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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지연 Feb 13. 2023

300만원의 값어치

물을 한바가지 가득 끓여 라면두봉을 넣고 고춧가루를 넣었다. 간장도 넣었다. 뿔어서 양이 많아지니 먹을 만 했다. 밥을 말아 죽처럼 먹었다. 한끼를 해결했다. 저녁에는 말린 생선을 얻어와서 생선조림을 해먹었다. 요리 실력이 없어서 아주 처참하게 망했다. 밥을 반공기도 못먹었다. 배가 고파서 집안에 있는 모든 식료품들을 다 꺼내고 냉동고까지 탈탈 털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먹을 수 있는거라고 소금과 설탕 뿐이었다. 망한 생선 조림에 밥을 비며먹고 굽지도 않은 김에 싸먹었다. 입에 쩍쩍달라 붙고 질긴 김이 딱딱해져 입이 아팠다.


300만원이 없어서 몇날 며칠을 돈을 구하러 다녔다. 내 나이가 몇인데 300이 없다니, 서럽다는 감정도 사치스러웠다. 결국 마땅치 않아 가까운 가족에게 차용증을 쓰고 돈을 빌려야했다. 가족이라 생각했기에 더 어려운 말이었고, 쉬운 부탁인줄 알았다. 앞뒤가 안맞는 말인줄 알지만, 가족이기에 괜찮은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차용증을 써야 했다. 평생을 살면서 처음 써보는 차용증에 내 마음이 무너졌다. 간신히 버티던 마음이, 괜찮다 스스로 다독였던 마음이 한번에 무너졌다. 


다 울고 나니 배가 고파졌다. 빚을 졌어도, 배가 고프구나 한심하기 짝이없었다. 냉동고를 뒤지니 언제 넣어둔지 모르는 딱딱하게 얼음꽃이 핀 곶감한개가 있었다. 꺼내어 가만히 바라보았다. 녹아가는 동안 내 눈물도 녹았다. 가난한 주제에 왜 이렇게 배는 고픈건지, 먹고 싶은건 왜이렇게 많은 건지. 사람들은 어쩜 그렇게 돈도 많고 잘사는건지. 나만 불행한건지. 세상에 안좋은 생각이 모두 밀려들어왔다. 이가 깨질만큼 여전히 딱딱한 곶감도 나의 불행을 더한것 같았다.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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