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때였나?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하는 아들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실은 이 녀석은 늘 까르르까르르 웃는 녀석인데. 학교 가는 일이 급했던 나는 왜 준비하지 않냐고 짜증 섞인 재촉을 했지.
그랬더니 배가 아프다고 운을 떼는 녀석은 울 것처럼 얼굴을 찡그린다.
그때서야 어디가 아픈지 왜 아픈지 언제부터 아팠는지를 물었다. 울음이 터진 녀석은 잠시 숨을 고르고 한 마디씩 힘겹게 하기 시작했지.
같은 반 아이들이 놀아 주지 않는다고 말이다. 민기는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작아 꼬맹이, 꼬마라고 놀림을 받는 중이었고 아이들은 은근히 작은 아이인 민기를 놀이에서 유리하지 않다고 배제했던 것 같다. 상처 받았고 학교가 재미없어 가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오래 참고, 말하지 못하고, 혼자 견뎠을 터였고 오늘은 정말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 때로 상담현장에서 부모상담을 할 때 이런 말을 듣는 경우가 있다. 아이가 친구관계가 좋지 못해서 학교에서 상처를 받는데 어떡하죠? 아이가 다른 애들이랑 싸웠는데 아이의 손을 잡고 친구에게 가서 사과하게 했어요. 등의 말들인데.^^
상처 받은 일이 어디 한두 번이겠는가? 처음부터 말하는 아이는 없다. 참다가 참다가 목까지 차서 말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부모님들이 "도망치지 말고 가서 잘 말하고 네가 맞춰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뭘 맞춰주는 걸까? 아이는 힘들다는데 부모는 더 참으라고 말한다. 누구를 위해?
또 이렇게도 반문한다.
"이번에 피하게 되면 다음에도 같은 일로 피하게 될까 봐요."
1. 이번에 피했는데 다음에 또 피하면 안 되는 이유가 뭘까?
2. 이번에 피할 생각은 있나?
3. 참고 견디면 다음에 같은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한 어떤 교훈이 남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 일단 그날 당일 학교에 전화하고 민기는 학교를 가지 않았다. 무작정 차에 태워 길을 나섰고 계획 없이 에버랜드로 달려 하루를 신나게 놀아버렸다. 사파리도 보고, 놀이기구도 타고 뭔가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실컷 놀고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에게 물었다.
"오늘은 어땠어?"
"완전 좋았어."
"그런데 내일은 엄마도 바빠서 오늘처럼 함께 있을 수 없어. 아마 내일은 학교에 가야 할 거야. 어떨 것 같아?"
"응. 엄마 나 내일은 학교 갈 거야. 애들이 뭐라고 해도 괜찮아. 나 오늘 완전 좋아."
- 아이에게는 힘이 있다. 부모가 느끼는 상처가 아이에게는 다르게 다가온다. 친구관계에 두려움이 있는 부모는 아이의 문제 앞에서 오래전 자신을 소환한다. 소외당하던 기억, 아픈 상처들.
아이에게 친구들에게 맞춰주고 참고 잘 놀아야 한다고? 누구를 위해? 아이를 위한 일은 아닌 것만은 확실하지 싶다.
아이는 피하는 것만 배우지 않는다. 세상에 내 말을 듣고 나와 같이 시간을 보내 주는 내편이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
언제든 힘든 일이 있을 때 내 편이랑 시간을 보내면 다시 걸어갈 수 있다.
부모상담에서 가끔 부모에게 묻는다.
살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내 편을 들어서 같이 맞서 준 사람이 있었나요? 그런 경험이 있었나요?
완전한 벤치 클리어를 경험하지 못해서 벤치 클리어 후에 어떤 안정감이 있는지 모른다.
벤치 클리어 후에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남는다.
아니야. 내 편을 들어주는 한 명을 알게 되면 다시 똑같은 일 앞에서 당당해지는 거야. 왜냐구? 언제든지 나를 위해 시간을 함께 해줄 어벤저스 안 부러운 내 편이 있거든.
때때로 공감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하는 거다.
굿 리스너는 굿 액터이기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