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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지연 Nov 13. 2022

50. 이편에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속 단어

어릴 적 교과서 속엔 대한민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고 배웠다. 봄은 초록이고 여름은 푸릇함이 더해지고 가을은 황금색의 낙엽이 바닥을 도톰히 덮는다고 했다. 겨울은 눈송이가 소복이 쌓이는 계절이랬다. 그 사계절을 나는 방법은 계절별로 나는 맛있는 음식들을 챙겨 먹는 것이 보약이었다. 어느 우울증을 앓는 가족에게 우리 내년 봄에는 딸기를 먹자, 겨울에는 붕어빵을 먹자고 다음 시간을 살아낼 힘을 주는 말도 있다. 그렇게 제때 아니면 챙기지 못할 풍경과 음식이 있었다.


요즘은 그러지 못한다. 금세 여름이 오고 금세 겨울이 온다. 두 계절이 번갈아 오며 날씨가 오락가락한다. 어느 날은 추웠다. 어떤 날은 더워 두 계절의 옷이 옷장을 항시 대비해두어야 한다. 좋아하는 계절은 묻는 말은 어느덧 예전이라는 가정이 덧붙어야 한다. 추억의 필터가 씌워진 가정문. 눈이 내리면 혓바닥을 내밀고 무슨 맛이 날까 사르르 녹여보았던 그때도 다 예전이다.


나의 눈의 기억은 따듯함이었다. 눈이 바닥에 두툼하고 보드랍게 쌓였다. 하나도 춥지 않았다. 내가 입고 있던 옷이 따듯해서일지도, 몇 년 만에 쏟아진 눈이 신기해서일지도 모른다. 시골에 살았던 나는 길바닥에 쌓인 눈을 굴리며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었다. 동네 인심 좋은 아저씨들은 이편저편에 자동차로 길을 막아두고 눈을 굴려 아이들에게 여러 모양의 눈사람을 만들어 주셨다. 나뭇가지와 솔방울을 주워다 눈사람을 만들었다. 못생기고 흙에 범벅되어 못생겼지만 자기 모자를 씌워주고 장갑도 끼워주고 애정이 쏟은 우리들의 눈사람이었다.

봄에는 이름 모를 빨가 열매를 따다가 나뭇잎과 돌로 찧어 소꿉놀이했다. 알록달록했던 색이 돌에 물들었다.


어느 때에는 봉숭아를 뜯어다 서로의 손가락에 물을 들였다. 사랑도 모를 때지만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모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새끼손가락에 붕대를 칭칭 감았다. 혹여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씻지도 않았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점점 희끗희끗해지는 봉숭아 물을 아쉬워했다.


추억의 이편에 서 있다 보면 아스라이 사라지는 기억들이 아쉬워진다. 조각처럼 흩어지는 기억을 주워다 보면 조금은 생생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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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편1이便 [이편] 

1. 대명사 말하는 이에게 가까운 곳이나 방향을 가리키는 지시 대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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