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나를 보고 웃어줄 수 없는 이유
요즘 아빠가 이상하다.
거울 앞에 서서 족집게로 흰머리를 뽑으려 낑낑대고 있는 거다.
- 아빠, 뭐해?
- 아, 흰머리가 눈에 거슬려서 뽑으려고 하는데 잘 안되네.
- 그렇게 해서 그게 뽑아지겠어? 어디 봐바. 어우~~ 흰머리가 장난 아니게 많은데 이걸 뭐하러 뽑아? 차라리 염색을 해야지~~
- 그렇지? 나중에 염색약 사올테니 서영이가 좀 발라줘~
- 미용실가서 해~ 얼마 하지도 않아.
울 아빠는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남자가 아니다.
예전에 강의하러 다닐 때에는 주로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입고 다닌 것 같은데 몇 년전에 식당을 개업한 후에는 매일 마다 점퍼와 청바지만 입고 나간다.
솔직히 말해도 되나? 외모에 신경을 쓴다고 해도 그닥 나아질 외모는 아니다. 훗
그런데 요즘 들어 자주 거울을 바라보는 아빠를 보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도 아빠는 얼굴에 팩을 한다며 부엌에서 오이를 썰거나 얼굴에 마스크팩을 붙이고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근래에는 시도 때도 없이 거울 앞에서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 자주 띈다.
아빠가 혹시 바람 난 건 아닐까?
학교를 가기 위해 함께 타고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아빠는 내내 거울앞에 서서 당신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나나 다른 이웃 아줌마들이 거울을 보면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 잡티나 기미 같은 흔적들을 들춰보며 앞머리 매무새를 어루만지고 하는 것과는 달리
아빠는 그저 가만히 거울속의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마치 오랜 만에 만난 옛 친구의 얼굴을 찬찬이 살펴보는 것처럼.
남자들의 70%는 자기 얼굴을 보며 만족스러워 한다던데, 설마 아빠도 그 70%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일까?
아빠는 거울을 보며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마흔 중반이 되니 가장 먼저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몸으로부터 알게 된다.
피로가 잘 풀리지 않아 늘 찌뿌둥한 몸뚱이야 그러려니 해도
요 몇 년 사이에 부쩍 늘어난 흰머리는 볼 때마다 그 번식력을 자랑하는 듯 너무도 잘 보이는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난 머리카락이 숱이 많고 새치도 별로 없어서 상대적으로 얼굴에 비해서 나이가 덜 들어보이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내심 뿌듯해 하고 있었는데..
요즘 들어 거울을 보면 나도 이제 늙어가는구나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대부분 40대 남성들이 그러했듯이 나또한 피부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요즘은 시대가 달라졌다. 남성도 아름다울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세상이며 이에 부응하듯 홈쇼핑이나 각종 화장품 회사에서는 여성의 그것 만큼이나 다양하고 많은 남성용 미용제품들을 광고하고 있다.
차츰 많아지는 흰머리와 주름살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느니 이제부터라도 피부와 외모에도 관심과 노력을 좀 두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마침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친구 녀석에게 여성용 샘플을 얻을 기회가 생겼다. 원래는 아내에게 가져다 주어야 할 몫이지만 나는 이 득템을 몰래 화장실로 가지고 들어가 이리저리 얼굴에 발라 보았다.
아내가 어디선가 샘플로 받아와서 냉장고에 처박혀 있던 일회용 마스크팩도 눈에 들어왔다. 유통기한이 약간 지나 있었지만 냉장보관된 차가운 촉감이 마치 유통기간 따위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듯 효과를 장담하고 있는 듯 하였다. 이렇게 가끔 마스크팩을 하고 자기 전에는 집사람의 영양크림과 아이크림을 몰래 찍어 발라 미끌거리는 얼굴을 숙이고 침대로 들어가곤 하였다.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겠지만 꾸준하게 하지 않으면 효과가 나타날 리 있겠는가. 더구나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빠진 상태를 호전시키고 싶은 목적에서 하는 처치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몇 번의 그러한 과정속에서 내가 느낀 것은 ‘아름다움은 돈과 시간과 노력의 결정체일 것이다’라는 결론이었고, 돈도 시간도 노력도 가져다 부을 것이 없던 나는 이내 포기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나의 피부개선 노력은 몇차례의 시도만으로 끝이 났고, 나는 다시 세수후에 오래된 스킨로션만을 대강 바른 채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출근시간이다. 나는 서영이와 매일 함께 집을 나선다. 서영이는 집과 약간은 거리가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나는 매일 아침 서영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출근하고 있다.
엘리베이터에는 양쪽 벽에 큰 거울이 달려있다. 아침 출근길에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든 사람들은 그 거울을 들여다 본다. 아랫집 아주머니는 급하게 나왔는지 미처 다 말리지 못한 젖은 머리를 만지며 거울 속의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서영이도 마찬가지이다. 거울을 보며 앞머리를 손으로 잡고서는 계속 쓸어내린다. 마치 손에서 강력한 열기가 나와서 그 손매에 따라 빳빳하게 앞머리가 펴질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난 거울을 자주 보지 않는다. 보아도 그 얼굴이 그 얼굴이겠지 뭐 달라진게 있겠는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엘리베이터의 무거운 침묵과 답답한 공기가 어서 가셔지기를 바라며 움직이는 층안내 버튼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어느날 늦은 퇴근길, 친구들과 술을 한잔 한 탓에 약간은 알딸딸한 기분으로 혼자 엘리베이터를 탔다.
우연히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의 나는 무척이나 초췌하고 맥이 없고 피곤해 보였다.
- 마흔이 넘어가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 대, 그거 알아?
- 나처럼 민주적인 얼굴에 무슨 책임?
-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잖아
언젠가 아내와 농담으로 주고 받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잠시동안의 낯선 내 얼굴과의 만남 이후에 잠자리에 누운 나에게 밀려오는 많은 질문들이 있었다.
그리고 왜 거울 속의 내 모습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고 싶었다.
요즈음 엘리베이터를 탈때마다 거울을 본다.
‘네 얼굴에 책임을 져’
‘넌 이 나이가 되도록 무엇을 해 놓은거야? 그런 이상한 얼굴을 하고서는’
‘인상만 쓴다고 세상이 너를 알아줄 것 같아? 아직도 어린애 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정신차려, 자칫하면 넌 순식간에 늙은 꼰대가 되어 버릴거야’
무수한 비난의 외침들이 거울속의 내 얼굴에게 쏟아진다.
그래, 저 말들이 틀리지 않아. 난 대체 뭘하고 살아온거지?
씁쓸한 술냄새가 속으로부터 올라왔다.
그 후부터는 엘리베이터에 타면 으레 거울을 보게 되었다.
아무 생각도, 목적도 없다. 그저 내 앞에 힘겹게 버티고 선 어떤 남자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거울 속의 나에게 웃어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노려보거나 비난어린 시선을 돌려주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빠, 거울보면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어느날 서영이가 내 옆구리를 툭 치면서 묻는다.
“아, 내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나도 모르게 푹 빠져있었나봐.”
“......”
평소 같으면 손으로 입을 막고 토하는 시늉이라도 했을 서영이는 나의 시덥잖은 농담이 급조된 것이라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요즘 나는 얼굴에 다시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얼마 전 아내가 핫한 인기상품인 무슨 마스크를 24개월 할부로 구입한 것이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이번엔 얼마나 오랫동안 정성을 쏟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가만히 앉아서 늙어가는 내 얼굴을 마냥 바라보며 자책만 하고 있는 것 보다는 나은 일이 아닐까.
아름다움은 돈과 시간과 노력의 결정체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