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 니아와 양파 아저씨

양파 아저씨

by SONEA

삑.

삑.

삑.

지루할 정도로 같은 기계음 소리에 니아는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코 끝을 찌르는 소독약 냄새, 누군가 슬리퍼를 질질 끌며 복도를 느긋하게 지나가는 소리.

눈이 미끄러지는 듯 지나치게 깨끗한 천장이 니아의 눈에 들어왔다.

니아는 멍한 정신을 깨우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여전히 아프지만 어제와는 달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집단 구타를 당한 듯 온몸이 아팠지만 이상하리만큼 개운하고 정리된 느낌이다.

머리 한편에서 웅웅 하며 울려대며 니아를 괴롭히던 두통도 한 단계 낮아져 있었다.

'깨어나셨어요? 정신은 좀 드세요?'

어제와는 다른 간호사였다.

니아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하였다.

'지금이 몇 시인 줄 아시겠어요?'

니아는 시간을 묻는 질문에 습관처럼 갤럭시 워치로 확인하기 위해 오른쪽 손목을 들어봤지만

보이지 않자 이를 찾기 위해 자신의 양 주머니를 손으로 가볍게 치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소지품은 정리해서 왼쪽 서랍에 다 넣어놨어요'

간호사는 단박에 알아차리고 니아의 귀중한 갤럭시 워치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고 다시금 질문한다.

'그래서 지금 몇 시인 줄 아시겠나요?'

니아는 간호사를 잠시 쳐다보다 고개를 돌려 벽 쪽에 걸려있는 시계를 봤다.

고장이 났는지 초침이 움직이지 않고 분명 디지털시계인데 숫자가 바뀌지 않는다.

니아가 잠시 눈을 깜빡이자 순간 시계의 초침은 돌아가고 숫자도 바뀌며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음...... 아침?'

'맞아요'

간호사는 니아가 무안해하지 않도록 웃으며 대답했다.

니아는 간호사에게 자신이 방금 본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방금 본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이야기하고 질문을 하면 오히려 자신의 상태를 안 좋다고 판단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래 누워있던 탓 인지 니아는 몸이 찌뿌둥하여 팔을 머리 위로 쭉 뻗으며 몸을 가볍게 움직여 보았다.

니아의 생각보다 잘 움직였다.

아니 지나치게 잘 움직였다.

이상하다는 생각은 스치듯 지나갔다.




'회복 속도가 엄청 빠르세요'

니아를 담당한 중년의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물론 아직 완전히 나은 건 아닙니다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는 일상으로 복귀하셔도 될 것 같아요.

워낙 젊으시고 기초 체력이 좋으셔서 더 그런가 봐요'

'기초 체력이라는 말이 이 상황에 맞는 말인가?'

또다시 느껴지는 기시감에 니아는 어딘가 걸렸지만 이를 걸고 넘어갈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애써 무시하고 넘겼다. 왜냐하면 니아의 머릿속에는 어제 하다 만 작업들이 계속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 씨 빨리 가서 확인해야 하는데 아 소스 다 망한 거 아니야?? 하... 불안한데'

니아의 걱정이 닿은 것 인지 병원에서의 퇴원 수속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간호사가 전해주는 서류들에 재빠르게 사인을 하고

의사 선생님에게 주의 사항을 듣고 작은 알약들이 들어있는 약 봉투를 받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빨랐다. 모든 것은 며칠이 아닌 단 하루 만에 끝났다.

긴 병원 복도를 약 봉투와 짐과 서류를 들고 니아는 걸었다. 바닥이 너무 단단했다.

신발을 통해 발바닥으로 전달되는 감각이 너무나도 뚜렷해서 바로 어제까지 누워서 숨 쉬기조차 어려워했던 몸이라고는 믿기지가 않는다.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오른 니아는 자신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본다.

평소보다는 창백했지만 너무나도 멀쩡했다.

사고로 인해 났던 상처는 흉터조차 남지 않고

말끔하게 나아져있었다.

