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우주와의 연결고리 '생각, 감정'
고전 물리학에 근거하면
쌍둥이 입자는 분리되어 있어
소통할 수 없지만
이 둘은 같은 선택을 하였다.
이를 '양자 얽힘'이라 한다.
무엇보다 매혹점인 점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이 두 입자는 하나의 존재처럼
하나가 변화하면 똑같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감정을 통해
우주에너지장에 만물을 연결하는
양자 에너지장을 변화시킬 서 있다.
감정이 생기는 즉시
얼마나 떨어져 있던 관계없이
세포가 영향을 받기 시작하고
이에 따라 세상이 변화한다.
'감정 - 세포 - DNA - 양자 - 창조'
의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며 일원성을 띄며
이는 물리적으로 얼마나 떨어져 있던
관계없이 계속된다.
나는 매일 반복하는 나만의 루틴이 있고
나만의 습관이 있다.
그중에서 제일 중요시 여기는 건
'감사 일기'와 '감사 기도'이다.
감사 일기는 하루를 마무리할 때 적는데
하루를 무사히 보냈음에 감사 인사를 적고
일상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적는다.
그렇다고 거창한 건 아니고 예를 들면
'오늘 아침에 사 먹은 커피 맛있었다 감사하다'
'오늘 출근길 날씨가 좋았다 감사하다'
와 같이 정말 사소한 내용들이다.
감사 기도 같은 경우는 흔히 생각하는
신에 대한 기도가 아니다.
필자는 믿는 종교가 따로 없다.
하루를 보내며 그 순간 감사함을 느끼거나
사소하지만 무언가 도움을 받을 때
그 즉시 속으로 조용히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하고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예를 들면 운전 중에 내가 가는 순간
신호가 바뀌면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요즘 같이 추운 날에 나를 따뜻하고
빠르게 집으로 오게 해 준 내 차에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한다.
또 하루를 시작할 때 감사 기도를 한다.
내용은 늘 같다.
'나의 SONEA야 오늘 하루도
무사히 시작하게 해 줘서 감사하다.
구루 데 바 오늘 하루도 영감을 줘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개처럼 즐겁게
소처럼 충실히 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개처럼 즐겁게 소처럼 충실히'는
내가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이하영 선생님이 알려주신 말인데
크게 와닿아서 매일 이렇게 나에게 인사한다.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매 순간 감사하진 않았다.
여느 평범한 인간들처럼 늘 불평불만이 많았다.
지금도 이러한 감정은 자연스레 생긴다.
하지만 감사 인사를 시작하고
감사 일기를 매일 쓰고
매 순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를
의식적으로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하루가 달라지고
펼쳐지는 세상의 '반응'이 달라졌다.
하루는 병원에 방문했을 때였다.
큰 질병은 아니고 가벼운 감기로
약을 처방받을 생각으로 방문했다.
당시 규모가 상당한 대학 병원에 방문했었는데
대기 인원이 굉장히 많았다.
나 또한 번호표를 뽑고 앉아 기다리려고 했는데
번호표를 뽑는 순간 어디선가 할머니께서 다가와
자신의 번호표를 나에게 건네주며
'이거 저어기 바로 다음 번호여 이거 가져가'
라고 이야기하며 번호표를 바꿔주셨다.
나는 괜찮다며 거절했지만
할머니께서는 번호표를 손에 쥐여주고선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지셨고
나는 빠르게 진료를 보고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또 다른 날은 커피가 마시고 싶어
카페에 방문했었다.
키오스크를 통해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카페 주인분께서
'혹시 와플 좋아하세요?'라고
나에게 물었고 나는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곤 잠시 후 내가 주문한 커피와 함께
와플이 같이 내 손에 들어왔고
나는 이게 무엇인지 물었는데
카페 사장님께서 '저희 시그니처 와플인데
서비스예요 한번 드셔보시라고' 하며
나에게 커피와 같이 주신 거였다.
