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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지연 Nov 29. 2022

67. 내 힘듬과 고통을 여기 아니면 누구에게 말 할까

지인과의 대화중

고통은 상대적이다. 나는 유독 고통에 아둔한 편이다. 둔한 것도 아니고 아둔하다. 이게 고통인가요? 라고 되묻기도 한다. 스스로가 고통스러운지를 알지 못하여 타인에게 질문한다. 같은 일을 겪어도 어떤 사람은 태연하게 흘려보내는 이도 있지만, 어떤 이는 아주 큰 마음의 상처로 남기도 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사람들은 이 당연한 이야기를 잘 잊어버린다. 그래서 타인에게 상처를 잘 입히게 된다.


내가 고통에 아둔한 편이라고 해서, 상처를 덜 받는 건 아니다. 상처받는 타이밍이 늦을 뿐이다. 고통을 눈치챌 즈음에는 상대는 엄청난 힘을 주고 있다. 가령 칼로 나를 콕콕 찌르고 있었다면 나는 그 칼이 깊숙이 들어와 내 장기 어딘가 하나가 고장 나야지 그때야, 아- 하고 소리 내 쓰러진다. 그때야 내가 상처받았음을 알아채고 왜냐고 묻는다. 상대는 인제 와서? 라며 나의 둔함을 탓한다.


찌른 이에게 왜냐고 묻는 것도 웃긴 일이다. 인제 와서 이유가 궁금해, 라는 서늘한 범인의 대사도 웃기다. 가끔 타인을 잘 꿰뚫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상대가 어떻게 하면 상처받는지 너무 잘 안다. 어떤 칼날로 어디를 찔러야지 많은 피를 흘릴까. 능숙한 살인자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몇 마디 말로 마음을 숭덩숭덩 조각내 버린다. 조각난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 마음을 쥐어봐도 이미 소용이 없다.


상처는 그 와 있었던 시간마저도 불쾌한 경험으로 버려지게 된다. 그냥 차라리 천천히 멀어지자. 서로 칼을 움켜쥐며 피투성이가 되어 아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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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힘듬과 고통을 여기 아니면 누구에게 말을 할까요

같은 직장 동료라 해도 내가 실제 겪는 체감하는 온도가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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