'이게...... 맞나..?'

니아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만지고 돌려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금세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생각을 오래 붙잡으면 붙잡을수록 머리가 지끈거렸기 때문이다.

니아는 자신의 연한 하늘색을 띠고 있는

국산 박스카에 올라타 운전대를 잡았다.

'내 차가 왜 여기 있지? 언제 가져다 놨더라?'

묘한 의문감이 니아를 감쌌지만 깊게 고민하지 않고 잠시 집을 향했다가 곧바로 레스토랑 '크라이 세'를 향해 갔다.

의사 선생님은 집에서 쉬는 걸 권장했지만 니아의 머릿속에는 온통 레스토랑뿐이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한적한 도로를 지나 중간중간 자갈이 밟히고

왼쪽으로는 바다가 어림풋 보이는 시골길을 지나 레스토랑 '크라이 세'가 있는 리조트로 향했다.

임주상 대표의 차 옆에 주차를 하던 니아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차... 가 왜 멀쩡하지...? 벌써 다 고쳤나..?'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민하던 찰나

멀리서 레스토랑에서 같이 일하는 임영미 매니저가 멀리서 총총걸음으로 걸어온다.

임영미 매니저는 니아보다 큰 키에 짧은 단발머리를 하고 날카로운 눈매와 오뚝한 코가 조화를 이루어

꽤 이쁜 외모에 몸맵시가 좋아 가끔 모델 같다는 소리를 듣고 가끔 니아의 비교 대상이 되기도 한다.

'왔어? 늦었네?'

'생각보다 멀어서요'

'응 괜찮아, 몸은 좀 어때?'

'이상할 정도로 괜찮아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괜찮으면 빨리 가서 일해야지? 가자 얼른'

니아는 순간 자신을 걱정해 주는 임영미에게 고마움을 느꼈지만, 자신이 일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는 걸 알곤

다시금 기분이 나빠졌다.

'그럼 그렇지, 이 년이 이럴 리가 없는데'

임영미 매니저는 어린 나이부터 리조트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특유의 눈웃음과

윗사람들에게는 딸랑거리는 아부를 잘해 윗사람들에게 이쁨을 받는다. 하지만 아랫사람들, 특히 니아를

자신이 편하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부려먹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니아는 썩 좋아하지 않는다.

1층 카페에 있는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통해 임영미의 뒤를 따라 올라가 레스토랑 주방에 들어갔다.

브레이크 타임에 도착을 하여 손님은 있지 않았고, 임영미 매니저와 니아는 각자 할 일을

시작하였다. 말소리는 낮았고, 평소의 브레이크 타임 특유의 고요함이 레스토랑 '크라이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발생하는 소리가 벽에 부딪혀 돌아오지 않았다. 주방 공간이 흡음재로 가득 찬 것처럼

니아와 임영미가 뱉고 만드는 소리들이 사라지며 묘하게 조용했다.

'니아 언니 왔어?'

이번에는 임혜인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니아는 고개를 들고 임혜인을 유심히 바라봤다.

임혜인도 멀쩡하게 서 있었고, 니아와 마찬가지로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언니 괜찮아?'

'응 괜찮아'

니아의 대답을 듣자 임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 주방을 나갔다. 그 순간, 임혜인의 발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병원에서부터 무언가 이상한 듯했지만 니아는 사고 후유증인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흐트러진 검정 앞치마를 다시금 꽉 두르고 도마를 꺼내 반짝이는 은색 스테인리스 조리대에 올려놓았다.

냉장고에서 양파 하나를 꺼내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껍질이 단단하게 붙은 평범한 양파이다.

니아는 칼을 들어 양파를 손질하려다 잠깐 멈칫하였다.

양파에서 나야 하는 특유의 알싸한 냄새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니아는 신체 감각이 예민한 터라

양파를 썰 때마다 대성통곡을 하였지만 이상하게 눈도 맵지 않았다.

마치 플라스틱 음식 모형을 둔 듯했다.

