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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지연 Dec 06. 2022

75. 이 시절이 의미 없게 느껴져

신지훈 - 추억은 한편의 산문집이 되어

추억은 거짓으로 꾸며져 있다. 콧물 질질 흘리며 추위에 벌벌 떨던 기억도, 그땐 그랬다며 아름답게 포장되곤 한다. 그래도 그때 우리 열정이 있었잖아, 라며 억지로 마음을 되새겨본다. 과연 우리는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느 날 램프의 요정 지니라도 만나게 된다면 지금의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가지 않고 단순히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같은 추억을 반복할 수 있을까. 나는 절대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 순간들이 매 순간 불안했고, 고통이었다. 그 고통이 쌓여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여도, 다시 돌아간다면 그 고통을 또 하고 싶지는 않다.


어느 때에는 원룸을 계약했는데 전 세입자가 집을 못 빼겠다고 배짱을 부려, 1층에 창고와 같은 방에 잠시 묵은 적이 있었다. 짐을 다 들고 이사를 왔는데 집주인이 갑자기 안 된다고 했다. 나는 3층에 짐을 다 옮기고 필요한 짐을 그때그때 빼 쓰며 살았다. 가끔 창문을 열면 담배 피우는 몰상식한 이들과 조우하며 숨 막히는 생활을 했다. 가끔 우스갯소리를 할 때 이 이야기를 하곤 한다.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에 까르르 웃곤 한다. 과연 이게 웃긴 이야기일까. 나도 그냥 안줏거리 삼아 재미있게 얘기를 하지만, 그때는 최악의 이야기였다.


참 이 시절이 의미 없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얻은 게 없는 시간이었다. 집주인은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고, 언제든 갑자기 들어오면 어찌한다는 불안감도 마음 가득했다. 그러면서 갈 곳 없는 나는 그곳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나의 짐은 그물망 같은 것으로 어정쩡하게 보호되어 있었다. 나는 틈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간단히 그 그물을 걷어 꺼내 곤했다. 그때는 그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바보 같은 아이였다.


나는 그곳에 있을 때 대부분 밖을 배회했다.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가 없었다.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잠을 자기 위해 편한 매트리스조차 구비가 안 되어 있었고. 가스레인지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곳에 왜 내가 들어 왔을 게 아무리 후회를 해보았고, 답은 없었다.


모든 것은 경험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래도 이 시절은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던 것 같다. 2년 넘게 살았던 그곳은 나에게 의미 없는 시간이었다. 의미를 찾고 싶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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