했지만요.


어쨌든, 아주 편한 동네였는데 말이에요. 편한 동네에요. 그곳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지가 않아서, 그렇더라고요. 나의 영역을, 민낯을 공유해야만 하는 느낌이었어요. 미안해요. 울음은 꼭 슬플 때만 나오는 건 아니에요. 나는 이 말을 하려고 나왔어요. 당신의 포토그래퍼가 되고 싶었어요, 당신의. 지난 이야기지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른 사람이에요. 분명 내일의 내가 무슨 말을 할 진 모르겠어요. 오늘의 나는 그럴 뿐이에요. 한 살 한 살이, 하루하루가 다른 사람이라 미안해요.


여기 있어요.


내가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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