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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지연 Dec 25. 2022

93. 닿지 못하는 단어들

어느 한 여름의 정원, 무제제

가끔 내뱉고 싶은 말들이 입안에 맴돌다 꿀꺽 삼킬 때가 있다. 그 말들이 쌓여 배가 부르다 못해 토하고 싶어진다. 와그르르 쏟아지는 말들은 토처럼 입을 틀어막아도 마구 쏟아진다. 그래도 끝까지 참아서 나중에는 할걸이라고 후회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닿지 못한 단어들이 내 안을 떠돌다 밤이 되면 내 마음을 찌른다. 그런 경우 잠을 못 자거나,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심장을 주먹으로 두들겼기에 할 말은 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하고 싶은 말은 종일 꾹꾹 눌러 담다가 이내 터트렸다. 터트리자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 아차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이 말을 삼켰다가는 그 말이 내 안에서 썩어 나를 곪아 터뜨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말은 나에게서 빠져나와 분위기를 어그러놨다. 찜찜한 마음으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말을 해도 마음이 좋지 않고, 하지 않으면 마음이 답답해 죽을 것 같다. 어떤 것이 더 올바르고 현명한 판단일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할 수 있는 대나무숲을 한 개 매매해야 하는 걸까. 그런데 말이란 게 상대가 있어야지 반응 없는 곳에 해 봤자 맛이 안 난다. 허공에 흩어지는 혼잣말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곧 있으면 나의 말은 누군가의 안줏거리가 되어 잘근잘근 씹히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싫다. 안 좋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 머릿속과 내 마음이 꽃밭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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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지 못하는 단어들을 담았습니다

-어느 한 여름의 정원, 무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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