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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지연 Dec 27. 2022

96. 아름다운 것들엔 속셈이 있고

택우, 내일의 나에게 무엇을 말해야 하나

유난히 아름답지 못한 시기가 있다. 모든 것이 불만이 있고, 세상을 격하게 부정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아름다운 것들마저도 속셈이 있는 게 아닐까?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 한번 그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면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게 잊힐 만큼 일상이 하나씩 무너진다.


어느 날은 살고 있던 원룸의 전등이 고장 났다. 등을 갈아 끼워야 하나 아침에 나가 저녁에 들어오니 등을 혼자 갈기가 어려웠다. 누구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점점 어둠에 익숙해져 더듬거리며 침대에 누워 아침이 오길 기다렸다. 빼곡한 원룸들 사이 창문으로 빛이 새어들면 간신히 그 빛으로 세수를 하고 집으로 나왔다. 밖은 밝고 눈이 부셨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 너무 싫었다. 어둠에 갇혀버리는 것만 같았다. 나를 꼭 쓰레기통에 버리는 듯했다.


그러다,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나의 방 전등을 갈아주었다. 가만히 갈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았다. 등을 갈아 끼우자. 환한 빛이 쏟아져 눈을 부시게 했다. 아름다운 것들엔 속셈이 있다. 나는 남편의 친절에 등을 보였다. 속셈을 말하라고 왜 나에게 친절하냐 날을 세웠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자신의 속셈은 나와 친해지는 것이라고, 그는 등을 갈아준 이후로 자주 나의 집에 찾아와 나의 집에 불을 밝혔다.


아름다운 것들엔 속셈이 있다. 하지만 가끔은 그 속셈에 속아주어도 좋아할 일이다.

-

눈에 보이는 대로 모두 믿었더니

나를 모두 바보라 하니

아름다운 것들엔 속셈이 있고

- 택우, 내일의 나에게 무엇을 말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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