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아들의 손톱을 잘라주는 사소한 일을 하지 않은지 아주 오래되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느 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까마득한 그 날부터 손톱을 입으로 뜯는 아들은 나에겐 실패감도 주고 좌절도 주었다.
이상하지 별것도 아닌 일인데 이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좌절씩이나 할 일인가 말이다.
그래도 나는 크게 실망하였다.
달래도 보고 화도 내 보고 울며 하소연도 해보고 아무 소용없는 그 짓을 오랜 시간 했다. 아들은 손톱, 발톱을 모두 이로 뜯는다.^^ 나는 손발톱을 깎아주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가지게 됐다.
자. 이쯤에서 좀 정신 빠진 엄마라고 손가락질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애가 긴장과 불안을 견디지 못해서 손톱을 뜯었어. 그래서 살만했어. 이 해소를 엄마도 못 주었고, 그 누구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았어. 그러면 인정. “그 행동이 너를 견디게 해 주었구나. 다행이네. 그리고 미안하다. 엄마가 너의 불안을 견디게 도움이 되지 못했구나.”
미안함을 전하고 또 감사함도 전한다.
사람들이 너무 활기차고 즐겁고 행복하게만 살 것 같은가? 아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좋다가 나쁘다가를 반복한다. 때로는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이 훨씬 많은 날도 있다. 그날 우울을 표현하는 일이 그에게 도움이 되어 다음날도 이불을 걷어내고 아침을 시작하게 한다면 나는 그 우울에게 감사할 것이다.
그가 그 순간 삶을 살기 위해 하는 행동이 그에게 옳다. 좋은 거 너무 기본적인 것을 주장하는 다른 사람들 말쯤 무시하고 손톱 좀 뜯고 즐겁게, 조금 우울해도 된다고, 까짓 거 술도 좀 마시고 즐겁게, 책 좀 읽고 한 박자 쉬어가도 그것이 위로가 된다면 나는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당신의 영혼이 걸음을 맞춰 걸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쓰는 일. 그 일은 너에게 나에게 적당하다.
당당하게 손톱을 뜯어.
당당하게 우울해.^^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