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 니아와 양파 아저씨

첫 번째 조언, 양파 껍질 차

by SONEA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고 디너 서비스 타임이

시작되자 레스토랑 '크라이세'와 주방의 공기가 달라졌다.

조용하던 공간에 크라이세를 방문한 손님들이 채워지며 소리도 채워지기 시작했다.

접시가 부딪히고, 조리를 위해 화구에 불이 켜지고,

손님들이 주문한 주문서가 주방 입구에 위치한

작은 프린터에서 소리를 내며 찍혀 나왔다.

모든 것은 평소 서비스 타임과 같았지만, 지나치게 똑같아서 오히려 이상했다.

니아는 자신의 자리에 서 밀려 들어오는 손님들의 주문을 바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니아의 몸은 잘 움직였다. 평소와 같이 칼질도, 불 조절도, 소스의 농도 맞추는 것도,

소스 간을 보는 것도 평소와 같이 정확하고 판단도 정확했다.

오히려 사고 전 보다 더 또렷한 감각으로 니아는 움직였고

마치 이 주방과 이 순간을 위해 조율된 듯 막힘없이 사고하고 움직였다.

하지만 여전히 니아에게 들리는 소리는 이상했다.

뜨겁게 달궈진 코팅 팬에 마블링이 이쁘게 난 채끝 등심 스테이크를 올려도

희뿌연 연기는 났지만 '치익'하고 들려야 할 고기 익는 소리가 묘하게 늦게 들렸다.

파스타 면을 익히기 위해 화구 제일 오른쪽에 있는 큰 냄비 안에 끓고 있는 물에서

올라오는 기포는 일정하지만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니아야! 2번에 봉골레 하나 더 있다!!'

니아에게 추가 오더를 지시하는 임영미 매니저의 목소리는 다른 소리들과 달리 또렷하고 정확했다.

'네 2번 봉골레 하나 더요!!'

니아는 대답을 하며 파스타 조리용 은색 무코팅 팬을 화구에 올리고 빨간 점화기로 불을 켰다.

음식을 먹는 손님들의 표정은 만족스러웠고, 이 날 저녁은 클레임도 없었다.

중간에 임주상 대표와 임룡태 팀장과 임현미 과장도 몇 번 2층으로 올라와 홀을 둘러보고는

만족스러운 듯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창 오더를 빼던 중 니아는 잠시 고개를 돌려 흰색 나무 선반 아래로

디너 서비스 시작 전 옮겨둔 양파를 슬며시 쳐다봤지만, 옮겨둔 양파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어디로 굴러가 떨어졌나 싶어 선반 바닥과 토핑 냉장고 아래로 손을 살짝 넣어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니아의 심장이 순간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에 숨이 턱 하고 막혀 손을 잠시 멈추자

임영미 매니저는 이를 놓치지 않고 집중하라며 낮고 강하게 이야기했다.

임영미 매니저의 말에 니아는 대답 없이 다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새로운 손님과 주문이 들어와도, 니아의 머릿속에는 온통 행방불명이 된

양파뿐이었다.

'도대체 어디 갔지..? 없어지면 안 되는데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정신은 다른데 팔려 있었지만 니아의 손은 쉬지 않았고, 어느새 그날 저녁의 주문들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저녁 서비스 타임이 끝났을 때, 임영미 매니저가 1층 카페에 있는

컴퓨터로 향하며 주방이 잠시 비워진 순간 니아는 흰색 나무 선반으로 다급히 뛰어갔다.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양파가 그 자리에 얌전히 있는 걸 본 니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니아는 주변을 한번 더 살펴보았고, 그 누구도 자신을 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양파를 손으로 집어 자신의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그 순간, 니아의 앞치마 주머니에서 아주 작고 낮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가자'

니아는 침을 꿀꺽 삼키며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방의 기름때를 제거하고, 요리를 하며 사용한 기물들을 세척하고,

손님들이 사용한 접시와 식기를 핸들링하고, 주방 바닥 청소까지 평소라면 늘어지게

한숨을 쉬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천천히 했을 마감들을

니아는 지금까지 한 적 없는 속도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니아는 주방을 나가 레스토랑 제일 안쪽에 위치한 창고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자신의 짐을 챙겨 뛰다시피 크라이세를 빠져나와 1층으로 내려갔다.

'저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1층에서 잠시 이야기하던 임영미 매니저와 임룡태 팀장에게 인사말을 전하고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유리문을 열고 뛰어나왔지만 평소와 달리 그 누구도 붙잡지 않았다.

