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 니아와 양파 아저씨

삶과 죽음의 경계

by SONEA

니아가 운전하던 차의 앞유리를 통해 빛이 번쩍이며 쏟아져 들어왔다.

시야 한가운데로 하얀 빛 덩어리가 강하게 밀려들었다.

뒤늦게 클락션 소리가 터졌고, 동시에 옆에서 찢어지는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어, 어, 언니! 언니 시발 앞에, 앞에! 브레이크! 브레이크! 브레이크!!”

소리와 빛을 인지한 순간, 니아는 발과 손을 움직였다.

아니,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가 바닥인지, 자신의 발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현실의 감각이 통째로 빠져나간 느낌이었다.핸들이 떨렸다.

차만 흔들리는 게 아니었다. 도로 전체가 출렁였다.

늦었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쾅!

이번에는 확실했다.이번에는 몸이 들렸다.앞에서 굉음이 터졌다.

앞유리가 폭발하듯 산산조각 나며, 깨진 틈 사이로 바깥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귀가 멍해졌다.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가, 한 박자 늦게 몰려왔다.

얇은 금속이 찌그러지는 소리.유리 파편이 으깨지는 소리.뚝 하며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주인 모를 비명.

울분을 터뜨리며 내달리던 차는 멈췄다.아니, 더 이상 갈 수 없게 됐다.

안전벨트가 가슴을 조였다. 숨이 턱 막혔다.
니아는 숨을 쉬기 위해 입을 벌렸지만, 공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숨 쉬는 법 자체를 잊어버린 것처럼.

“커컥…”

목에서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비릿한 맛이 입 안에 퍼졌다. 피였다.

머리에서 흐르는 건지, 입 안에서 솟아나는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세상이 기울었다. 시야가 옆으로 미끄러졌다. 도로가 창문 위로 올라오고, 하늘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머리가 앞으로 쏠렸다.무언가에 부딪혔다. 단단한 감각. 뒤따르는 충격과 통증.

귀 안에서는 ‘웅’ 하는 소리가 계속 울렸다. 소리는 안쪽에서만 맴돌았고, 바깥의 소리는 닿지 않았다.

“어… 언니… 언니야…”

임혜인의 목소리였다. 지나치게 가까웠다.

니아는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목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앞이 흔들렸다.

검은 별들이 떠다녔다. 별들은 땅이 되고, 땅은 하늘이 되어 서로 겹쳤다가 흩어졌다.

‘이게…’

끝이라는 단어는 떠오르지 않았다.대신 전혀 쓸모없는 생각들이 끼어들었다.

도마 위에 그대로 두고 온 칼.소스를 끓이던 화구.냉장고 두 번째 칸에 넣어둔 생크림. 아침에 썰다 만 양파.

왜 지금 이런 것들이 떠오르는지 알 수 없었다.차 안에 뿌연 연기가 찼다.

코를 찌르는 고무 타는 냄새. 산산 조각난 쇠 냄새. 어제 밤에 넣은 기름 냄새.

숨을 들이마실수록 속이 울렁거렸다.

“언니 정신 차려봐… 언니… 정신…”

임혜인의 손이 니아의 몸 어딘가를 붙잡았다.울상이 된 얼굴로 어깨인지 팔인지 모를 곳을 세게 흔들었다.

그럴수록 니아의 속이 더 뒤집혔다.

‘놔…’

말하려 했지만 입술만 떨릴 뿐,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멀리서 누군가 외쳤다.

이름만 남은 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다급히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요?”
“이봐요!”
“여기 안에 사람 있어요! 누가 빨리 119부터 불러요!”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멀고 멍했다.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아주 멀리서 시작된 소리는 어느새 귀 바로 옆에서 울리는 것처럼 커졌다.

시야의 가장자리가 검붉게 물들었다.
중앙만 남고, 주변이 지워졌다. 세상이 급격히 좁아졌다.

‘나… 아직…’

아직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살아 있는 건지, 죽어가는 건지.

