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스가 너무 먹고 싶었다고 ㅡ.ㅡ!!
어릴 때 나는 반찬을 많이 가려먹었어. 어린아이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나? 나도 콩, 시금치, 양파, 나물 같은 채소들이 밥상에 올라오면 밥을 잘 안 먹었어.
물론 이제는 나도 많이 컸으니 그런 편식은 좋지 않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고, 맘에 안 드는 음식이 있으면 알아서 요령껏 먹는 척을 하는 지혜(?)도 가지게 되었지.
우리 아빠는 어른이라 그런지 그런 게 없으셔.
집에서 같이 밥을 먹을 때면 너무너무 게걸스럽게 잘 드시거든. 우리는 아침을 빵이나 달걀프라이, 과일 등으로 간단히 먹기 때문에 세 식구가 다 모여서 제대로 된 밥상을 마주하는 건 주말이 되어야 한번 있는 일이긴 해. 그래서 밥맛이 더 좋은지는 몰라도 아무튼 아빠는 집에서 먹는 밥은 정말 싹싹 긁어서 다 비우시고는 배가 이만큼 나와서 배부르다며 씩씩거리시곤 해.
그런데 요즘 아빠가 이상해.
얼마 전에 우리 가족은 저녁을 먹으러 함께 외출했어. 차 안에서 무엇을 먹을까 이야기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으러 갔지.
전에도 몇 번 갔던 레스토랑에 가서 전에도 몇 번 먹었던 메뉴들로 주문을 했어.
배가 고팠던 우리는 음식이 나오자 신이 나서 포크를 들었지.
그런데 아빠는 파스타 두어 젓가락과 피자 한 조각을 겨우 먹고 나서는 “아, 점심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배가 부르네.” 하고 수저를 내려놓으시는 거야.
평소 아빠로 보아서는 점심에 뷔페 풀코스를 먹었다 해도 파스타 한 그릇과 피자 한판은 너끈히 드시는 분인데. 게다가 오기 전에 차 안에서는 분명히 배고파 죽겠다고 이야기하는 걸 들었거든.
뭐 갑자기 먹기가 싫어져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그냥 우리끼리 배 터지게 다 먹어치웠지 뭐야. 아놔.. 너무 많이 먹으면 살찌는데!!
그런데 이런 비슷한 일이 얼마 가지 않아서 또 일어났어.
엄마의 생일이 며칠 안 남은 어느 날, 우리는 또 저녁을 먹으러 나갔어.
그날도 여지없이 가는 차 안에서 우리는 무얼 먹을까 고민했지.
아빠는 엄마 생일이니 엄마가 먹고 싶은 걸 먹으라고 말씀하셨고, 엄마는 다시 나에게 선택권을 넘겨주셨어. 난 고민 끝에 전부터 먹고 싶었던 스테이크를 먹자고 이야기했지.
그래서 스테이크 집으로 갔지. 스테이크는 가격이 꽤 비싸니까 우리는 스테이크 두 개와 샐러드를 시켰어. 그런데 여기에서도 아빠는 별로 드시질 않는 거야. 낑낑대며 스테이크 두 접시를 먹기 좋게 썰어 놓더니만 두어 점 드시고는 별로 배가 안 고프다면서 콜라만 들이키셨지.
엄마는 엊그제 술을 많이 마셔서 속이 안 좋아서 그렇다며 나에게 너나 많이 먹으라고 하셨어. 나야 물론 땡큐지. 거의 두 접시를 내가 다 먹어치우고 나왔어.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아빠는 별로 말씀을 안 하셨어. 괜히 나만 많이 먹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 지모야? 누가 먹지 못하게 한 것도 아닌데,
우리 아빠가 요즘 입맛이 없어진 건지 원래 입이 짧은 건지 통 알 수가 없어.
정말 속이 안 좋아서 그런 거라면 아빠는 반성해야 해.
술도 좀 줄이고 운동도 좀 해서 건강한 속을 만들어야 앞으로도 맛있는 걸 함께 먹으러 다닐 거 아냐?
아빠의 입맛이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어

가족과 함께 외출해서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것은 분명 가장에게 주어진 보람이자 행복의 특권이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외식을 자주 하는 것은 사실 부담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사랑스러운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이래서 남자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세 식구밖에 안 되는 우리 집은 그동안 비교적 외식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서영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늦어지게 되고 주말에도 자주 학원을 가게 되는 바람에 근래에는 예전보다 외식할 기회가 줄어들긴 했다.