평소라면 퇴근하던 니아를 불러 세우고 오늘 있었던 일 들을 피드백을 한다던지

임주상 대표가 개인적으로 지시한 이상한 부탁들로 30분은 붙잡히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이 날은 무언가 달리 니아를 가로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평소라면 이유 없이라도 불렸을 이름이 끝까지 불리지 않았다.

니아는 이상함을 느꼈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에 주차한 니아의 차에 올라탔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문을 잠그고 시동을 걸고 핸들을 잡았지만 손이 덜덜 떨렸고,

엔진 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느껴졌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해제하고 운전을 시작해 집으로 가기 시작했다.

출근길과 같은 길이지만 어둠이 내려앉아 어딘가 스산한 분위기를 띄고 있는 길을 따라

운전을 시작했다. 평소 니아는 이 길이 무서워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노래를 틀고

따라 부르며 이 길을 빠져나갔지만 오늘은 노래도 틀지 않은 채 다급히 빠져나갔다.

큰길에 들어섰지만 이상하리 만큼 지나다니는 차가 한 대도 없이 길이 비어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신호는 너무나도 잘 맞았고 너무나도 수월해서 설명할 수 없었다.

니아가 지내고 있는 원룸 건물에 도착하여 1층 오른쪽 구석 기둥 뒤에 주차를 하고

니아는 짐들을 챙겨 다급하게 집으로 뛰어 올라갔다.

집에 도착하자 니아는 슬리퍼를 던지듯 벗어 놓고 입구에 있는 주방을 지나치고

연한 갈색을 띠고 있는 중문을 밀어 열고 방으로 들어가 불을 켜고 흰색 옷장 옆에 세워둔

노란색 둥근 테이블을 펼쳐 방바닥에 놓고 그 위에 양파를 살며시 올려두었다.

니아는 바닥에 쓰러지듯 앉아 아까는 당황해서 자세히 보지 못했던 양파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양파 색인 연한 갈색의 껍질을 지닌 양파의 머리에는 연한 초록 새싹이 몇 가닥 올라와 있고

전형적인 양파와 달리 오래된 신선처럼 흰색 눈썹과 콧수염과 턱수염이 평온한 표정과 조화를 이루고

밑으로는 호빵 맨과 같이 짧은 몸에 영국 신사처럼 멜빵바지에 조끼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양파는 아무 반응과 말없이 자신을 구석구석 살펴보는 니아를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니아는 양파를 유심히 살펴보다 눈이 마주치자 민망해하며 입을 열었다.

'저기... 양파.. 님? 아냐 아냐 아냐... 음.. 양파 아저씨? 아무튼 뭐든지 간에

아까는 왜.. 말 걸었어.. 나.. 요?'

니아의 질문에 양파 아저씨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필요해 보여서'

니아는 담담한 목소리에서 감정이 없었다기보다는, 감정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 그래요 뭐 근데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 거죠 도대체? 내가 머리를 다친 거예요?

아니면 스트레스를 받다 받다 드디어 미쳐버린 거예요?'

'음 둘 다 아니고, 근데 둘 다 맞아'

니아는 웃지도 못하고 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하...이게 뭔 지랄이래... 리조트 인간들도 모자라서 이제는 하다 하다 양파도 나를 가지고 노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던 니아의 말에 양파 아저씨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아니야'

니아는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깊은 내면에서 올라와 방바닥에 누워있던 몸을 벌떡 일으키고 표정 변화 하나 없는 양파 아저씨를 똑바로 노려보며 대답했다.

'뭐라고요? 뭐 알고 얘기하는 거예요?? 저기 우리 오늘 처음 만났거든요? 언제 봤다고 무슨 나에 대해 하나도 모르면서 뭘 그렇게 다 안다는 듯 이야기하는 건데요?? 네??'

양파 아저씨는 분에 못 이겨 씩씩 거리는 니아를 아무 반응도,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잠시 바라봤다.

예상과 달리 아무 반응도 없이 1분 여가 흘러가자 니아의 마음에 올라왔던 감정은 어느새 가라앉았고 니아는 부끄러워져서 얼굴을 연하게 붉히며

말을 걸었다.

'아니... 뭐 화낸 건 아니고.. 요.. 그..그렇게 쳐다만 보지 말고 뭐라 말이라도 좀 해봐요 좀 민망하니까'

그제야 양파 아저씨는 얕은 미소를 머금고 작은 입을 열었다.

'퇴근했으니 밥이나 먹지'

'아니 양파가 밥도 먹어야 해요?? 무슨 양파가 그런데.. 알겠어요 그래 뭐 먹고 싶은 거 말해봐요 차려줄게 아 아니지 먹을 수 있는 걸 말해봐요. 이렇게 보여도 나 셰프예요 셰프'

니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양파 아저씨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이야기했다.

