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3. 일몰을 보는데 도착하자마자 일몰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앞에서 잠시쯤은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그 기다리는 시간. 언니와 형부, 민기가 함께 있는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왠지 불안했던 어린 나를 보게 했다. 해는 지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해지는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내 앞에 얼굴을 바꾸고 화를 내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몹시 긴장됐다. 막상 일몰이 되어 서쪽 바다가 불게 물들고 둥근 해가 바다로 서서히 잠기는 모습을 보는 동안에 긴장이 내려갔다.
기다려주지 않는 엄마와 해 질 녘의 저녁 시간은 같은 긴장을 준다.
해 질 녘의 긴장감. 술 드신 아빠의 발자국 소리는 언제나 공포였다. 잦은 폭력을 행사했던 아빠. 자신의 말이 진리인 아빠는 무언가 묻고 질문하는 것, 특히 아빠의 말을 빠르게 이해하고 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폭발했다. 듣고 바로 답하지 못하는 것은 죄였다.
‘어디 갔었어.’ 물으면 상대는 어디 갔었는지를 생각하고 있겠지. 그리고 되물을 수 있다. ‘몇 시쯤을 말하는 거야?’ 이 말은 폭발의 기폭제였다. 아빠가 묻는 말에 바로 답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빠에게는 무조건 아무 답이나 하던 지 아니면 죄인으로 벌을 받던지 두 가지 밖에는 없었다.
자. 여기에는 두 무리의 피해자와 두 명의 가해자가 등장한다. 공식적으로 말이다. 그러나 다시 보면 폭력의 전수와 그 피해자였던 두 명의 부모가 있고, 그들로부터 불안과 공포를 경험하고 자란 피해자이면서 지금은 어쩌면 가해자 일지도 모르는 자녀들이 있다.
가해자인 두 부모는 서로에게 여유를 주지 못하고 이해하고 질문하고 답할 잠시의 시간도 기다려주지 못했다. 서로를 버티고 기다리지 못하는 두 사람은 자신들의 긴장과 불안을 그대로 자녀들에게도 전수했다.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았다. 기다려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해하지 못한 네가 잘 못이라고 은연중에 폭력을 정당화하면서 자녀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주었지.
덕분에 나는 해 지는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그 몇 시간을 버티는 일이 그렇게 어려웠다.
사는 동안 눈앞에서 결과를 바로 보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 지난주 나는 국가고시를 하나 봤는데 결과는 5월 22일 발표된다. 한 달을 넘겨 결과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지난주 새롭게 상담을 시작한 아동은 앞으로 10주간이 지난 후에나 변화를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일들이 훨씬 많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뭔가를 기다리는 일 앞에서 많은 경우 실패했다. 기다리는 동안의 긴장과 불안을 견디지 못해서 결과를 보지 못하고 망치거나 포기하는 일들이 많았다는 것을 이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