숨을 쉬려 했다. 이번에는 공기가 조금 들어왔다.폐가 찢어질 듯 아팠다. 그래도 숨은 쉬어졌다.

그 순간, 니아는 알았다. 아직 완전히 저 죽음의 문턱을 넘지는 않았다는 걸.

깊은 어둠이 덮쳐왔다.이번에는 저항하지 않았다. 몸을 그대로 맡겼다.


눈이 다시 떠졌다.

바깥 풍경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움직이는 건 바깥이 아니라, 침상에 누운 자신이었다.

“의식 돌아왔어요.”

낮은 남자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얼굴은 흐릿했다.

니아는 입을 열어 반응하려 했지만, 굳어버린 피와 침 때문에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공기만 새어 나갔다.

“대답 안 해도 돼요. 천천히 숨 쉬세요.”

곧바로 산소 마스크가 얼굴을 덮었다.

차가운 플라스틱 냄새, 고무 냄새, 인위적으로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밀려들었다.

숨은 쉬어졌지만, 여전히 아팠다.

“동공 반응 확인.”
“바이탈 사인 체크.”

투박한 손길이 눈꺼풀을 벌렸다.어둠에 잠겨 있던 눈에 빛이 쏟아졌다.

“제 말 들리세요? 이름 말할 수 있겠어요?”

이름. 입 안에서 굴려보았지만 바로 나오지 않았다.

“니… 아.”

“좋아요. 잘했어요. 사고 상황 기억나요?”

사고. 단어를 듣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했다.심장이 반 박자 빨라졌고, 손끝이 저려왔다.

고개를 저으려 했지만, 실제로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무리하지 마세요.”

구급차가 방지턱을 넘으며 크게 흔들렸다. 몸이 붕 떴다가 내려앉았다.

그때 옆에서 작은 신음 소리가 들렸다. 니아는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화려했던 머리는 사라지고, 붉게 물든 붕대를 칭칭 감은 임혜인이 보였다.
산소 마스크를 쓴 채 눈을 감고 있었지만, 눈썹과 입이 미세하게 떨렸다.

“혜인… 혜인아…”

“같이 이송 중입니다. 외상은 있지만 생명에는 지장 없을 거예요.”

생명.지장.환자.이송.

낯선 단어들이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아무 데도 닿지 않고 사라졌다. 현실감이 없었다.

기계음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삑.
삑.

삑.

심장 소리보다 더 또렷했다.구급차 내부가 갑자기 좁아졌다.

벽과 천장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공간이 파도처럼 울렁였다.

니아는 눈을 감았다. 이렇게 하면 덜 아플 것 같았다.

그 순간, 이미지가 스쳤다.

도마. 은색 스테인리스 조리대. 불 꺼진 가스레인지. 양파.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의식은 다시 어둠으로 가라앉았다.




삑.
삑.
삑.

같은 기계음이 니아를 다시 끌어올렸다.하지만 천장은 달랐다.

소독약 냄새. 움직이지 않는 풍경. 따뜻하고 가벼운 공기.
여기가 병실이라는 걸, 몸이 먼저 알아챘다.

“선생님, 여기 깨어나셨어요.”

여자 목소리. 슬리퍼 소리. 이내 무거운 발걸음이 다가왔다.

니아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 순간, 수백 개의 바늘이 몸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덮쳤다.

“움직이지 마세요.”

의사의 목소리였다.

“여기가…”

목소리가 갈라졌다.

“병원입니다. 방금 수술 끝났어요.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에요.”

그제야 니아는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또렷하게 인식했다.
두려움이 밀려와 몸과 마음이 동시에 떨리기 시작했다.

“혜인… 같이 타고 있던 사람… 혜인은…”

무리하게 고개를 돌렸다.바로 옆 침대에 임혜인이 누워 있었다.

아직 잠들어 있었다. 임혜인의 거대한 가슴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며 천천히 호흡하고 있다.

그 모습에, 깊은 안도감이 아주 천천히 니아를 감쌌고 니아는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