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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지연 Nov 13. 2022

49 불안정하니 안정돼 보이는 것에 새기는 것이다

알쓸신잡 김영하, 사람들은 왜 낙서를 하는 것인가

나는 매우 불안정한 사람이다.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것은 모든 매 순간이 불안정하다. 가령 내가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면 저 차가 나를 덮치지 않을까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나는 항상 전봇대 뒤에 서있는다. 이 튼튼한 무쇠가 나를 막아줄 것이라는 안정을 찾는다. 불안정한 심리는 나를 아무것도 못 하는 바보로 만든다. 안정돼 보이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정신병동에 입원했을 때 혼인신고를 했었다. 정신과 입원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서류가 필요하다. 직속 가족의 승인이 필요하다. 내가 아프다는데 가족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게 너무 불필요했다. 내가 10년 넘게 혼자 따로 살고 있는데 굳이 가족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이 절차가 너무 불합리했고 불편했다. 그래서 7년가량을 만난 남자친구와 상의 끝에 가족이 되기로 했다. 색다른 프러포즈나 멋진 장소가 아닌 병실 침대에서 말했다.

"오빠 나랑 혼인신고 하자"


결혼도 어찌 보면 불안정한 관계를 법적으로 공증받는 안정돼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교수님은 내가 결혼하고 나서 일종의 방공호가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많이 안정되었다고 하셨다. 남자친구에서 '남편'이라고 명칭이 바뀌고 남편 역시도 행동이 조금 어른스러워지긴 했다. 딱히 달라진 건 없지만, 마음의 평온이 생겼다.


불안정함은 사람을 불안하게 하지만, 안정과는 한 끗 차이이다. 내가 고작 혼인신고라는 종이 한 장에 마음의 안정을 찾았듯. 남편도 나와 7년의 관계에서 매번 우리는 어떤 사이이냐고 되물었었지만, 혼인신고와 동시에 더 이상 우리 사이의 정의를 묻지 않았다. 안정된다는 것은 어쩌면 아주 별거 아닌 것에 쉽게 바뀌는 변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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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불안정하고 자아도 불안정하잖아요. 불안정하니깐 안정돼 보이는 곳에 새기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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