어쨌건 외식을 하러 나가게 되면 우리 부부는 늘 서영이가 먹고 싶은 걸 먼저 물어봤는데, 사실 애가 어른보다 다양한 음식을 먹어볼 기회도 없었을 테니 결과적으로는 거의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아내는 싫어하는 음식이 많다. 대표적으로 ‘기름기’를 싫어한다. 우리는 밖에서 삼겹살을 사 먹어 본 적이 없다. 물론 집에서 구워 먹은 적도 없다. 아내와 서영이는 삼겹살은 오직 펜션 같은 곳에 놀러 갔을 때에나 해 먹는 음식으로 알고 있다.
날음식도 먹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횟집에서 외식을 한 적이 없다.
물에 사는 것들은 구워먹는 생선과 꽃게나 새우, 조개 같은 딱딱한 껍데기가 있는 동물만 먹을 수 있다. 참고로 나는 새우 알레르기가 있다.
이런 상황이니 우리 세 식구의 외식은 늘 메뉴가 거의 정해져 있다. 패밀리 레스토랑류.
피자, 파스타, 샐러드, 스테이크 가끔은 중식당 정도? 뭐 그래도 상관없다. 난 삼겹살이나 생선회는 밖에서 술 먹으면서 자주 먹으니까.
요즘 티브이를 켜면 열 개 중에 일곱 개는 음식에 관한 방송이 나온다. 맛집을 찾아서 소개하거나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명 ‘먹방’들. 얼마 전에 티브이에서 화제가 된 돈가스집이 나왔다. 소싯적 학창 시절엔 돈가스를 자주 먹었다. 소위 ‘칼질하러 간다’는 말은 미팅하러 경양식집에 가서 돈가스를 썬다는 뜻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쓰이던 말이었다.
티브이에서 소개하는 돈가스 맛집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서 먹는 곳이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갑자기 돈가스가 먹고 싶어 졌다. 이어서 우리 동네에 얼마 전에 크게 오픈한 돈가스 전문점이 떠올랐다. 서영이 시험이 언제 끝나더라... 나는 벽에 걸린 캘린더를 보았다.
서영이의 중간고사가 끝났다. 공부하느라 고생했다는 의미로 주말 저녁에 외식을 나가기로 했다. 차 안에서 나는 먼저 “우리 뭐 먹을까? 서영이 먹고 싶은 거 있음 골라봐” 라며 이전과 마찬가지로 운을 떼었다. 분명히 서영이는 자기가 아는 몇 가지 안 되는 리스트를 가지고 최소 삼분 정도는 중얼거리며 고민할 것이고, 그 시간이라면 돈가스를 추천할 충분한 시간이 된다.
“요 앞에 생긴 돈가스 전문점 있잖아. 봤어?”라고 나는 아주 태연하게 아내에게 물었다.
“응. 거기 맛없대.”
아내는 내 대사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일까. 물음표가 끝나기도 전에 대답이 돌아왔다.
“그, 그래? 당신 가봤어?” 내가 들어도 가늘게 떨리는 나의 목소리.
“아니, 지현이 엄마가 그러더라고. 그리고 나 돈가스 싫어하잖아. 기름만 많고 ”
“.......”
이때 서영이가 고민을 끝냈는지 해맑은 목소리로 외친다.
“아빠 나 피자 먹고 싶어.”
나는 입을 다물고 액셀을 깊이 밟았다.
나의 돈가스 추천은 사실 이때만이 아니었다. 아내의 생일 때에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내 생일은 아직 멀고도 멀었다. 한 번은 아내와 마트에 가서 냉동고 안에 있는 돈가스를 꺼내어 들고 “이거 맛있을까?” 하고 묻기까지 했다.
“이그, 그런 인스턴트 식품 몸에 안 좋아. 맛이 있겠냐 그런 게”
나는 집어 든 속도의 열다섯 배 정도 느린 손짓으로 다시 돈가스를 내려놓았다.
혼밥, 혼술, 혼영... 혼자 하는 것들이 점점 자연스러워진 세상이다.
어제 난 돈가스를 먹었다. 그것도 당당히 혼자. 밤 9시에.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돈가스 전문점의 왕돈가스는 무척 맛있었다. 고급진 인테리어에 깔끔한 시설, 친절하고 젊은 아르바이트생들이 혼자 온 나를 반겨주었다.
불경 기탓인지 밤 9시가 넘어서 그런건지 안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문밖에서 영업시간이 10시까지란걸 보고 들어왔으니 너무 미안해할건 없다.
왕돈가스는 나 혼자 다 먹기엔 너무도 넓었지만 나는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꾸역꾸역 그 넓은 돈가스의 영토를 한 조각씩 정복해 나갔다.
‘그래, 먹고 싶은 게 있으면 혼자 사 먹으면 되지. 꼭 같이 먹어야 맛이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