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 싫은 이유를 콕 집어 얘기할 수는 없지만(예를 들면 왕따라든지), 어느 날 엄청난 불행이 닥쳐와서 지옥 같은 곳으로 끝도 없이 추락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사춘기의 대명사처럼 중2병, 중2라는 단어를 흔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는 명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그리고 왜 중2냐?
사람마다 성숙, 발달은 천차만별로 다를 텐데 굳이 중2라는 타이틀에 매어 있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다.
주인공의 시점에서 대체로 아주 객관적으로 자신을 잘 분석해서 주변의 이야기와 동떨어지지 않으면서 변명도 잘하고, 이해도 잘 시키는 나름 똑똑한 청소년인 스미레의 사춘기 시절 이불 킥 전설이랄까?
누구나 지나고 나서 돌이켜 생각하면 자다가 이불 킥을 시전 하고 싶어 지는 순간들이 있다. 내 경우는 늘 이불 킥이 아닌 쌍욕이 튀어나오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친구 사귀는 것에 영 소질이 없으면 혼자 있는 것을 즐기면 될 텐데 그 시절의 청소년에겐 혼자라는 사실이 참을 수 없는 수치심과 연결된다. 친구가 없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라야 한다. 자신에게 조차도 친구 없는 소외를 숨겨야만 살 수 있다. 혼자 화장실을 가는 일은 뒤통수가 따가운 일이고, 점심시간 혼자 앉아 도시락을 펼치는 순간은 언제나 눈 앞이 캄캄한 일이었다. 뭘 그렇게 창피할 일이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청소년의 세계.
이미 청소년기를 훌쩍 지나와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으며 읽다가 그동안 너무 많이 잊었던 그 시간이 아까워지기도 하고, 잃어버린 시간들이 아쉽기도 하고.
기억이 나지 않는 오래된 청소년이었던 나의 모습을 다시 세워서 이리저리 돌려 보게 된다.
스미레는 자신의 성격이 형성된 과정에서 부모의 역할이 어땠는지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일관성 없는 반응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딱 중2의 목소리가 되어 말한다.
"넌 하나를 시키면 그 하나밖에 못 해."
엄마가 딸에게 할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린 딸은 엄마의 심부름을 잘하고 싶고, 잘했다는 칭찬이 받고 싶어서 최선을 다하는 거야. 심부름 그 하나에 집중해서.
심부름의 꽃이 무엇이냐? 그런 "잘했네. 고마워"라는 인정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주인공의 엄마는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넌 하나를 시키면 그 하나밖에 못 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느 날은 그 하나를 해도 칭찬하지만 또 다른 날은 그 하나를 했다고 야단을 맞는다. 일관성 없는 부모의 양육이 아이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혼란한 아이로 만드는 것을 이 책의 주인공 '스미레'는 중학생의 입장에서 잘도 말한다.
제발. 양육자로서 '이중 구속'은 하지 말자.
* 이중 구속: 둘 이상의 모순되거나 서로 용납되지 않는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그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그 모순에 대한 결과나 응답을 할 수 없는 일종의 자가당착적 의사전달을 말한다.
어떤 반응이 좋은 것인지 맞는지 혼란한 성장으로 스미레의 중학교 생활이 시작된다. 초등학교 때의 순진함은 어디로 사라진 건지 어쭙잖은 어른 흉내 내는 아이들의 허세스러움이 싫기도 하고, 따라가고 싶기도 하고 그 어느 중간은 없는 1학년이 지나고 2학년.
친구 없는 청소년은 위태롭다. 스미레의 유일한 안식처 [무 대륙의 황녀]를 상상하며 보내는 조용한 공간, 시간이 없었다면 중2의 시작은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회피라고 하지만 이런 상상도 없으면 견딜 수 없었을 거다.
적극적으로 친구를 사귈 수 없으면 상상의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혹자는 위험하다고 그러다 미치는 거 아냐? 할지도 모르지만 알게 뭐야. 상상의 친구랑 노는 시간이 있어 죽지 않고 버텼다는데 그거면 됐다.
중학생의 1년의 참으로 변화무쌍하고 스펙터클한 사건사고가 많은 시기인 것은 틀림없다. 어쩌다 친구들이 생겼다가 떨어져 나가고, 다시 생겼다가는 멀어진다. 그냥 자연스럽게 멀어져 다시 만나도 인사 정도 할 수 있게 되면 좋겠지만 사실은 이 일이 쉽지 않다.
많은 경험도 없는 주제에 뭔가 허세스럽게 가지고 있는 당위적 생각들이 있다.
'친구들 사이에 있던 일은 고자질하지 않는다.'
'함께 어울리는 무리의 리더에게 복종한다.'
이런 유의 나름 규칙들이 있는 것이다. 어른의 눈으로 보면 하잘것없어 보이지만 그 무리에 깊게 관여하고 있는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자살도 불사할 중차대한 일임에 틀림없다.
스미레에게도 격동의 시간들이 지나간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소동도 끝이 나고 평생 혼자 밥 먹고, 아무도 나와 친구가 되어주지 않을 것 같던 나에게도 친구가 생긴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던 순간이 지나가고 때때로 행복하고 즐겁고 재밌어 죽겠는 날들이 찾아온다.
사춘기는 모두에게 중요한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어쩌다 중학생 같은 걸 하고 있는지.
책 제목은 때때로 나에게 잠깐 쉴 수 있는 순간을 줄 것이다.
어쩌다 마흔 살 같은 걸 하고 있는 걸까. 혹은 어쩌다 엄마 같은 걸 하게 된 걸까. 등으로 변주될 수 있을 테지.
변주가 가능하고 그대로 살아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일상을 사는 사춘기를 지나온 이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때로는 날카롭던 기억으로 때로는 뭉게뭉게 뜬구름 같은 기억으로 초대한다.
무척 흥미 있었고, 중2 첫사랑을 응원하게 되는 재밌는 책.
오랜만에 책 관련 글을 쓰는 동안 실은 내 얘기를 써야겠다는 대단한 압박감이 있었다는 건 안 비밀임.