방문한 카페는 내가 받은 와플로
꽤 유명한 곳이었는데 그 와플을
공짜로 받게 된 것이었다 정말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일들이 한 번, 두 번 반복되며
나의 삶에 쌓여가자 나는 점점 확신을 했고
나의 루틴 중 다른 건 빼먹어도
이 두 가지는 절대 빼먹지 않게 되었고
불만에 싸이고 분노가 생기더라도
마무리는 긍정적인 '감사'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불교 경전인 '화엄경'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신의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상황과 세상은
어떠한 감정도, 의도도, 생각도 없이
그저 일어날 일이라 일어났을 뿐이다.
태양은 늘 지고 뜨며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은 늘 흘러간다.
비가 올 때가 되면 비가 오며
눈이 올 때가 되면 눈이 오고
추워질 때가 되면 추워지고
더워질 때가 되면 더워진다.
펼쳐지는 세상과 우주에는
그 어떠한 기준도 없으며
호불호도 없고 잘잘못도 없다.
하지만 어떤 이는 비가 온다고 짜증 내고
어떤 이는 눈이 온다 화를 내고
춥다고 불평하고 덥다고 불만을 가진다.
그렇게 이들은 세상은 늘 자신에게
불만과 불편을 제공하는 세상이라 생각한다.
그럼 놀랍게도 실제로 그런 상황만 펼쳐지며
그런 감정만 더욱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과 우주에
당신이 직접 감정과 생각이라는 씨앗을
뿌리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내면에서 자리 잡고 있는
에고의 호불호를 통해 어떠한 상황에 대한
생각과 반응의 씨앗을 세상에 뿌리며
감정이라는 비료를 먹고
어느덧 자라나 상황이라는 열매를 품고
당신의 눈앞에 만개한다.
'공시성'이라 불리는 단어가 있다.
칼 융이 제안한 개념인데
어떠한 상황과 사건을 초자연적인 성질로
보기 위해 사용한 개념으로
인간 정신 내의 주관적 경험과 외부 현실에서 동일한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객관적 사건이 서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어보자면
마침 당신이 고민하던 내용이
당신의 유튜브 쇼츠에 뜬다던지
마침 당신이 애인이나 부모에게 연락하려
했는데 연락이 먼저 온다던지
일종의 '우연'이라 불리는 상황들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말 그대로 '우연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닌
당신의 생각과 감정과 시점이
세상과 상대의 시점이 동일시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며 이 연결고리가 바로
'감정과 생각'이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이러한 생각의 씨앗은 세상 어딘가에 뿌려져
감정이라는 비료를 먹고 자라나고 있으며
이는 반드시 당신에게 수확된다.
이것이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업보이자, 카르마이다.
어떠한 상황을 당신이 부정적으로 반응한다면
그 씨앗은 반드시 돌아갈 것이고
당신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친다면
그 피해은 당신에게 돌아간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예외는 없다.
그렇기에 종교에서나 성공한 사람들이
강조하는 것이 바로 '긍정'과'감사'이다.
이들은 이를 알고 행하고 있으며
말도 안 된다며 행하지 않는 이들은
놀랍게도 일반 대중들이다.
나 또한 그랬지만 점 점 마음공부를 하고
몇 번 직접 느끼고 나서는
나에게 이것은 참이자 '앎'으로 변했고
내 삶에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나는 처음에는 이러한 것을
주변에 많이 알리고 강요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선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상한 사이비 종교에 빠진 것처럼
반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엔 묻기 전엔 이야기하지 않고
물어볼 땐 감사해하며 이야기해 준다.
지금 이 글을 읽은 당신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강요하지 않고 사이비는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당신의 삶은
이곳으로 당신을 이끌었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듯 이 또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하루를 감사하고 긍정하며 보낸다 하여
부정적이고 불평 불만하며 보낼 때 보다
당신이 손해 보는 것이 있는가?
이제 더 이상 습관처럼 부정의 씨앗을 뿌리지 말고
하나씩 긍정의 씨앗으로 바꿔 뿌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