'이것도 컨디션 탓인가..? 아님 역시 사고 후유증이 조금 남아있나..? 의사 선생님은 괜찮다고 했는데'

가만히 고민하고 있자 옆에서 지켜보던 임영미가 니아에게 한마디 한다.

'니아야, 한가해? 빨리 준비해야지 어? 할 일 해놓고 쉬는 게 더 좋지 않겠어? 빨리 하자'

임영미는 손님들 보단 자신이 윗사람들에게 밉보이는 걸 무서워하기에 잠시라도 쉬는 모습이나 흐트러지는 모습이 보이면 참지 못하고 꼭 한 마디를 던져 니아를 움직이게 한다.

니아는 임영미의 꼬장을 더 이상 듣기 싫어 칼을 내리쳤다.

탁.

칼이 도마에 닿는 소리는 한 박자 늦게 들려왔고, 양파의 자른 단면이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처럼

안쪽 결이 흐리게 보인다.

니아는 계속되는 이상함에 피로감을 느껴 칼을 든 채로 어깨와 목을 돌리며 스트레칭을 하고

숨을 잠시 고르고 양파를 마저 손질하기 위해 도마를 다시 봤다.

양파가 아까보다 조금 작아져 있었다. 이것도 착각이라기에는 너무나도 분명했다.

니아는 칼을 옆에 던져두고 손을 뻗어 양파를 집었지만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 순간 들려왔다.

'천천히 해'

낮고, 건조한 목소리.

몽근하게 소스 끓이는 소리, 팔팔 강하게 육수 끓이는 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사이

주방에서 나온 소음과는 완벽하게 분리된 소리가 니아의 바로 귀 옆에서 울린 것처럼 선명하게 들렸다.

니아는 놀라며 손을 멈췄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았지만 임영미는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지금은 빨리 할 필요 없어'

이번에는 확실하게 들렸다.

니아는 소리를 따라 시선을 다시 도마로 내리자 양파가 있었다.

아니, 양파 아저씨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꺄악 씨발 뭐.. 무.. 뭐야 이거?!'

니아는 당황하여 욕까지 하며 크게 놀랐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형태가 아니었고, 존재도 아니였지만 분명히 이 존재는

말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 자신을 자르려고 했던 니아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 나... 저... 나요..? 아 아니지.. 저요? 누... 무... 아니 아니... 누구.. 무엇.. 이세요..?'

니아는 주변에 특히, 임영미에게 들리면 안 될 것 같아 그 존재에게 속삭이듯 작고 낮게 말하였다.

몇 초간 침묵이 이어지며 보글보글 토마토소스 끓는 소리만 들린다.

그리고 잠시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 편'

니아는 침을 꿀꺽 삼키며 숨도 크게 삼켰다.

니아의 머리가 아찔해지고 사고로 다친 머리 부분이 아파왔다.

오늘 니아의 하루는 평소보다 어딘가 이상했다.

병원에서 퇴원할 때부터 지금 이곳 레스토랑 '크라이 세'로 돌아올 때까지 모든 순간이 이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이상하면서도 말도 안 된다고 니아는 생각했다.

'이.... 이게 뭐지..? 외계인..? 아닌.. 어? 양파.. 에? 말도 안 돼.. 이 상황이 뭐... 지?'

그러자 양파 아저씨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음 알아'

니아는 한 발짝 물러서며 칼을 내려놓았다.

그대로 주방을 뛰쳐나가 자신의 아늑한 차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 뭐야? 왜 이래..? 내가 지금 뭐가 잘못된 거지??'

양파 아저씨는 당황해하는 니아를 보며 슬며시 웃으며 대답했다.

'많은 게'

니아는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굳이 그대로 서 있었다.

토마토소스는 여전히 끓고 있고, 냉장고는 여전히 작동하며,

주방 타이머도 삑삑 소리를 울리며 여전히 작동하고, 임영미 매니저도 여전히 일 하고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주방 한가운데서, 니아의 세계만 조용히 어긋나기 시작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