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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지연 Dec 07. 2022

76. 카메라는 껍데기에 불과하잖아요

지인과의 대화중

잘 나온 결과물을 보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어떤 장비를 썼을까? 가령 예쁜 그림이 있으면, 어떤 색연필을 썼을까 혹은 어떤 도화지를 쓴 걸까. 그림이 없이 되고 나서부터는 이 작가님은 어떤 도구를 사용하였는지 꼼꼼히 보았다. 마치 나도 이 도구를 사용하면 이 작가님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듯 말이다.


"사실 카메라는 껍데기에 불과하잖아요"

한가지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 노력과 시간. 그 사람에게 그 장비가 녹아드는 시간과 노력을 나는 살 수 없다. 도구는 단지 껍데기에 불과하다. 마치 허황한 꿈을 좇았던 어린아이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종종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나는 배운 적이 없으니 할 수 없어. 라고 단정 짓고 투덜대기 일 수 있었다. 의외로 주위에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작가님들은 많았다. 나의 핑계는 더는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아주 뛰어난 천재가 아니라면, 각자 태어날 때 가지고 있는 기능을 잘 닦고 기르는 건 노력이 8할이 아닐까 싶다.


최근 한 작가님을 만났다. 그 작가님의 그림은 묘사력이 좋다. 어느 한 곳을 확대해보아도, 허투루 그리는 곳 없이 정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나였다면 남들이 보지 않을 부분이라고 생각할 곳을 꼼꼼하게 칠하고 그리는 사람이었다. 그 작가님은 한 개의 그림을 완성해내기까지 한 달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정성과 노력이 깃든 그림은 감정이 살아있다. 그 그림을 보는 사람 또한 정성스럽게 꼼꼼하게 살펴본다.


한날은 작가님의 엽서를 배달을 같이한 적 있었다. 그 작가님의 그림이 인쇄된 엽서를 받아서 든 사람들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소중한 보물이라도 받은 양 환희에 차오른 얼굴이, 나의 그림이 누군가에게 감정이 되어 살아날 수 있구나. 한낱 종이 쪼가리일 수 있는 가치가 되는구나. 희열이 샘솟았다. 아주 가끔은 나무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작업물이 있는 날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구나! 부러웠다.


나는 그 작가님을 부러워하기 전 나의 글과 그림은 그만큼의 가치를 두고, 시간을 두고 노력하는가. 껍데기에 불과한 장비 탓을 하지는 않은가. 곰곰이 생각해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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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이 중요해요. 사실 카메라는 껍데기에 불과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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