'아니 나 말고 . 너 아직 퇴근하고 밥 안 먹었잖아'

니아는 예상 못한 이야기에 순간 당황하여 대답도 하지 못하고 멍하게 양파 아저씨를 쳐다봤다.

'셰프라며. 자기 밥 정도는 차려 먹을 수 있잖아.

설마 남 밥만 챙겨주고 자기 밥은 안 차려본 거 아니지?'

니아는 머리를 크게 한방 맞은 듯 충격 먹었다.

생각해 보니 리조트에서 같이 일하는 매니저나, 대표, 실장, 손님들의 밥은 최선을 다해 준비했었지만 정작 자신의 밥상은 그렇게 차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양파 아저씨는 대답하지 못하고 바닥을 보며 고개를 떨구고 있는 니아를 무심히 바라보다 자신의 겉껍질을 한 겹 벗어서 니아에게 전해줬다.

'받아'

자신의 손에 쥐어진 양파 껍질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니아는 고개를 들어 하얗게 변한 양파 아저씨를 보며 이야기했다.

'이걸... 왜..?'

'아무래도 지금까지 스스로를 챙긴 적 없는 것 같으니 내가 조금 도와줄게. 오늘 퇴원하기도 했고 아직 정신이 어지러운 것 같으니 밥 대신 간단하게 마셔. 양파 껍질로 차 우려 본 적 있어?'

니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자 주방으로 가서 코팅 팬에 내가 준 껍질을 살짝

볶아. 그리고 냄비에 물을 받아서 거기에 넣고 색과 향이 날 때까지 약하게 끓여. 그다음 물만 걸러서 마셔'

양파 아저씨의 디테일 한 조언에 니아는 홀린 듯 주방으로 가 요리를 시작했다.




니아는 자신의 자취방 주방에 섰다. 일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취방에서 요리를 한 적 없었기에 지금 이 상황이 굉장히 낯설게 다가왔다.

1주일에 6일을 하루 종일 주방에 갇혀 다른 사람들의 밥을 챙겨 왔기에 집에서 만큼은 손에 물 묻히기 싫고 자신의 밥까지 차리기 싫었기 때문이다.

싱크대 밑 하부장을 열어 하나 있는 팬을 꺼내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두고 처음으로 가스 밸브를 열어 불을 켰다.

한 번도 불이 켜진 적 없어서 인지 틱틱 거리는 소리가 길게 났다.

불이 켜지고 팬이 달궈지자 해바라기유를 두르고

건네받은 양파 껍질을 살짝 볶아 미리 냄비에 받아둔 물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몽근하게 끓자 껍질을 걸러 작은 회색 도자기 잔에 담았다.

연한 갈색을 띠고 있고 양파향이 은근하게 피어오른다.

'마셔봐'

양파 아저씨의 말에 니아는 군말 없이 조금 들이켰다.

니아의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따뜻한 기운을 온몸에 퍼트려주고

은근한 양파 향이 코 끝을 기분 좋게 두들겼다.

'... 이거 좋네요.. 양파 향은 나는데 신기하게 양파의 알싸한 매운맛이 느껴지지 않아요'

니아는 눈을 감고 조금 더 향에 집중하자

마치 양파 아저씨의 따뜻하고 포근한 품에 안겨 오늘 하루를 위로받는 기분을 느꼈다.

'어때 이제 좀 괜찮지?'

양파 아저씨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는 듯 이야기했다.

'아까 아니라고 한건 정말 아니기 때문이야. 네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단지 자신의 역할에 지나치게 충실했을 뿐이지. 너 또한 마찬가지로.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너 또한 그들을 괴롭히는 인물 중 한 명이 될 수 있어. 세상을 편협된 시선으로 바라보지 마. 그럼 너의 세상이 지나치게 좁아져서 결국 너만 손해야.'

양파 아저씨의 담담한 위로 아닌 조언을 듣자 니아는 기분이 좋아졌다가도 괜히 심술이 났다.

'참나.. 아저씨가 뭘 안다고.. 아저씨 T 죠?'

'.. 그게 뭐지?'

'MBTI 몰라요?'

'알아야 하나?'

'아니 그... 어휴 아니에요 내가 양파한테 뭔 말을 하겠어.. 위로나 해주지 그게 무슨 말이야..'

괜히 서운함을 느낀 니아는 도자기 잔을 손가락으로 만지작 거리면서 투덜거렸다.

'해줬잖아. 지금 마시는 그거'

니아는 시선을 도자기 잔에서 하얗게 변한 양파 아저씨로 옮겨 빤히 쳐다봤다.

분명 말도 안 되는 존재이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니아는 마음이 어딘가 조금 편안해졌지만 처음 느끼는 편안함에 어딘가 두려워졌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