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브런치의 모든 글은 생각이 날 때마다 내용을 조금씩 수정하여 완성된 글로 만들어 나갑니다.
자식은 몸만 성하면 누구나 낳을 수 있다. 심지어는 몸이 성하지 않아도 자식을 낳아서 잘 기르는 경우가 있다. 내 새끼를 낳아서 기르는 건 사람이나 짐승이나 매한가지다. 열달동안 잉태하여 산고(産苦)를 겪은 후 힘들게 낳은 어미의 수고를 폄훼(貶毁)하는 것이 아니다. 낳았으면 잘 길러야 한다는 말이다. 자식을 낳는 것에서 부모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한 말이다.
부모라면 자식에게 떳떳하게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부모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내로남불을 실천하는 꼰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을 보고자란 자식이 부모를 넘어선 꼰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매사에 본인을 관리하고 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하는 행동이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지? 나는 좋은 아버지인지? 좋은 어머니인지를 수시로 돌아보아야 한다. 자식에게 부끄러운 짓이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자식의 눈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행하고, 보인다고 해서 안하는 것이 자식들이 부모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거짓을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자식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내가 그것을 행하는 부끄럽고도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지 말아야한다.
본디 인간은 본인에게 한없이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하다. 자기 관리를 잘 하는 사람은 타인보다 본인에게 엄격하지만 그렇게 살기가 참 힘든 것이 현실이다. 자기 관리를 잘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손흥민 선수와 그의 아버지이자 정신적 지주인 손웅정 감독이다. 런던에서 생활할 때 하루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 매일 새벽 4시 전에 일어나야 했던 손웅정 감독은 알람도 해놓지 않고 잠이 든다. 아들을 최고의 선수로 만들기 위해서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로 더욱 모범적으로 살아간다. 그가 있기에 지금의 손흥민 선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손웅정 감독이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다.
나와 자식을 이중잣대로 대하지말고, 동일한 잣대로 대하여 나도 자식도 서로가 성장할 수 있는 기준으로 삼는 것이 좋다. 나이가 들었다고 어른이 아니다. 착각해서는 안된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먹는 게 나이다. 나이 먹는 것만큼 수월한 일이 없다. 자식을 낳았다고 어른이 아니다. 손주가 태어났다고 해서 현명한 노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저 태어나서 시간이 흐르니 몸이 커지고 그렇게 다 큰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고 부부관계를 해서 자식을 낳으니 잘 키우든 못 키우든 그냥 자식을 기르는 성인들이 간혹 있다. 정신은 학창시절에 머무르는데 몸만 나이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을 요즘 사람들은 '어른이'라고 부른다. 물론 그 '어른이'들도 지금까지 살아오며 주위에서 '주워들은 이야깃거리'나 '뉴스거리'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본인의 지식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는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만한 정도의 얕은 정보다. 대단한 일이나 뽐낼만한 지식이 아니다. 적어도 육체와 정신이 지금까지 함께 성장해왔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육신(肉身)의 시간이 흐른만큼 정신도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만 한다. 공부가 그것이다.
박석현의 브런치_자식을 기른다는 것
사람의 정신은 몸과 함께 성숙(成熟)해져야 한다. 이는 반드시 독서와 사색이 동반되어야 한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과 성숙해진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성숙이 결여(缺如)된 채 그저 나이만 먹는다는 것은 별 노력을 하지 않아도 가만히 있으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이다. 날로 먹는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그저 나이를 날로 먹는 것과도 같다.
성숙해진다는 것은 인위적인 노력을 동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험이나 습관을 쌓아 익숙해지는 것'이 '성숙(成熟)'이라는 사전적인 의미이나 성숙에는 한가지 뜻이 더 추가된다. 이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몸이 나이들어가듯 그렇게 자연스럽지도 않고, 편안한 과정도 아니다. 바로 인위적으로 공부를 하여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숙의 단계에 이르는 길이다.
박석현의 브런치_자식을 기른다는 것
자식이 어릴적에 기저귀를 갈아주고, 모유나 분유를 먹이는 것은 부모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아이가 다치지 않게 안전하게 돌보는 일, 춥지도 덥지도 않게 돌보고 늘 자식을 사랑으로 대해야 하는 것은 부모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자식을 낳은 후 방임하고 유기하는 것은 짐승도 하지 않는 짓이다. 누가 낳아달라고 했는가? 제가 좋아서 낳아놓고 나 몰라라 하는 건 패륜(悖倫)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잘못하는 것만 패륜이 아니다. 부모로서 도리를 다하지 않는 것도 자식에게 패륜을 저지르는 짓이다. 패륜을 저지른 사람은 부모나 자식이나 그에 따른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대가를 받을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부모와 형제사이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천륜(天倫)이라 일컫는다. 천륜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니 지키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 당연하고도 마땅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결코 범해서는 안된다.
부모가 자식을 낳았으면 잘 길러야한다. 내가 좋아서 낳은 자식이니 마땅히 잘 낳아서 잘 키울 의무와 책임이 있다. 어디 가서 자식 키운다고 유세할 필요도 없다. 낳았으면 당연히 누구보다 잘 길러야 한다. 당연한 일을 공치사(功致辭)하려 해서는 안된다.
자식의 효는 어릴 적 부모에게 지어준 예쁜 미소만으로 그것을 다한 것이고, 부모의 도리는 자식을 낳아서 잘 길러준 것만으로 다한 것이다. 그 이상은 서로에게 바라지 말아야 한다. 좋은 것만 기억하고 좋지 않은 것은 잊어라. 자식이라고 부모에게 서운한 것이 없겠으며 부모라고 자식에게 서운한 것이 없을까? 천륜으로 맺어진 인연. 손해볼 것도 없고, 아까울 것도 없다. 그냥 할 수 있을만큼 더 아끼고 더 나누고 더 사랑하면 족하다.
그렇게 살다가 시간이 지나 죽음에 이르렀을 때, 더 못해준 아쉬움에 애통해 하지도 말고 먼저간다고 애간장이 끊어져라 통곡을 할 필요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슬픈 일이기는 하나 사람이 만나 헤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세상의 이치다. 멀리 떨어져 만나지 못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죽어서 만날 수 없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다르지만 한편으로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헤어짐을 육체적인 헤어짐과 정신적인 헤어짐으로 굳이 나눌 필요가 없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헤어지는 것이고 그 헤어짐이 오래되어 아주 오랫동안 못보면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 내가 실천하기 싫고 또 실천하지 않으려는 그 게으름을 상대의 죽음을 접했을 때, 눈물로 대신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무척이나 비겁하고도 부끄러운 짓이다. 그때 가서 눈물 한 방울 덜 흘리고 지금 조금 더 잘하는 것이 낫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기 힘든 것이 사람이지만 힘들기에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가치없고 의미없는 일보다 조금 어렵지만 가치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